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내가 쓴 책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내 아내와 딸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내와 딸은 내가 책을 몇 권을 냈는지 모를 수가 있고 나는 그들이 내 책의 출간 현황을 어느 정도 아는지 모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부끄럽다.

작년인가 집으로 우송된 소득세 청구서를 보고서야 아내는 내가 직장에서 원천 징수되는 것 말고도 별도로 ‘소득세를 내는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오래된 새 책>을 출간했을 때 방송국에서 촬영을 오겠다는 날이 되어서야 아내는 내가 책을 냈고 집에서 인터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이젠 책을 7권이나 냈으니 ‘대놓고’ 글을 쓰는 편이다. 여전히 책에 대해서 대화는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 가족의 불문율이 친척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여지없이 깨진다. 작은할아버지가 수필가이셔서 책을 내기도 하셨고, 매년 수필 동인지를 세대별로 나눠주셔서 책을 내는 것이 별다른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내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친지 분들이 내가 쓴 책 이야기를 하시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굴이 얼마나 붉어졌는지 숙모님이 ‘조카, 혹시 자네 술 마셨나’고 하문할 정도였다. 특히 참기 어려웠던 순간은 날 더러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부를 때였다. 민망함과 ‘진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는 죄책감으로 그냥 땅으로 꺼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내 전매특허인 ‘버럭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내였다. 아내가 나섰다. 아내는 나처럼 숨는 것이 아니고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사태를 해결하고자 했다. 또렷또렷하게 이렇게 말하더라.

“이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에요.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입니다.”(명쾌하다)

“네이버에서 박균호를 입력해보세요”(아내는 내 이름을 네이버에서 입력해봤구나)“

<독서 만담>이라는 책을 썼어요” (아내는 숭고하다. 자신을 못된 아내로 생각할 수도 있게 만드는 책을 나의 대표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책을 읽고 그 책에 관해서 쓴 내용이에요” (심지어 아내는 내가 쓴 책을 읽어 봤구나)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가 내가 쓴 책에 대해서 가장 긴 발언이었을 것이다. 아내의 몇 마디로 친지들은 더 내가 쓴 책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다.

며칠 뒤 아침에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가 세종 도서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 그 소식을 자백했다. 3쇄를 찍게 되었다는 소식도 알려주었다. 숨기기에는 ‘제법’ 큰 뉴스이니까. 아내는 이례적으로 ‘축하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이게 유시민이 우리 집에 와서 놀다 간 것이구나”라는 말을 했다. 당연히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을 수 있는 밖 에. 아내가 전날 밤에 유시민 선생이 내 서재에 와서 나와 같이 놀다가 간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여러 명의 친척에게 ‘칭찬 조리 돌림’을 당했을 때도 참은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로또를 사지 뭘 했냐고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샀단다. 5천 원에 당첨되었다고.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아내가 꾼 대박 꿈을 내가 빼앗은 것 아닌가. 세종 도서에 선정되고 3쇄를 찍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설명하려던 나는 기운이 빠졌다. 잘 자라는 이모티콘을 조용히 누르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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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2-02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내분이 참 현명하고도 사랑스러우십니다 호호^^

박균호 2019-12-02 20:5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당.

잔느 2019-12-09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분이 참 자랑스러우시겠어요. ㅎㅎ

박균호 2019-12-10 06:30   좋아요 0 | URL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