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과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를 기념하는 것-성탄절, 석탄절 등-에 익숙한 사람들이 역사 속 인물의 탄생을 기념한다. 그만큼 찰스 다윈이 인류의 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내가 매체를 보지 않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윈의 생월인 2월이 조용하게 지나간듯하고 그것이 나에게는 매우 의외다.
때마침 우리 과의 네이버 카페대문에서 <최재천의 서재는 모두의 숲이다>라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홍보를 따라갔다가 많은 좋은 책들을 소개받았고 몇 권을 구했다.

과학자 장대익의 창의력은 [다윈의 식탁]을 “재미있는” 소설로 만든다. 발칙하고 재기발랄하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진화론의 행로와 현재의 쟁점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는 좋은 책이다. 글을 쓰던 시점에 생존하는 진화론의 거물급 학자들이 한 자리에서(가상이지만) 도킨스팀과 굴드팀으로 나뉘어 토론한 주제들은 자연선택의 힘, 협동의 진화, 유전자-환경-발생, 진화의 속도와 양상, 진화와 진보이다.

- 자연선택의 힘(첫째 날) ;
자연선택에 부합하기 위한 생명체의 적응 행태중 강간과 언어를 놓고 굴드팀이 약간 수위에 못미치는 의견을 펼치는데, ‘인간우월주의’에 집착한 탓이 크다. 이런 태도는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상태에서 ‘안보이는데도 보고 싶은 것이 보인다고 우긴다.’로 발전할 수 있다. 저자가 정리한대로, 과학자라면 “어떤 능력이나 행동의 적응성 여부는 그것의 옳고 그름 여부와 별개라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하겠다.
적응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체(유전자)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환경도 고려해야 하며, 발생 부산물(스펜드럴)이었던 것이 적응, 진화하면 주산물이 될 수 있다. 진화론이라는 말자체에 ‘변화’와 ‘시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진화론을 얘기할 때 어떤 시점만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오류일수 있다.
각 분야에 세계적인 대가이자 경쟁자인 토론자들 앞에서 놀랍게도 에드워드 윌슨이 과거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인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책 [다윈의 식탁]이 온갖 참고서적과 각 토론자들에 대한 실제 모습을 고려하여 상상력을 버무린 점을 생각하면, 윌슨에게 그런 청렴결백한 인품이 있다는 것이고 과학이 바른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그 점이 희망 한 방울을 보탰다. 둘째 날에 도킨스가 보인 겸허한 모습이 윌슨이 발단이 아닐까 ㅎㅎㅎ

- 협동의 진화(둘째 날) ;
자연선택은 어떤 수준에서 작용하는가 - 도킨스의 주장은 간단하고 논리적이라서 확실해서 알아듣겠다. 그는 일단 개체가 유전자의 운반자라고 한다. 그러니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단위라는 것이다.
내 수준에서 알아듣기 쉬운 굴드의 반박인 “유전자의 수명이 도대체 얼마나 길답니까? 600만 살쯤 된 침팬지 종보다 더긴가요?”라는 비유는 매우 빈약하다. 실제 600만 살을 살고 있는 침팬지는 없다. 단지 침팬지가 600만년 동안 이어져 온 종이라는 얘기다. 침팬지의 털에 관한 몇 가지 유전자도 침팬지를 따라 600만 살을 살았다. 이쯤 되면, 도킨스가 얘기한 유전자는 물리적인 ‘분자’나 ‘가닥'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정보’라는 것을 알아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둘째날 도킨스팀에 ‘세미나의 저승사자’라는 키처가 없었던게 굴드팀이 선방할 수 있는 배경중 하나일 듯.(웃음) 굴드팀이 주장하는 ‘다수준 선택론’은 ‘사실’이라는데 동의하지만, 그 매카니즘을 밝혔는다에 대한 얘기는 찾아봐도 없다.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 뭔가 명쾌하게 설명되는 원리가 있으면 그 원리를 환원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 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발생(셋째 날) ;
유전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굴드팀이 내놓은 의견은 없었다. 도킨스팀인 저자가 굴드팀에 소홀했던 것인지 대체로 유전자의 정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일치가 이루어져 대립적으로 다루지 않은건지는 모르겠다. 굴드팀의 비가법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주장에서, 나는 굴드팀이 G1하고 G2를 정확하게 분류했는지의 궁금하다. 물론 도킨스팀도 진화론을 연구하면서 환경을 배제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오야마가 삼천포로 여러번 빠졌는데, 저자가 완벽한 작가일 수는 없고, 진화론에 완전 통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런 설정이 나온 것이리라.

- 진화 속도와 양상(넷째 날) ;
이만큼이나 진화론이 발전해 있는데 진화 속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이 의외다. 도킨스팀이 환경과 발생학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으니 ‘넓이 뛰기’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음에도 힘을 얻지 못하는 듯 보인다.

- 진화와 진보(다섯째 날) ;
생명은 진보하는가 -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진보의 개념을 ‘질적 발생’에 둘 것인가 ‘양적 증가’에 둘 것인가에 관한 문제인 것 같다. 단순개체가 없어질 필요가 없으며 새로 출현, 발생하는 생물은 다양성 증가로 이해해야 한다. 복잡성이 주류가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반면, 다양성 증가는 진보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저자의 입장 때문에 책의 내용이 도킨스팀이 우세한 쪽으로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굴드팀이 좀 더 합리적인 자세로, 이념을 떨쳐버리고,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주도권을 잡기 어려워 보인다. 도킨스팀은 이미 자신들도 모른채 실체와 정보를 함께 다루고 있고, 굴드팀은 정보부분을 아예 끼워넣을 생각도 못하고 있는 듯 하다.(그래서 아마 도킨스가 종교의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게 아닐까.) 문제는 유전, 진화가 정보라는 것과 어떤 관계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두 팀의 미래가 가각 상반되게 밝을 수도 어두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잘못된 시간 설정, 문법의 오류등은 편집,감수팀에 문제가 있을 것 같고, 내용상의 착오는 저자의 실수인 듯 한데, 이후 판본에서는 정리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잘 안 될 듯. 내용 오류와 해당 문법은 해당되는 부분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집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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