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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런스 딥 - [할인행사]
이재한 감독, 알렉스 매닝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컷 런스 딮 the cut runs deep 의 재구성
푸른 심장이 붉게 물들어 발화점이 낮아지면
세포 분열로 성장통을 겪기 시작하는 것은 몸에서 마음으로 옮겨가고 그 불길은 걷잡을 수 없다.
시검석試劍石을 조각낸 명검으로도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실絲인 강한 인력引力은
원래 천상의 것이 아니라서 그 끝이 예정되어 있건만
이끄는 쪽도 이끌리는 쪽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덫에
어리석은 그러나 너무도 달콤한 희망을 건 채 발을 내딛는다.
소년은 어른인 남자와 어른인 여자에 압도된다. 그리고 남자도 또 여자도 소년을 원한다.
남자는 길을 잘못 들기 전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소년을 통해 향수를 느끼고 싶어하고
여자는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소년에게서 갈구한다.
쓰레기더미에서 탈출을 꿈꾸는 소년은 기꺼이 욕망과 유혹에 몸을 내맡긴다.
화려한 불길에 휩싸여 있는 소년은
남자의 조용하고 매력적인 미소에 깃든 슬픔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고
여자의 신비하고 설레이는 사랑에 깃든 절망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불구인듯한 하이브리드로서의 삐걱거림도 이렇게 취한 상태에선 대충 견뎌낼 수 있다.
남자와 여자는 곧 그 불꽃이 꺼질 것을 안다.
속도는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분출되는 아드레날린 효과와 교감신경 흥분의 지속시간은 갈수록 짧아져
밝음과 어둠은 자아의 정체성을 교란시키고 결국 파멸하고야 만다.
소년의 목에 매여있는 투명하고 단단한 사슬은 갱단의 보스가 쥐고 있다.
남자는 보스를 쏜다. 쏘는 것뿐이 소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역한 화장실 청소에서 벗어날 때의 소년의 기쁨이 들어 있던 남자로부터의 선물은
다시 한번 포장되지 못한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부서지고 만다.
태어난걸 후회할 만큼 아픈 상처를 내는 칼이 아닌
한 방에 평안해 질수 있는 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없었던 시작이었다.
세 사람의 눈물은 메말라 그들의 눈에서 흐르지 못하는 대신
무당인 남자의 모친이 타는 작두날을 붉고 끈적하게 물들이며 비릿하게 뒤섞인다.
베어진 상처는 깊게 흐른다, 남자에게서도 여자에게서도 그리고 소년에게서도...
손바닥만하게 작은 티비화면에서 간신히 비춰지던 영화속의 데이빗 맥기니스를 보는 순간, 감독이 "널 위해 영화를 만들겠어."하고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에 200퍼센트 공감했고, 얼마전 전파를 타던 CF는 그를 얼마나 별볼일 없는 범부로 전락시켰는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영화들의 어떤 캐릭터에서도 이만한 카리스마에 사로잡혀 본 적은 없다. 아니, 그 이전엔 카리스마가 무슨 뜻인지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재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재로 두말할 것도 없이 감상적이다. 그러나 감독은 그 경계를 정확히 짚어내어 선을 넘지 않았다. 제목에서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를 떠올리게 하는 이재한감독의 차기작 [내 머리속의 지우개]가 궁금하다.
어찌해볼 수도 없이 허망한 엔딩씬에 흐르는 울먹이는 듯한 보컬의 Tanita Tikaram의 삽입곡 I might be crying은 내 데스크탑의 winamp에서 끊임없이 repetition되어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을 여운을 안개처럼 피워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