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녀석과 함께 한 시간은 만 3년이 되어 간다. 
  늘 따뜻한 밥을 먹게 해준 녀석의 이름은 '전기밥솥'
  앞에는 '황금동'이라는 딱지를 자랑스레 달고 있는 녀석이다.
  요즘에 한창 선전하는 '뚜껑이 분리되는 깔끔한 밥솥'家 소속이지만
  조금 일찍 태어난 탓에 자기 몸을 분리시키는 깜짝 쇼를 연출하지는 못한다. 

  녀석이라고 하니 지금 입원해 있는 밥솥이 야속하다 느낄것 같아
  이름을 하나 재빠르게 붙여줘야 할것 같다.
  그래. '황동이'.. 이제 섭섭함은 없을듯. 

  황동이 몸에 이상이 발견된 것은 지난 주말.
  그날도 뱃속 한가득 따뜻한 '친환경 쌀로 지은 밥'을 곱게 모셔두고 있던 황동이.
  그 다음날이 출근이라 황동이 뚜껑을 살짝 열고
  얼마나 '친환경 쌀로 지은 밥'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닫으려는 찰라 

  번쩍하는 불빛과 함께 황동이는 쓰러졌다.
  기절이라고 해야겠지. 액정 표시부에 시간이 나오고 있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황동이의 주 특기 '친환경 쌀로 지은 밥'을 보온해 주는 기능은 전혀 들어먹지 않는다. 

  비상사태. 그 다음날 출근때 먹어야 할 따뜻한 밥은 없어진것.
  일단은 황동이 뱃속에서 따뜻한 밥을 그러모아
  '얼음밥'으로 만드는 수술을 집도했다.  

  ※ 얼음밥 : 밥을 프라스틱 상자에 넣은 후 냉동실에 얼려 두는 것.
                 나중에 밥을 먹을때는 전자렌지에 녹이면 된다. 
                 이른바 '수제 햇반'이라고나 할까?  오래 두고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큰 마트에 가면 1인분에 맞게 담을 수 있는 통을 파니 구입해서 사용하면 된다.
                 얼음밥용 통은 한개에 1천원이었으니 큰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황동이가 가야할 병원(전기밥솥 A/S 센터)은 아침 8시 30분 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운영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직장인에게 이런 운영시간은 참으로 불친절한 모습이다.
  불끈. 화가 나다가도 그 안에서 일하시는 또 다른 직장인을 떠올리며 참곤한다.  

  그래서 오늘 마음먹고 황동이를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뭐라 말하기 어색하고 애매했지만
  회사 상사에게도 그대로 말할 수 밖에...  

  '저.. 내일 조금 늦겠습니다. 전기밥솥을 A/S센터에 맡기고 와야 할거 같아서요'  

  후끈거리는 얼굴과 야릇한 미소로 '그러려무나'허락하는 상사의 표정.
  그래도 황동이를 입원시킬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황동이는 크다.
  어떤 쇼핑백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크고, 어떤 가방에 넣을 수 없을 만큼 크다.
  황동이가 들어가는 가방은 등산가방 정도가 가능하다.  

  이어령 교수가 이야기 했다. 서양의 문화는 suit case의 문화라면 우리의 문화는 이것 

  분홍색 보자기로 황동이를 감싸고 출근길에 올랐다.
  버스를 탔다. 분홍색 보자기에 쌓인 황동이를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혔다.
  녀석도 기분이 좋은듯 가만히 흔들흔들 거린다.
  다행히 버스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8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에 황동이를 병원에 맡기고 밖에서 진찰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선생님(수리기사)이 나오시더니 진찰서를 써주시며 결과를 알려주셨다. 

  "퓨즈가 나갔네요. 10분이면 되구요. 금액은 43,000원입니다.
   10분만 기다리다 가져가세요. 그리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니 다음부터는 9시 이후에
   와주세요" 

  황동이의 부활이 반가웠지만, 분홍색 보자기에 쌓인 커다란 황동이를 안고
  직장에 출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9시 이후에 오라고 하다니. 같은 직장인 끼리 그럴수는 없는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부드럽게(남들은 '비굴하게'로 인지한다) 의사선생님께 말을 전했다. 

  "제가 출근을 해야 해서. 죄송한데 나중에 찾으러 오겠습니다"  

  병원문을 나서면서 황동이를 꼭 찾으러 오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주말이 되어야겠지. 황동이가 낯선 환경에 적응 잘 하고 있어야 할텐데
  황동이가 퇴원하면 다시 한번 '친환경 쌀로 지은 밥'을 한가득 만들어 줄 생각이다. 

  ## 오늘의 교훈 

  전기밥솥을 맡길때를 위해서라도 보자기를 준비하자.
  보자기는 가능하면 멋스런 쑥색이나 감색이면 좋다.
  야시시한 분홍빛 보자기는 어렸을때 수퍼맨 놀이용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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