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진 두루미 한 마리가 탈출을 위해 질척거린다. 

다리로는 할 수 없어 부리를 늪에 힘차게 박아 본다. 

부리도 다리와 마찬가지로 늪에 빠져든다. 

 

돈의 세계에서 책의 세계로 갈아타기를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책이 내게 구원을 줄 수 있을까? 

책의 세계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럼 왜 책에 빠져 보려 하는가? 

그냥 좋아서... 

얼마나, 언제까지. 

 

돈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듯 책도 나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돈이 내게 붙지 않았듯, 책도 내게 붙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읽을 것인가? 

그래도 읽을 것이다! 

이 짓 말고 할 게 없다. 

 

저녁에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 가의 38년 된 병자 이야기의 성경공부교재를 편집했다. 

오래된 절망, 실현가능성 없는 기다림 속에서도 절망을 회피하려는 위선을 부리듯 나 또한 책으로 위선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명백백 책이 내게 구원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구원은 그 분의 능력과 사랑에 달린 문제지 돈과 책으로 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감사하고, 섬기며, 희생하는 삶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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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아비 2010-04-1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속에 과연 길이 있는가 고민해본 적이 있지요.
책 속에 분명 길은 있는데,
그 길을 가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Bookee 2010-04-20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길은 여러 갈래 있겠지요.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 가볼만한 길, 아름다운 길도... 하지만, 그 길을 가면 한 점 후회없이 걸을 수 있을까요? 길의 막바지에 '여기가 아닌가벼!' 하는 건 아닌지... 한편, 길을 찾았다해도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겠지요. 아, 복잡해라! 복잡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