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을 도는 여자들 오늘의 젊은 문학 3
차현지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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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아이가 귓속말을 하는 표지가 인상적인 '트랙을 도는 여자들'은 총 10편의 단편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가지의 단편 이야기는 주로 '죽음'과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대체적으로 무채색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신기한 건 읽는 동안은 서로 다른 각각의 단편으로만 여겨지던 이야기가 다 읽고 난 후에는 몇 가지의 주제로 압축된다는 점이다. '여성' '우울증' '죽음'과 같은 키워드로 꼽을 수 있는데 각 이야기들은 마치 모난 돌의 각 단면을 들여다보듯 개성 있는 스토리로 꽉꽉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의 화자가 여성인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해변의 소견'이나 '문은 조금 열어 둬' '트릭'은 남성이 화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목차>
트랙을 도는 여자들
무덤 산보
해변의 소견
녹색극장
문은 조금 열어 둬
미주와 근화의 이란성 쌍둥이 썰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
트릭
핑거 세이프티
우리의 마지막 잠

 

과거에도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특히 20세기를 거쳐온 사람들에게는 많이 공감되는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들이 녹아들어 있어 정서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요즘 많이 뉴스에서 거론되는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위협이나 폭력성, 가부장적인 사회 인식 속 여성의 모습, 약자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회 시스템의 부재가 그것이다. 예전보다는 좋아졌다지만 중요한 건 '여전히' 이러한 위협 속에 여성들은 노출되어 있고 그로 인해 각자 겪게 되는 트라우마와 우울증,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는 점은 현재도 여전하다는 점이다.

 

<트랙을 도는 여자들>은 303호 여자의 죽음과 더불어 숨죽여 사는 름이와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우지의 이야기를 읽으며 강남역 살인사건 외에도 빈번하게 뉴스에서 언급되는 무차별적인 여성에 대한 폭력을 떠올리게 했다.

 

<해변의 소견>에서는 평소 온순하고 욕심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한 남자가 아들과 떠난 해변으로의 여행에서 보여주는, 느닷없이 낯선 여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의 언행을 하는 남자를 통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봤으며 특히 교통사고 현장에서 막말을 퍼붓는 남성 운전자의 모습도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와이프와 아들이 괘씸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마디도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가장, 성공의 기회를 연거푸 놓친 자신의 모습이 사실은 가장 불만스러우면서 모든 이유를 외부로 돌리고 있는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의 한 단면도 엿보았다.

 

<미주와 근화의 이란성 쌍둥이 썰>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던 미주와 근화의 모습이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기 위해 미래는커녕 수익도 보장되지 않는 일을 하며 뒤에서는 누군가를 동경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근화는 스트레스 해소를 먹는 걸로 해결하는 섭식장애를 앓으며 점점 자신을 잃어 가는 삶을 살고 있다. 우연히 자신이 동경했던 한 유튜버 '미주'의 행적을 따라 방문한 동네에서 그 유튜버로 오해를 받아 그녀의 팬으로부터 선물도 받고 좋은 시간을 갖지만 곧 사칭을 알게 된 미주가 동영상에 파격적인 모습을 올리게 되며 화제가 된다. 이로 인해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작가팀이 그 동네를 방문하게 되면서 우연히 직접 만난 '미주'는 유튜브 영상에서와는 대조적으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습의 미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그녀가 결국 행한 일은 이선혜에게 전화해 미주를 찾았다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당당해 보이고 화려해 보이던, 동경하던 미주의 망가진 모습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민낯을 본 근화의 심정은 어땠을까? 고소한 마음이었을까? 우쭐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마음이었을까?

 

<핑거 세이프티>는 소통의 부재와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마음이 많이 가는 내용이었다. 자식들 거느리며 안팎으로 경제력까지 책임지고 있던 엄마와 무능력하며 아들을 바라는 가부장 제도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일탈.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부부 싸움 속 위축되어만 가던 나와 동생. 열두 살 이후 수도 없이 일탈을 감행하는 아버지를 열아홉이 되는 해 온전히 집 밖으로 내쫓고 완전히 법적으로 남남이 된다. 이후 엄마는 어느 순간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우울증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던히도 속을 썩이던 아버지와 남남이 된 이후에도 엄마는 나보다 남편이 우선이었다. 나는 엄마와 동생만을 가족으로 생각했기에 아버지는 '그녀의 남편'으로, 할머니는 '그녀의 시어머니'라고 지칭한다. 가장 사랑하고 의지했지만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은 보호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원망 또한 깊다. 어느새 나 역시도 우울증에 걸려 여러 차례 자살시도를 한다. 사랑하지만 애증 하는 관계인 엄마와 나는 그래서 꼭 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것 이상으로 가까이 가지 않는 안전거리 유지가 필수다.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할 때 엄마는 나와 동생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어오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도 일찍 일어나 맛있는 아침밥을 해 먹이는 것으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신경 써주지 못했다. 다른 가족들처럼 같이 외식을 하거나 잘한 일에 대한 칭찬을 해주거나 수영 강습에 찾아와 지켜보는 다른 엄마들처럼 자리해 주지 못했다.
어린 나는 여러 위험요소가 노출되어 있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했다. 가령 수영 코치가 자꾸만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히는 행동 같은 것들 말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도록 그런 여러 불안과 갈등이 표출되지 못하고 안에 계속적으로 갇히고 쌓이면서 결국 아이 역시도 우울증을 겪으며 자살시도를 번복한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느꼈던 심리 불안, 그리고 수영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성추행, 다른 가족들을 보며 느꼈을 박탈감,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조차 억눌러야 했을 '나'의 심리는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이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미치거나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다. 참고 참다가 우울증에 잠식되기도 하고, 버티다 버티다 자살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죽음을 목도하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별한 말이나 위로 없이도 그냥 덤덤히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폭력과 범죄에 노출되고 공포에 잠식당해 우울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약한 마음이지만, 그래서 더 그만큼의 끈끈함도 엿보인다. 그녀들의 생존이, 살아가고자 하는 안간힘이 스토리를 통해 그 자체로 인정과 존중을 하게 된다.

 

이는 좋고 나쁨의 평가로 표현되기보다,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저 담담하게 서술되기에 더 그렇게 와닿는 것 같다. <우리의 마지막 잠>에서도 상황과 자신의 감정에 대해 무감하게 툭툭 서술되다가 마지막은 '그러나 딜라는 죽었고 나는 살았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10편의 스토리를 통해 다시 한번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과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우울'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상 속 위협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법과 시스템 개선,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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