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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데아 ㅣ 케이스릴러
장해림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0월
평점 :
현실이 지옥인 사람들, 남보다 못한 가족으로 고통받은 이들에게 열린 새로운 세상인 가상 현실게임 '가족이데아'
술취해 자기만족감에 취해 사는 아버지, 항상 기죽어 살며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어머니, 공무원 시험은 몇년째 낙방하고 찌질하게 살고 있는 원형, 일진무리에 섞여 사춘기를 톡톡해 보내고 있는 여동생 원미. 원형에게 가족은, 버릴수도 그렇다고 끌어안을수도 없는 너무 버거운 사람들이었다.
지독히도 가난했고 어디에도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잠조차 두발 뻗고 잘 수 없는 현실공간속에서 원형은 하루라도 빨리 공무원이 되서 자신이 가족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랬다. 어릴적부터 제법 머리가 좋았고 남들보다 이해력이 빠르고 암기를 잘했으므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분명 이 지긋지긋한 지옥속에서 탈출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날 게임 테스터 알바를 하게 된 원형. 용돈벌이도 하고 궁상맞은 현실과는 정반대되는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선택하고 맞이할 수 있는 말그대로 환상적인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게임속 세계에서 원형은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하나씩 이루어간다. 지독한 가난과는 거리가 먼 가상세계 속 자신은 능력있는 재벌2세가 되어 맘껏 세상을 누비며 근사한 완벽한 가족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예상과 다른 게임속 결말을 맞게 되면서 어느새 테스터는 종료되고 만다.
이야기는 그렇게 원형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점차 과거, 게임, 이데아 세계로 확장되면서 가족들 각자의 진짜 이야기와 메타버스 속 세상이 교차되기 시작한다. 과거 어머니의 불행하고 끔찍했던 사이비 종교 입문과정과 숨겨진 결혼과 출산이야기가 나열되고 사이비종교 단체의 추악한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되며 한층 더 비참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한편 철없고 사고만 치는 동생인줄 알았던 원미의 진짜 일상과 진정한 친구로 믿고 동경했던 지희와 얽힌 이야기도 전개 된다. 순영과 결혼후 대기업에 입사하고 원형을 임신하면서 행복할 일만 가득할것 같았던 원섭이 횡령혐의건으로 얽히면서 그는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이야기와 더불어 1년뒤 출소후 자신의 세상에 갇혀 모든것을 타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아버지 원섭의 이야기는 그렇게 뼛속까지 고통과 아픔으로 가득찬 가족들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비록 끈끈하거나 행복한 가족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불행과 고통속에서 '같이' 모여 살던 그들 가족에게 어느날부턴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아버지 원섭의 사망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중심에는 지희의 아빠 상원이 자리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물질적인 지원은 아낌없이 했지만 진짜 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상원은 갑작스레 지희가 자살을 하게 되면서 모든것을 내려놓고 딸의 복수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한번의 실수로 생긴 딸 지희를 버리고 간 여자로 인해 그는 자신의 꿈도 포기하고 16년간 미혼부로써 모든것을 지희에게 쏟아부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목표이며 꿈이었던 딸이 자살을 하면서 모든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어떤 유서도 남기지 않고 갑작스레 떠나버린 딸의 소지품에서 나온것은 피묻은 손수건과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그리고 일기장. 딸에 대해 정작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는 딸의 자살소식을 믿지 못하고 학교친구들을 수소문해 알아낸 이야기를 통해 같은반 친구였던 원미가 자신의 딸을 자살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굳게 믿기 시작한다. 그것은 손수건에 새겨진 WM라는 이니셜과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그리고 일기장의 내용과 친구들의 증언이 그를 그렇게 믿도록 안내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 경찰조사에서는 단순자살로 판명나 사건이 종결된다. 이 모든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상원은 모든화살을 원미와 그의 가족에게 돌리고 그 가족을 파멸에 이를 방법을 강구하고 실행하기 시작한다.
이데아 소프트라는 회사를 만들고 16년동안 콘솔게임을 시작으로 모바일게임을 만들어 성장해 온 상원은 자신의 이런 최신 AI기술과 VR기술을 접목한 '가족이데아'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 가장 먼저 원형을 공략한다. 그리고 그 가족 한명한명을 cctv를 통해 감시하며 가족 깊숙히 침투하기 시작한다. 게임속 하집사로, 원섭의 가상 후배 하진우로, 사이비 종교단체인 '헤븐'의 새멤버 하진우로 삐걱거리던 불안정한 원형의 가족속에서 오해와 불신을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점차 실행해 나간다.
상원이 직접적으로 끼어들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진적으로 흘러간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고가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가상의 세계인지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VR기기와 컨트롤러를 통해 가상세계에 진입했다면 이후에는 그런 기기 없이도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자신이 어느 세계에 있는지도 모를정도로 구분이 모호해진다. 메타버스속 아바타를 조종하듯 상원은 그렇게 원형의 가족들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종하고 마침내는 사이비 종교 '헤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데아 멤버스'라는 회사를 만들어 세상의 꼭데기에 우뚝 선다.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것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권력과 세상에 보여지는 이목속에서 휘둘리며 욕망하고 기대하는것들만 바라보고 사는 세상.
한때 원형도 불행하고 암울한 현실과 가족속에서 욕망과 이상만을 쫓아 자신이 가족의 구원자가 되길 꿈꾸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게 다가 아님을 안다. 그래서 진실을 쫓아 여동생 원미를, 엄마 순영을, 이부형 에덱, 그리고 문정을 상원으로부터 탈출시키고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계속 현실과 가상세계를 오가며 그렇게 진행된다.
끝까지 끝을 보는순간까지도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갔다. 가상과 현실사이를 오가며 진실은 서서히 밝혀졌고 어둠의 민낯은 드러났다. 그러나 그 이후의 현실의 모습은 밝혀진 진실의 그것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 스토리의 가장 핵심은 가장 마지막 문장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상원의 말대로 더 이상 뭐가 진실인지를 파헤치는 건 무의미했다. 현실과 가상현실. 두 세계는 처음부터 공존하고 있었다. 원형의 어린시절 꿈은 이루어졌다. 그는 가족을 구원한 영웅이었다. 하루의 절반동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