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는 궁색하다. 가족들로부터 핍박받는다. 60대 할아버지가 코카콜라 한정판을 구해보겠다고 행사장에서 관계자에게 팔아달라고 사정하는 모습만 봐도 궁색하며 그분을 가족들이 좋게 볼 리가 만무하다. <수집의 즐거움>을 집필하면서 다양한 수집가를 인터뷰했지만, 가족들로부터 환영받고 응원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청첩장 수집가 할아버지는 무작정 이승엽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신분으로 청첩장을 달라고 떼를 썼다. 청첩장뿐만 아니라 신문스크랩을 좋아해서 온 집안이 당신의 잡다한 수집품으로 가득 채운 끝에 가족들에게 더는 수집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해야 했다. 수집활동을 위한 인터넷 카페까지 폐쇄 당했다. 


만년필 수집가는 <수집에 즐거움>에 넣을 만년필 사진을 요청했을 때 ‘아내가 출타한 틈’을 타서 촬영해서 보내주었다. 나만 해도 그렇다. 절판본을 구해보겠다고 서울에 있는 출판사 사무실을 쳐들어가기도 했고, 불혹이 넘은 나이에 탐나는 절판 본을 사려고 20대 초반 학생과 댓글로 싸우기도 했다. 용돈이 궁한 대학생의 약점을 노려 그가 아끼는 절판 본을 뺏어오기도 했다.


집안의 가장 큰 방을 서재로 차지한 원죄로 툭하면 ‘서재 철폐령’이 내려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먼지를 혐오하는 아내에게 ‘먼지의 온상’인 서재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서재의 마지막 남은 한쪽 벽면에 책장을 넣겠다는 이야기를 10년째 하지 못한다. 수집가는 과연 ‘잉여다움’과 ‘철없음’의 표상인가? 나는 헌책을 수집하는 취미 덕분에 <오래된 새 책>을 냈다. <오래된 새 책>으로 T.V 출연도 했고, 인터뷰도 여러 번 했으니 ‘출세’를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책을 수집한 덕분에 <수집의 즐거움>을 출간하자는 제의까지 받았다. 책을 수집하니까 다른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알지 않겠느냐는 출판사의 판단이었다. 수집가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그분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사실이나 이른바 눈길만 잘 못 돌리면 <개저씨> 소리를 듣는 연배 지긋한 사람들의 ‘소년 감성’을 구경하는 일은 흥미진진했다. 


돈 버는 일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간의 사연을 듣는 것이 즐거웠다. 그 양반들을 취재하면서 얻은 소득은 ‘수집’이 문화적 자산이 될 수도 있고 수집가 자신의 돈벌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돈 되는 일이 아닌 것에 몰두했는데 ‘돈벌이’가 되기도 한다. 콜라 수집가는 콜라 수집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본업인 마케팅에 큰 도움을 받고, 텀블러 수집가는 아예 텀블러 제작 공장을 차렸으며, 영덕의 대게 식당 아저씨는 자신의 식당에 그간 수집한 피겨를 전시하여서 손님들을 더 많이 끌어모았다. 괴담을 수집하는 작가 선생은 자신의 창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구의 카메라 및 영상 기기 수집가는 아예 박물관을 차려서 어린 학생들의 체험활동 장으로 인기를 끈다.


청첩장 수집가는 애초부터 ‘결혼 생활’의 ‘성스러움’ 때문에 수집을 시작했는데 ‘이혼’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기 싫어한다. 그만큼 가족을 아낀다. 아내 몰래 비싼 만년필을 모으는 수집가는 자식들이 성인이 되면 깜짝 선물을 하는 것이 수집의 목적이다.


수집은 성스러운 과업이며 즐거운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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