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산소에 잡초가 많이 생겨서 조만간 벌초를 해야겠단다. 두어 시간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어머니 묘소에 딸이 찾아뵙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닌데 숙모님도 함께 오셨다고 한다. 그날이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신이란다. '죽고 나서 산소를 잘 꾸미는 일 쓸데 없는 짓이다'. '살아 있을 때 찬물 물 한 바가지 주는 것만 못하다'는 어머니의 소신을 신봉하는 나는 그날이 어머니 생신인 것도 몰랐다.


 알았다고 해도 산소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세상을 달리한 동서의 생일을 맞아 일삼아 산소를 찾아뵙는 숙모님의 정성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된다. 며느리 사이의 정서를 남자인 내가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혈육이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없는 정과 의리가 있다는 사실만 감지할 뿐이다. 감히 내가 가늠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그분들끼리의 추억과 정서가 있을 것이다.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몰랐으면 모르데 알고는 지나칠 수가 없어서 형제들이 각출해서 어머니와 아버지 산소를 손보기로 했다. 인부가 두 명이 왔는데 한 분은 여든이 훨씬 넘어섰다. 그런데도 봉분을 부수고 새로 조성하는 일을 능숙하게 잘하신다. 


비석에 쓰인 함양박씨라는 문구를 보시더니 ‘탑골에 박 씨가 아무개가 있는데’ 라시며 우리 집안 어른의 존함을 술술 말씀하신다. ‘할아버지, 방금 말씀하신그분이 이 묘의 주인이세요, 저는 아들이고요’라고 말씀드렸다. 3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력과 형제들의 존함을 어제 일처럼 말씀하신다.


꿈에서조차 보기 힘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을 만나면 마치 아버지를 눈앞에서 뵌 것처럼 감격스럽고 눈물겹다. 세상을 먼저 떠난 동서의 생일을 기억하고 발걸음을 주는 것과 우연히 만난 옆 동네 어른에게 아버지의 흔적을 듣는 일은 이제 다음 세대에서는 겪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숙모님과 그 어르신이 건강하고 오래 사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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