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이거...
도대체 마케팅을 어떻게 했길래 3년도 안돼어 28쇄를 찍었지?
찬사는 왜 이리도 남발되어 있는 거야?
2011년 영연방 최고 문학상 맨부커 수상작.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의 최신작.
결국, 찬사 마케팅으로 나까지 사서 읽게 됐군.

워, 워,
진정하고, 이 책의 의미를 한 번 반추해 보자.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목적은 인물의 삶에 대한 공감이다.
주인공 토니 웹스터는 자기보존 본능이 강하고, 소심하고, 불화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딱, 나다.
그에게 베로니카, 애니, 마거릿 세 여자가 있었듯 나에게도 K, C1, C2 세 여자가 있었다.

이러한 공통요소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떻게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쓴 그 독설 가득한 편지를 망각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노년에 재회한 베로니카와 토니의 소통에 있어서 어떻게 그렇게 핵심은 제쳐두고 주변만 빙빙 도는지 공감할 수 없었다.

주제는 `내 기억과 다른 나의 삶` 정도가 될 것 같다.
겉 표지도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고, 착각은 생을 행복하게 이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축적되어 결국 앞 표지의 그림처럼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원제 (The Sense of An Ending)와 다른 책 제목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혼란을 더한다.
토니의 예감, 예상은 늘 빗나가기 때문이다.

구성과 관련하여 사건 중간중간에 배치된 노작가의 생에 대한 철학은 오랜 세월에 덧입혀진 내공으로 공감할 만했고, 몇 차례의 반전 또한 교묘했다.

문체는 번역문이라 딱히 기대할 게 없었다.
무지하지도 오버하지도 않은 정도였다.

인물, 사건과 관련하여
에이드리언은 초지일관 신비로웠고,
그와 베로니카 어머니와의 관계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러한 인물과 사건이 이 소설의 핵심 역할을 하다 보니 소설 자체가 좀 모호해져 공감력을 떨어뜨렸다.

일반인이나 소설가나 나이가 들면 자꾸 자신의 기억으로 후세를 가르치려 드는 것 같다.
이 소설 말마따나 그토록 엉뚱한 개인의 기억으로.
그렇게 되면 `거대한 혼란(p.255)`이 온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도 볼 수 있듯, 소설가들이 자꾸 기억을 소재로 삼으려는 것 같다.
과학적 소재를 통한 소설의 과학화 경향이다.
하지만, 기억이나 심리 같은 과학적 용어 보다 오해 같은 문학적 용어가 소설에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풀어지면 개연성을 더하지만,
기억은 회복되도(기억상실증에서의 회복 같은) 억지성을 더할 뿐이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소재인 기억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끌어 들인다.
마치 역사가 집단 기억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한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는 다르다.
역사는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된 사실에 대한 해석의 문제다.

이래저래,
기억이라는 소재를 매개로 인생의 알 수 없음을 표현하여 공감시키고 싶었던 작가의 시도는 실패했다.
다만, 삶에 대한 작가의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은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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