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 대통령의 필사가 전하는 글쓰기 노하우 75
윤태영 지음 / 책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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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지만 2009년 5월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연결식 조사를 상기해보자. 장례식을 치러내기 위한 한승수 국무총리의 '의례적인' 조사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것을 애통해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통한의' 조사가 이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조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로 시작해서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로 마치는 한명숙의 조사는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의 모든 일정 중에서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눈시울을 가장 뜨겁게 달군 대목이었다. 이 조사를 쓴 이가 바로 윤태영 전 비서관이다.


국민의 반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위대한 경사스러운 날'이며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이 대통령이 된 쾌거'였고 또 다른 국민의 반에게는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때보다 더 한 절망을 안겨준 2012대선을 상기해보자. 결과에 관계없이 역사적인 선거기간동안 유난히 뇌리에 오랫동안 스며든 연설의 한 장면은 문재인 후보의 어눌한 입에서 나왔다. "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명연설을 쓴 이가 바로 윤태영 전 비서관이다.


이 두 개의 글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글은 어려운 미사여구가 아닌 살아 있는 생활 속의 언어를 재료로 삼아야 하고, 윤태영의 글쓰기 방식이 우리 시대의 더할 나위 없는 글짓기 선생이라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다양한 글쓰기의 지침 속에 알알이 담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저자와 관련된 인물과의 에피소드는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를 글쓰기 교재가 아닌 '노무현 추억하기'로 읽히기도 한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는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대한 칭찬을 전혀 듣지 못한 '문학청년' 지망생 저자가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고, 정치권의 글쟁이를 거쳐서 이제는 <기록>(책담, 2014)이라는 걸출한 저서를 남긴 글쓰기 선생이 되기까지 몸소 체득한 글쓰기 비법 75가지를 알려준다.


스포츠 세계에서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의외로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지 않다. 뉴욕 양키스의 '조 토레'나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하지만 넥센 히어로스의 '염경엽'처럼 무명선수출신의 명감독이 많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명선수였던 사람은 애초부터 타고난 재능이 워낙 탁월하여 '못하는' 선수들의 심정이나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애초에 자신이 주목받지 못한 현역생활을 거친 감독들은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도력을 발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저자 윤태영도 마찬가지다. 문학을 지망하긴 했으나 재능은 타고나지 못한 그는 꾸준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하고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명문장을 써낸 장본인이 되었다. 재능은 싸구려이며 중요한 것은 훈련이라는 말의 훌륭한 예가 바로 윤태영이다. 그런 그가 '실용적이고 당장 처방이 가능한 글쓰기 비법'을 소유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글쓰기 강좌는 지켜야 할 수칙도, 사례도 구체적이다. 김훈이나 김승옥의 소설에서 예문을 구해오기도 했지만 예문의 대부분은 그가 정치 글쟁이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글쓰기 실무의 경험에서 따왔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메모로 쓴다"

"이름 모를 소녀 신비함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

"접속사,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자. 흐름을 중시하자"

"모든 것을 설명하지 말자. 욕심이 글을 지루하게 만든다"

 으로 대표되는 75가지의 글쓰기 노하우는 철저하게 실용적이며 구체적이다. 




소설이야말로 글쓰기의 훌륭한 교재라는 가르침에 나는 철저하게 동의한다. 좋은 소설을 읽고 그들을 흉내 내는 일이야 말로 좋은 글쓰기의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도 무릎을 치게 하고 가슴을 울리는 명문장이 가득한 김훈이나 김승옥 그리고 이문구 등의 소설을 읽을 때면 수첩을 곁에 두고 메모를 한다. 메모한 문장이나 문투를 다음번 글을 쓸 때  한 번 써먹겠다는 생각이다. 여의치 않으면 그 문장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면서까지 흉내 내야 속이 시원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흉내내다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어투와 글 솜씨를 가지게 된다고 믿는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는 고매한 학문의 깊이를 자랑하면서도 제자의 함량을 고려하지 않는 저 높은 곳의 하늘 같은 스승이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호랑이 선생의 송곳 같은 질문에 쩔쩔매는 친구를 돕기 위해서 나지막한 속삭임으로 힌트를 주는 다정한 친구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밝혀둘 것은 이 글은 접속사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흐름을 중시하라는 저자 윤태영의 충고대로 접속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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