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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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저주 같은 능력이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SF 누아르 장르의 소설책 한 권을 만났다. 익숙한 SF 영화 등에서 많이 거론되는 공간이동 능력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낯설게도 배경은 한국의 강원도 정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강원도 정선 자체의 낯섬이 아니라, SF적 요소와의 결합이 내게는 너무 낯설게 다가왔다. '강원도'에 대한 내 이미지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이 설정은 미묘하게 소설 속에서 익숙함과 절묘하게 섞어있었다.

 

강원랜드 주변 카지노 촌 뒷골목 캐딜락 전당사에서 전당포 직원으로 일하는 장진!그는 우락부락한 여느 전당사 직원들에 비해 어리고 여리여리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일당백을 하는 이 바닥에서는 잔뼈 굵은 직원이다.

 

그가 열두 살 무렵부터 함께 살고 있는 사실혼 관계의 새엄마 정희, 그리고 무심한 아버지 장만호, 어릴 때부터 든든하고 묵묵하게 자신을 돌봐준 캐딜락 사장 성사장(=성제욱), 그리고 함께 전당사에서 일하고 있는 철민까지 이들이 진을 이루고 있는 주요 사람들이었으며, 그 외 17살 이후로 기면증이 심해지면서 학교를 자퇴하고 성사장 밑에서 일하고 있는 점만이 특이점이었다.

 

그러던 중 20살의 어느 날 진이 여느 날과 같이 진규 일당을 피해 도망을 가다 숨어든 화장실에서 잠시 의식이 끊기고 정신을 차려보니 또다시 캐딜락 뒤편이었다. 어떻게 그곳까지 왔는지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 상태였고 매번 반복되는 기면증 현상에 이번에는 시간이 어긋나버린 현상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연히 듣게 된 새엄마와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그에게 특이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듣는 공간이동 능력을 가진 '게이트'라는 단어를 통해 세상에 타인과는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 또한 그 능력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임을 알게 된다.

 

10살 이후 진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묵묵히 지원하고 바르게 클 수 있도록 지켜봐 준 성사장은 그의 특이한 능력을 알게 되고 주변의 능력을 갖고 있는 장수꾼들 셋을 섭외해 그에게 방법을 가르치도록 한다.

 

차츰 공간 이동하는 방법과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깨우치기 시작한 장진. 그에겐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뿐 아니라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타인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에게 서서히 조직의 사람들이 접근하기 시작한다. 진이를 세상에 낳아준 친엄마이지만 유전되는 능력을 감추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한동안 떨어져 살다 진이 12살 되던 해 함께 살게 된 정희가 가장 두려워했던 한회장 한승태의 욕망과 조직에 맞서기 위해 그녀는 8년 동안 묻어두었던 자신의 능력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다.

 

포트를 여는 능력이 떨어진 퇴물들이나 모이는 곳이었던 카지노 촌 뒷골목 그곳은 어느새 막강한 게이트들이 모여 수많은 포트들이 생겨나고 닫히며 살리고 죽이기 위한 마지막 싸움이 벌어진다. 

 

8년 전 딸 서연을 살리기 위해 대부도 앞마다에서 위험천만한 포트를 실행했던 심경장. 결국 조직의 계략으로 딸을 살릴 심장을 빼앗기고 능력마저 잃게 된다. 불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끝내 아내마저 잃게 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아내가 죽은 그 옥상에서 자살을 감행하나 그 순간 다시 발현된 능력은 그를 더 막강한 능력자로 다시 태어가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과 가족을 사지로 몰아넣은 한회장과 한이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조직을 수소문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강원도 정선까지 도달하게 된다.

 

검은 조직의 우두머리 한회장의 넘버원으로 최고의 능력을 가졌던 정희. 그녀는 8년 전 그 사건을 계기로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을 위장해 아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이후 능력을 꽁꽁 숨기고 아들의 능력이 발현되지 않도록 눌러가며 진이 성인이 되도록 새엄마 역할로 그의 곁에서 아들을 돌본다. 그러다 한회장의 끝없는 욕망의 타깃이 자신의 아들이 되면서 그녀는 묻어두었던 자신의 포트 능력을 다시 끌어올리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직의 일인자가 8년 전 갑작스레 죽게 되면서 조직의 일인자로 올라선 배준. 그는 카지노 보안팀장으로 일하면서 실상은 퇴물 게이트들의 능력을 적당히 감추고 한회장의 개 노릇을 하며 지낸다. 한회장의 욕망을 알고 있던 그는 적당히 자신의 능력을 감추며 보안팀장으로 지내던 중 새로운 힘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 8년 전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심경장이 자신의 딸을 위해 어렵게 구해온 심장을 빼돌려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운 주연에게 그 심장을 내어준 그는 그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와 거리를 두고 끝까지 한회장의 개로써 '변수'가 된다.

 

오래전 심경장을 통해 목숨을 건진 성사장. 막 경찰이 된 초보 경찰이었던 심경장 덕분에 목숨을 건진 성사장은 이후 절대 자신의 피붙이는 남기지 않겠다는 결심과 다르게 10살의 진이를 만나게 되면서 유일하게 마음을 내어주고 자식같이 그를 돌본다. 죽을 결심을 했던 한계령에서 몇 번의 우연이 겹쳐 다시 삶을 살게 된 그는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그곳에서 마지막 숨을 다하게 된다. 캐딜락 전당사의 첫 손님이자 그의 마지막을 함께해 준 진의 곁에서..

그는 하얀 캐딜락을 몰고 다니며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마이페이스였으며, 사람과 차는 절대 저당잡지 않는다는 신조로 전당사를 운영하는 괴짜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능력도 점차 쇠퇴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던 한회장 한승태. 검은 조직을 운영하는 수장이었던 그는 사람들의 장기밀매 등을 통해 수많은 이익을 얻으며 힘없고 간절했던 사람들을 이용해 먹으며 살아왔다. 자신의 경호원으로 가까이 두는 게이트들의 능력을 이용해 최고의 능력을 가진 심장과 능력을 이어받기 위해 8년을 숨죽이고 살다 마침내 찾아 헤매던 심장을 발견한다. 끝까지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버리지 못했던 그의 최후는 짜릿함 마저 선사했다.

 

막강 게이트들의 총집합으로 쉴 새 없이 열고 닫히는 포트와 그로 인해 계속 바뀌는 장소. 그리고 진이 여는 과거로의 포트는 현재의 상황을 변화 시킨다. 동일 시간대로 되돌아가도 묘하게 변화된 상황은 그의 선택이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미쳐 또 다른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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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삶도 선택의 연속이었을 거고 그들 중 일부는 다른 선택을 했었을 테니까. 이 삶이 수많은 평행세계 중 하나라면 난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거니 이 자체가 변수가 되겠지.

2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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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능력은 손을 납으로 묶어두면 한동안 발휘할 수 없었는데 극강의 상황에서는 이 방법 또한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의 신체 하나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대항했으며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둘 이상이 모여 힘을 합치고 상황을 타파해 나갔다.

 

복수와 정의, 지킴과 신의가 만나 결국 8년 전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8년 전으로 목숨을 걸고 돌아간 심경장은 과연 죽었을까? 살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이후를 암시하는 몇몇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후에 에필로그를 통해 밝혀진다. 또한 책 제목이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는 제목의 의미까지도 속시원히 밝혀주니 마지막까지 긴장 늦추지 말고 끝까지 완독한다면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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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팔 년 뒤 그 사람이 없다면 그의 선택이 조금 늦었을 거라고. 아마 멀리서 오고 있을 거라고

2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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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58~259페이지에서는 진이 성사장의 집에서 발견한 사진을 통해 지금과 묘하게 다른 몇 가지를 발견한다. 현재 시점에서 성사장의 그 사진은 유일하게 미래에서 온 물건이다. 진은 포트를 통해 과거로의 회기를 몇 번 거듭하지만 미래의 모습을 암시하는 그 사진만큼은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익숙함과 낯섬이 공존했던 이 소설은 SF 누아르 장르만큼이나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을 절묘하게 잘 버무려 놓았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었지만 어쩌면 그 시간들은 8년 전과 후를 아우르는 시간 속의 이야기들이었으며 혈연과 지연으로 맺어진 관계들은 끈끈함과 신의가 빛났다.

 

진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지만 어쩌면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흰 캐딜락을 타고 오는 '성사장, 성제욱'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실패와 좌절 속의 공간, 퇴물들의 집합소 같았던 카지노의 배경 속 우직하고 깨끗한 진, 우락부락한 덩치를 자랑했던 타인과도 외향적으로도 많이 달랐다. (심지어 캐딜락 전당사 사무실 안에서도 진만 유일하게 하얗고 유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외적인 부분부터 작가는 진과 타인을 다르게 설정하여 대비효과를 노렸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갖지 못해 타인을 헤치면서까지 가지려고 하는 그 능력은 누군가에게는 저주 같았던 능력이었다. 자신을 해치고, 가족을 해치고, 행복을 앗아가는 위험 속에 빠뜨렸던 그 능력, 가장 큰 절망과 가장 큰 소망을 통해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의 크기로 키워진 포트.

 

진이의 성장 속에서는 그를 지키고자 하는 엄마 정희와 무심한 듯 무뚝뚝한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내면을 단단하게 키워준 성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웃음, 감동, 절망, 처절함, 복수심, 욕망, 간절함 등 수많은 감정과 상황들을 이 책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글귀도 함께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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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창아, 남자가 좋은 시계를 차는 건 좋은 시간을 살고 싶다는 뜻이다. 다음에는 거기서 한 단계 높여서 차라."

2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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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 원짜리 고가의 롤렉스 시계를 진의 19살에 선물한 성사장의 마음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한 흰 캐딜락의 모습도 이미지를 찾아서 함께 첨부해본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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