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미생(未生)' 연재가 시작되었을때. 많고 많은 웹툰 중의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혹시'라는 기대를 하게 된 것은 미생의 작가가 '이끼'를 그린 윤태호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끼를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림체가 요즘 웹툰처럼 화려하지 않고, 일본풍의 비현실적인 미소녀 캐릭터도 전혀 나오지 않는 이상한 그림입니다.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좀더 길게 늘려놓은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색깔도 총천연 컬러가 넘치는 웹툰 세상에서 이끼는 희끄리 죽죽한 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만화의 흡입력이란. 그리고 화려하지 않지만 그 강렬함이란.

이끼를 본 사람들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때 그 그림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굉장히 궁금해 했을 겁니다. 사실 우려가 좀 더 많아 보였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물론. 영화화 얘기에서 주인공은 박해일씨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대로 되었지만, 주인공이 누구인지 조차 햇갈리게 만든 마을 이장은 쿠웨이트 박으로 유명한 박주봉씨가 아닌 분이 되었지요.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아무튼. 이끼를 풀어냈던 작가의 직장이야기는 어떨까 많이 궁금했습니다. 바둑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은 프로기사를 꿈꾸다 낙오(?)한 고졸 새내기였지요. 바둑과 연계가 된다고 하니 옛날 바둑이 몇년전의 프로게이머 처럼 유명하던 시절의 고리타분함이 들어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기좋게 당했죠. 바둑은 바둑인데 고리타분하지 않고 생생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마린과 저글링이 돌아다니듯 만화속 인물들은 움직였습니다.

 

웹툰의 등장인물이 움직인다?

만화속 이미지가 애니메이션 효과를 준 파일이 아닐진데 움직일리 없습니다. 하지만, 미생의 인물은 움직입니다. 분명히 표정을 짓고, 말을 하고, 감정을 느낍니다. 그럴리가요? 맞습니다. 물리적으로 그럴리가 없지요. 하지만, 읽고 있는 저의 머리속에서는 움직임입니다.

흑돌과 백돌. 오로지 흑백으로 만들어진 바둑판에 인생이 들어 있다고 말하는 어르신들의 말처럼 웹툰에 인생이 들어 있습니다. 분명히 컬러만화인데 흑백처럼 보이는 그 그림이요.

 

지독히 현실적이면서 지독히 비현실적이기에 빠져듭니다.

드라마를 봅니다. 그 드라마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것은 판타지로 봅니다. 어떤 드라마는 다릅니다. 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비현실적입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현실에 있는 것 처럼 보이기에 드라마에 빠져들듯이. 작가는 노련하고 능숙하게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자 봐바! 당신들 이렇게 살고 있지?'

미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위에 있지만 주위에 그런 직장인은 분명히 없습니다. 이런 앞뒤 안맞는 이야기를 꾸려 가는 것이 작가의 힘입니다. 눈이 벌건 직장 상사는 있습니다. 앞뒤 안가리고 제 몸 망가지는 것 잊으며 일하는 직장인도 있습니다. 때론 더 높은 임원에게 도박을 거는 상사도 있고. 계약직 직원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상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그 모든 것을 가진 상사는 없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을 잘 버무린 작가의 솜씨에 빠져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작가가 만든 만화속 인물을 가족처럼 쳐다보게 되고,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일들을 잘 해결해 나갈지 궁금합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과 비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또 만나기 어려운 웹툰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내야 하는 작가의 어려움은 얼마나 심할지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막연히 작가분이 지금처럼 계속 잘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엔 미생의 업데이트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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