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에 몸이 가려워 잠이 깼다.
아이를 재우다 못 씻었다.
01:00에 일어났다.
03:30에 다시 자려다 04:30에 알람을 해놨기에 지금 이러고 있다.
어제는 커피도 많이 안마셨는데?
모닝페이퍼는 발신이고, 아티스트 데이트는 수신이라고 있다.
모닝페이퍼는 내 속 생각(mind)과 마음(heart)을 적는 것이다.
둘째 아들 이름을 剛后(강후)로 지으려 한다.
굳셀 강이다.
굳세다는 것은 힘차고 튼튼하다는 뜻이다.
剛 자는 산맥을 칼로 끊는 것을 뜻한다.
남자의 덕목은 지혜와 용기다.
첫째 아들 이름은 지후라 했다.
勇 자가 있으나 발음이 세련되지 못했다.
둘째 이름을 강후로 지었으니 나도 굳센 아비가 되어야 할 터이다.
사실 나는 굳센 자가 아니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소심하다.
말 그대로 간이 작다.
내 아들들이 지혜롭고 용감하길 바란다면 나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여러 일로 복잡하다.
개인, 가정, 교회, 직장, 사회의 여러 일로 혼란스럽다.
나는 다중인격의 복합체다.
홀로 있을 때와 교회공동체에 속해 있을 때의 내가 다르다.
나는 그렇게 복잡하다.
슬슬 머리가 아프고 졸린다.
10:00까지 잤으면 딱 좋겠다.
하지만, 칼로 산맥을 자르듯 힘차게 일어나야겠지.
소설가 서영은님이 산티아고 길을 40일 순례 후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란 책을 냈다.
사랑과 문학이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도 지나고 보니 아니란 걸 알겠더란다.
삶의 핵심은 자기 헌신이라고 했다.
진리는 사는 것이지 말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근데 난 이제서야 말과 글을 다듬어 보려 한다.
지은이는 67세다.
나이가 더 들어야 깨달을 수 있을까?
생계를 위한 보험설계사로서의 일의 소중함을 말이다.
난 이 새벽에 조장모임 서기로 봉사하며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가?
그저 교회에서 말씀 가운데 교제하는 소그룹이 활성화 되어 많은 성도들이 은혜 받고 충만해지길 바랄 뿐이다.
씻어야겠다.
가렵다.
졸린다.
비유와 은유 연습을 해보자.
아직 깨어나지 않은 곰이 있다면 그 녀석이 부럽다.
사자의 낮잠도 부럽다.
목사님은 얼마나 힘들까?
그러니 이 정도 졸음은 참아줘야 하는 거 아냐?
맞다.
목사님이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줄까봐 작명의뢰를 못하는 것에서 내 신앙의 현주소를 본듯했다.
하나님께서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실까봐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는 내모습 말이다.
그래서 인생이 맨날 요모양 요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