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는 졸업은 '학업을 마치다'라는 의미(동목관계)의 卒業이겠지만 나에게는 졸업은 '졸렬한 업'이라는 의미(수식관계)의 拙業이라 할 수 있겠다.
생을 두고 언제나 진행형이어야 할 업(Karma)을 마쳤다라는 말이 상당히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고(설령 그 "업"이 학업에 국한된다 할지라도), 또 그간 내가 이루었다고 자부했거나 혹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던 업이란게 돌이켜 생각해보니 졸렬하고 치졸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겸손하다 못해 정말 모자란 탓일까.
초등학교 졸업식때부터 나는 단 한번도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그 "식"을 치뤄본 적이 없다.열 세살짜리의 내 눈으로는 그 의식이 참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여겨졌었고 그래서 수차례 오시지 말라고 당부 했음에도 불구하고 꽃다발과 카메라를 들고 기어이 날 찾아오신 어머니와, 난 싸움끝에 시간간격을 두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졸업식날 내게 자장면 한그릇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성이 난 어머니는 홀짝홀짝 울다가 잠든 내게 점심상도 차려주시지 않았으니 말이다.그 시절 난 끝끝내 날 이해하시지 못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으며 한편으로는 졸업식에 일가친척을 동원하여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눌러대는 그 일련의 의미없는 행동에 기뻐하는 이들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내 자신에게 분해서 씩씩대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는 낮잠을 청했다.
중학교 졸업식때는 어머니가 학교에 당도하시기도 전에 내가 부리나케 집으로 가 버려 어머니와 길이 엇갈렸다.다행히 언쟁은 피할 수 있었지만 싸리눈이 지저분하게 흩날리던 그 날 추위속에서 날 찾으러 교실 이곳저곳을 기울이다 허탈하게 집으로 향하셨을 어머니가 눈에 선해 나는 어머니가 뒤늦게 집에 오시자 자는 척을 하였다.어머니는 나머지 가족에게 한숨을 내 뱉으시며 원망섞인 그러나 이제는 포기한 듯한 어조로 나란 녀석에 대해 말씀하셨다.그 날도 난 3년전과 같은 복잡한 마음때문에 소리없이 울다 지쳐 잠들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때는 이런 날 포기하신 어머니께서는 결국 학교에 오시지 않았다.
초등학교때부터 난 졸업을 앞두고 매번 내게 자문했었다.
그간 내세울만한 업적을 이루었냐고.
실은 내세울만한 업적때문만이 아니었다.
난 삶이라는 게 늘 과정의 연속이고 매 순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런데 그 삶을 3년 혹은 6년 단위로 끊어 타인으로부터 내 삶을 평가받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웠으며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인정되는 세상의 시선에서 한편으론 별다른 결과물이 없었던 내 현실이 초라해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번 졸업식에는 어머니께서 오셨다.언니 그리고 동생까지도 왔다.
역시 이번에도 내게 "결과물"은 없었다.하지만 난 그간 6년을 보람차게 살아왔다.하지 못했던 그리고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에 대한 아쉬움은 헤아릴 수 없지만 되돌아 가도 난 지난 6년처럼 조금은 우둔하게 하지만 성실하게 지금의 이만큼만 걸어올 것이다.
아,나 역시 내 삶을 6년 단위로 끊어 평가하는 누를 범했다.그러나 스무살에 접어들어 적어도 난 성장하지 않고 살았던 십대 때보다 반뼘은 성장했기에 이를 기점으로 삼고자 한 것에 불과하다.앞으로의 내 삶은 7년,8년,9년 그리고도 쭈욱... 끊임없는 성장의 연속 "과정"에 놓일 것이다.
그래도 내심 "결과물"이 없이 마음이 편치 않은 내게 오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주위에 이번에 졸업하고 취업한 친구들 있어?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거봐, 또 열심히 하면 돼."
'그렇다.삶은 그런 것이었다.卒하지 않은 業을 위해 나는 다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