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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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핑크와 블루 컬러가 흩뿌려진 표지, 토독토독 내리는 빗방울, 그리고 의미심장한 문장의 제목! 꽤 두꺼운 책은 어떤 이야기를 싣고 있을지 매우 궁금했다.

 

이 책은 1953년 출판과 문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한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소설 15편을 모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장르의 대가 열다섯 명이 <파리 리뷰>가 발표한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소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 이유와 함께 추천한 소설을 모은 책으로, 각각의 단편들은 특별한 형식이나 장르의 구별 없이 실려있다. 소설 기법과 글쓰기 방식, 삶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까지 이끌어내어 하나의 문학 장르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명성이 높다고 말하는 <파리 리뷰>가 꼽은 다채롭고 독특한 열다섯 빛깔의 단편들을 이제부터 만나보자.

 

짧으면 10여 쪽, 길어도 70여 쪽 정도 되는 단편들이 묶여있는 이 책은 전체 약 450여 쪽으로 꽤 묵직하다. 보통의 책들이 약 300여 쪽으로 구성되어 있는 걸 생각해 보면 꽤 두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막상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페이지는 후루룩 넘어가곤 한다. 독특하고 기발한 이야기들과 생각지 못한 문채와 개성적인 사고들로 이루어진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 속에 빠져 환상적인 모험을 하기도 하고, 때론 생략되고 함축된 의미를 찾느라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앞의 단편과 뒤의 단편에 어떠한 인과관계나 관계성이 없어 톡톡 터지는 팝핑 캔디를 먹는 느낌으로 하나의 단편을 읽고 나면 또 새롭게 터지는 색다른 맛의 팝핑 캔디 맛을 볼 수 있다.

 

각 이야기들의 소재와 장르도 제각각, 단편을 쓴 작가도 모두 다르고, 또 이 작가들의 소설을 추천한 이도 모두 달라 어쩌면 수만 가지 생각과 이야기가 모두 응집된 하나의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건 매 단편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추천사를 통해 이 소설을 추천한 이유와 소설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작가의 생각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롭다. 장편소설과는 다르게 단편소설은 단조롭게 끝맺음 되어 있는 스토리를 통해 의미 파악이나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때론 내용 자체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단편들 중에도 그런 소설이 있다. 그런데 책의 단편이 끝난 이후 추천사를 쓴 작가의 소설 해석 및 생각을 기재해둔 페이지를 통해 때론 이해하지 못한 의미 파악을 하거나 미처 생각지 못한 심리 등을 파악할 수 있어 꽤 많은 도움이 된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무조건 작가의 생각을 따르거나 혹은 누군가의 가치관에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지만, 같은 작품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한 권으로 작가의 스토리와 생각, 그리고 그 책을 추천한 또 다른 작가를 통해 그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생각이 다채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각 단편들은 통통 튀는 공처럼, 어떤 것들은 스토리 자체에, 어떤 것은 감정과 서정적인 부분에, 또 어떤 것들은 공간과 배경에 집중하게 된다. 서술 방식에 따라 상상 속 시선이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장르나 문채에 따라서 내용이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이 책을 보면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단편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춤추지 않을래>는 작가가 그린 스토리에 따라 시선이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집 밖 마당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집안에 있어야 할 가구들이 안팎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들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지나가던 남자애와 여자애가 침대에 드러누워 나누는 대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장면이 바뀌어 집주인 남자가 다가오고 대화를 나누고, 몇 주의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의 이동을 스토리를 통해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스토리는 끝맺음을 하는데 단편의 끝 추천사를 통해 생각지 못한 작가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가 의도한 띄어쓰기나 한 줄 띄우기 등을 통한 표현기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등을 해석해 줌으로써 독자가 놓치고 지나간 작가의 또 다른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 추천사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고 소재도 낯설지 않아 마치 양탄자를 타고 함께 나는 것 같은 환상과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어느 날 동네에 하나둘 나타난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집 곳곳에 널려있는 모습과 아이들이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들은 어릴 적 읽었던 꿈과 환상의 나라 속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소년이 푸른 밤하늘을 나는 장면과 달빛을 받으며 하늘을 나는 모습에서는 '알라딘'이라는 작품도 떠오르고 마치 함께 하늘을 나는 느낌마저 든다. 지붕을 오르고 그네 높이보다 높이 올라 대지를 바라보는 감각은 가슴이 뻥 뚫릴 만큼 경이롭다. 그러나 새롭고 인기 절정이던 마법의 양탄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물건이 된다. '한때' 즐겼던 마법의 양탄자는 이제 지하 깊숙이 옛것으로 남겨져 수많은 장난감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환상적이었던 어릴 적 마법은 어른이 되면서 어느새 잊힌 것이다. 추천사에서는 이 스토리는 노스탤지어에 관한 이야기라 언급하며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로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법 양탄자를 타고 어릴 적 소년을 따라 좁은 창문을 통과해 밤하늘을 날고 초록빛 풀들을 굽어보았다. 


이처럼, 각각의 단편들은 새로운 이름으로 남다른 세상을 보여주며 다양한 경험을 선보여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을 읽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매번 새로운 문을 여는 느낌이 들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리라 본다. 구체적인 묘사와 디테일한 살을 덧댄 스토리를 가진 장편소설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만, 때론 생략과 함축적 의미로 만들어진, 단조롭지만 색다른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잘 쓰기만 하면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파리 리뷰>의 단편들을 볼 준비가 되었는가? 작가의 경력,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편집을 통해 문학 중심의 개방적 태도를 표방한다는 <파리 리뷰>의 단편들을 통해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관을 경험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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