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수신 : 에미 & 레오
제목 : 새벽 세 시, 이곳에도 바람이 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사는 부키예요.
당신들이 계신 곳보다 9시간 빠른 곳이랍니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새벽 세 시, 오늘 이곳에도 바람이 좀 불었답니다.
당신들의 얘기 10장(매너 없이 저는 10장부터 읽어버렸답니다. 저도 몰랐던 스포일러 기질이 다분해요)에 나오는 북풍은 아니었구요.
최근, 한 달 정도 이른 여름 날씨에 한낮 기온이 29도씨까지  올라가 다소 더웠고 대기도 탁했더랬어요.
요 며칠 남쪽지방엔 비가 내렸고 그 영향인지 바람이 다소 불어 한낮 기온도 22도씨를 넘지 않았고 무엇보다 공기가 깨끗했어요.
가까이는 우면산, 멀리는 관악산을 같은 선명도로 볼 수 있었으니까요.
내일, 모레 여행가서나 허파를 가득 채울 제주 표선의 공기를 벌써 오늘 이곳에서도 실컷 맛보았으니까요.

문득 당신들의 메일함에 끼어든 이 이방 불청객의 메일에 다소 뜨아하셨죠?
먼저, 제 입장을 밝힐께요.
저는 두 분을 사랑해요.
그리고, 두 분을 응원해요.

아...
그렇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당신들의 사랑을 예쁘게 보지만, 제가 직접 그런 사랑의 일탈을 꿈꾸진 않으니깐요.
소극적으로 공감하면서 제가 사는 이곳 관습, 도덕, 종교의 수인한도 내에서 제 삶에 적용할 바를 찾을 뿐이예요.

당신들의 메일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어요.
마치 에미 당신이 레오와 처음 메일을 주고 받게 된 것이 실수와 우연에서 비롯되었듯이.
저는 몇 개의 독서클럽에 다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가끔씩 유익함을 넘어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마치, 2013년 12월에 읽었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같은 책요.

무심코 독서 앱 `bookple` 뒤지다가 당신들을 먼저 만난 사람들의 소감을 읽게 되었어요.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제목이 마음에 쏘~옥 들었어요.
직전에 읽은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제목 때문에 짜증이 나 있었거든요.

제목을 읽는 순간, 알 수 없는 바람이 일어 제가 지금껏 경험한 모든 새벽 세 시가 다 기억났다면 믿으시겠어요?
새해 첫 일출을 석굴암에서 보겠노라고 불국사를 출발하여 오르던 길,
로타리 산장과 천왕봉을 지나 텐트 친 세석평정에서 올려다 본 주먹 만한 별들이 가득했던 은하수,
3차, 4차를 오가던 나이트 클럽과 호프 집과 막걸리 파전 집,
숙영지를 찾아 완전군장으로 끝없이 걸었던 비포장도로,
공부는 해야 하는데 공부가 되지 않아 들락거렸던 비디오방과 라면집,
부조금 흰 봉투와 검은 넥타이 멘 나를 실어 나르던 심야 우등버스,
더 읽고 싶은데 그만 읽어야 하는 시간,
아이의 작은 울음 소리에도 즉각 반응하는 시간 등등.

새벽 세 시는 제게
혼자의 시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나의 한계에 다다르는 시간
나에 대해 낙망하는 시간,
새로운 나를 꿈 꾸는 시간,
나의 참 모습이 엿보이는 시간이었어요.

그 모든 시간엔, ... 바람이 있었어요.
이 바람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첫 머리에 등장하는 그 바람은 아니예요.
그 보다는 어떤 변화의 바람이예요.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바람, 방향을 바꾸는 바람, 뭐 그런 거예요.
돌아 보면 다행히 모두 다 좋은 쪽으로 분 바람이었어요.
그렇다고 그 바람 속에 사랑이 스며 있는 걸 부정하진 않아요.

에미와 레오, 당신들의 사랑을 읽으며 저도 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사랑...
제게 그것은 어떤 후회스러움이었어요.
놓고, 놓치는 경험을 하면서 다시는 그런 후회할 짓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니까요.
또,
그것은 어떤 아쉬움이었어요.
지나간 사랑도, 지금의 사랑도 늘 시작처럼 뜨겁진 않았고, 변함없이 지속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늘 아쉬웠어요.

그렇다고 제가 제3의 상대와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건 결코 아니예요(이럴 때의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지금의 제 현실적 사랑에 어떻게 윤기를 더해볼 수는 없을까 생각하는 정도예요.
아,
참고로 저는 당신들 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요.
오늘 처음 쓰는 말인데, ...늙었죠.
에미와 좀 달리 제 DNA를 가진(검사한 건 아니구요, 살다보면 부인할 수 없는) 아들도 둘 있어요.
아차, 다음 달엔 셋째가 또 태어나요.

이런 제가 요 며칠 당신들의 사랑얘기에 아주 감질맛 나는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10분의 자투리 시간만 나도 당신들의 메일함을 훔쳐 보느라 정신이 없으니까요.
레오!
실례가 아니길 바래요.
저, 에미 같은 여자 너무 좋아해요.
밝고, 자신있고, 주체성 있고, 다소 엉뚱하고, 윗트 있고, 털털하고, 솔직하고, 씩씩하고, 똑똑하고, 예민하고, 그리고 예쁘고 날씬할 것 같은...
마치, 건지 섬의 `줄리엣` 같은.

아, 맞다맞다!
당신들이 주고 받은 사랑 메일 읽으면서 `건지 감자...` 읽은 이후로 1년 6개월 만에 환청을 들었어요.
p.51 중간쯤,
˝레오씨?˝

`건지 감자...`에서는 p.90 아래,
˝오빠?˝
였어요.
제가 얼마나 에미, 레오 두 분의 메일을 감정이입하여 읽는지 대충 짐작이 가시죠.

아내가 일어났네요.
어제 저희 가족은 모두 초저녁부터 잤어요.
저녁 먹으면서 아내에게 당신들 얘기 했어요.
지금 이러는 것도 다 알구요.

오늘 메일은 요기까지만 쓸께요.
나머지 절반 좀 더 읽다가 새벽에 한 시간이라도 눈 붙이려구요.
잘 자요, 당신들의(p.79, 155) 부키.

추신 : 나머지 읽기 전에 후속 편인 `일곱번째 파도` 주문 먼저 할께요.
당신들처럼 사랑스러운 사람들과는 좀 더 함께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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