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메일이 왔다.

보이지 않는 전선을 타고 고향의 봄 내음이 전해졌다...

 

::: 백석, 고향(故鄕)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누구의 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 시인의 시였다는 것 뿐.

그 시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시인이 자신의 고향에서 왔다는 한 사람을 만나서 고향 소식을 묻거늘...

수많은 궁금증 다 접어두고

마을 어귀 나무에 올 봄에도 꽃이 피었냐고...

그 한마디로 그리운 고향 소식을 전해 듣고자 하더라.

어찌나 긴긴 여운이 감도는 시던지...

그 시가 요즘들어 자꾸 생각난다.

그 시를 대신해 이 시를 한번 두번...읽고 또 읽어보고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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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화, 밤의 이야기 20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요

그리움에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밤, 고독, 소망, 삶, 그리움 그리고 너...

이 밤...결국 나는 너를 찾고 있었던 것이 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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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택, 끝이 까맣게 탄 새 풀잎

 

  봄을 느껴보고 싶고, 봄을 보고 싶습니다.

  푸른 눈을 틔우는 나무 가지 끝을 가만히 들여다보

고 싶고, 나물을 뜯어보고 싶고, 푹신푹신한 좁은 논

두렁길을 천천히 걷고 싶고, 논둑 밭둑에 돋아나는 풀

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내 빰에 부는 감미

로운 봄바람을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고, 치마폭을 나

부끼며 마을을 벗어난 흙 길을 해 질 때까지 걷고 싶

고, 양지 바른 언덕에 앉아 해바라기를 해보고 싶습니

다. 시냇물이 흐르는 강가에 버들강아지 부드러운 솜

털을 가만히 만져보고 싶고, 마른풀을 태운 강변, 새

까만 재 밑에서 돋아나는 끝이 까맣게 탄 풀잎들의 파

란 몸을 보고 싶고, 얕은 강물로 나온 잔고기 떼들의

희고 반짝이는 새 몸을 보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들 중에서,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실은

  당신이

  제일 많이

  보고 싶답니다.

 

 

 

봄이 잡힐 듯...그러나 여전히 저 멀리에 있습니다.

오늘은 애써 다가오는 봄을 매섭게 몰아내는 눈도 내렸습니다.

산과 들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풍경 속에서 봄을 느껴보고 싶고 봄을 보고 싶었지만...

이 모든 것들 중에서,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실은

저도

당신이

제일 많이

보고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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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월,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아마 그 언젠가에 잊고 있을 것이다.

먼 훗날 그 때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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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소녀 2004-03-0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김소월, 못잊어
 

초저녁 하늘이 너무도 맑아 하늘의 별들도 어제와 달리 영롱하게 보였다.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깊은 밤에는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차갑게 얼어버린 별들을 따서 야곰야곰 깨물어도 보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

자정이 다 되어 독서실에서 나오니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의 함박눈이 내렸다.

가로등 아래로 더 많은 눈송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소박한 하루의 일과를 마친 뿌듯함과 함께 예고없이 내리는 하얀 눈 송이가 인적드문 밤길,두려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혼자 실실 웃으며 걸어가기에는 내 마음에 가득 담고도 넘치는 기쁨이었다.

문득...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하지만 깊은 밤 전화를 걸어도 미안하지 않을 그 누군가가 내게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그저 주머니 속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다 말 뿐이었다.

...이럴때 또다시 밀려드는 고독감은 잠시 잠깐 촉촉해진 내 감성을 곧장 메마르게 한다.

......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눈길 위의 외로운 발자국은

그리하여 고요한 그리움이 되고

이내 그 위로

소리없는 눈이 긴긴밤 수북히 쌓여

내 고독한 자취 감추어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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