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숨가쁘게 달려온 한 해였다.

지나고 보니...늘 숨이차서 헐떡 거렸던 나는 줄곧 먼 허공을 애처롭게 응시할 뿐이었다. 

내 자신을 돌아볼 넉넉함도 내 주위의 많은 것들을 헤아려볼 너그러움도  상실한 채 무엇에 이끌려 쫓기듯 여기까지 왔는지...지금 이 시간 내게는 공허감...허무감...적막감...상실감...이 한숨과 뒤엉켜 흩어질 뿐이다.

...

내가 하는 일들이 여전히 위태로웠고 낯선 이곳에 홀로 서게된 나는 지극한 외로움에 시달렸으며 이제는 무뎌질법한 내 실존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금방이라도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것만 같았다. 

앎과 삶 대한 열정은 무덤덤해진채로 때로는 능력의 한계에 절망하기도 했으며 또 목적을 상실한채 여러날 방황하기도 했으며 그러다가 묵묵히 살아가는 날이 어느날 허락되기도 하였으며 그런 기나긴 침묵의 시간속에서 사람이 무척이나 그립기도 하였다.

친구의 소개로 만날 뻔 했던 그러나 결코 닿지 않았던 인연으로 만나지 못했던 그 친구에 대한 헛된생각들로 봄 여름이 지나갔고...

늦여름에서 짙어가는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절대 만나지 말았어야 할...그분에 대한 하염없는 생각들로 밤잠을 뒤척였다.

참으로 무모하고 허망한 일들을 가슴 가득 안고 살아왔던 나는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한 해에는 그 모든 것 털어버리고 내게 죽어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 안타깝고 서럽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체념의 지혜를 품고 살았으면 한다.

...

푸른 바람 쌩쌩 불어라...

아직 마르지 않은 내 눈물 모두 가져가 버리게...

...

기억하라,노 프라블럼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3년 한 해 내게 벅찬 감동과 기쁨을 주었던 세권의 책을 선정해 보았다.

나는 올해 무료한,그 끝이 보일것 같지 않은 무기력한 겨울방학동안 <지구별 여행자>라는 이 책 한권으로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며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우리 모두는 지구로 여행온 여행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지...올드 시타람씨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지금도 가끔씩 내게 넉넉한 웃음과 잔잔한 깨달음을 가져다 준다.

 

<야생초 편지>라는 이 책 역시 내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안겨주었던 소중한 책이었다.인간이 위대해 보일때는 자연에 대항하여 그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연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자연 앞에 겸허할 때가 아닌가 싶다.잡초가 아닌 야생초로 길가의 풀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겸손한 눈길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세느강은...>,<악역을...>,<빨간 신호등> 모두 올 한해 내게 많은 것을 일깨우게 했던 책이었지만 홍세화님의 저서 중 나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접했고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나는 아마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천상병 시인의 시가 내 마음의 몬타나를 다녀온 후 부쩍 생각났다.더이상 흐르지 못하는 강물 앞에서 이제는 서러워 할 수도 그리워 해서도 안되는데 속절없는 눈물이 흐르려는 까닭은...물가에 앉아 은빛 잔물결을 볼 수 없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천상병, 강물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그래 그랬었지.

그해 겨울 바람도 숨을죽인 그 어느날,

해저문 산그늘이 강물을 덮어버리고

산자락 해그늘이 내 눈물을 감추어버렸다네.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江

마음도 한자리에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것네.

 

저것 봐,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것네.

 

 

...깜빡이는 도심의 불빛을 등불삼아 강물도 눈물도 멎어버린 그 해 가을 강과 겨울 산을 지나 찬란한 이듬해 봄을 향해 무거운 발길을 돌립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티벳소녀 2003-12-2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
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 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
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 천상병, 나무
 

대중가요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은 사랑의 時란 M.C. The Max의 노래가 와닿아서 귀기울여 듣곤 한다.

가사가 좋은 노래를 좋아하는 까닭에 철지난 노래 몇 곡만을 시도때도 없이 흥얼거리거나 어지간한 대중가요는 소음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의외의 일이다.

내게 사랑하는 때(時)는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렸지만(그렇게 단념하고자 하지만 그러나...어쩜...) 여전히 가슴이 저려오는 까닭은...아마도...

오래된 책장속 그 묵은 향기를 타고 과거에 무심히 지나쳤던 글 한편이 새롭게 내게로 다가왔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닙니다.

그대의 초라함, 그 부끄러운 눈빛이 있기에

그대는 나의 가슴에 스며들어 나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온전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대의 부족함, 그 안타까움이 있기에

그대는 나의 가슴에 스며들어 나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화려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대의 그늘, 그 아픔이 있기에

그대는 나의 가슴에 스며들어 나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당당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대의 망설임, 그 갈등이 있기에

그대는 나의 가슴에 스며들어 나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부유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대의 가난, 그 한숨이 있기에

그대는 나의 가슴에 스며들어 나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말 때문이 아닙니다.

그대의 침묵, 그 눈물이 있기에

그대는 나의 가슴에 스며들어 나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

그 어딘가를 응시하는 안경너머의 그윽한 눈빛, 수줍은 웃음과 함께 번지어져나오는 겸손함, 당당해 보이는 너른 어깨 뒤에 감추어진 서글픔...한숨....그 모든 것들을 품고 있었던 한 사람...그래서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나.

그러나 나를 아프게하는 단념을 뒤로하고 내 사랑의 時는 침묵속에서 저물어 갑니다.

...

한참을 앓고 있죠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이 사랑을 깨달은 순간이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 날이었죠

피할 수 없어 부딪힌 거라고 비킬 수도 없어 받아 들인 거라고

하지만 없죠 저를 인정할 사람 세상은 제 마음 미친 장난으로만 보겠죠

 

바람이 차네요 제 얘기를 듣나요

저 같은 사랑 해봤던 사람 혹 있다면은 저를 이해할테죠

단념은 더욱 집착을 만들고 단념은 더욱 나를 아프게 하고

어떻게 하죠 너무 늦었는데

세상과 저는 다른 사랑을 하고 있네요

... 달도 쓸쓸하네요

저 같은 사랑 시작한 사람 혹 있다면은 도망쳐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티벳소녀 2003-12-2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사랑은 언제나 이성이 전제된 것이라고 나는 오랜동안 믿어왔었다.이성에 의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신뢰와 배려를 기반으로 한...그 무언가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제 앞에서 나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적어도 지금의 내 부질없는 마음이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이기 때문에...
"It is love, not reason, that is stronger than death."
 

오늘 나는 오후 4시 무궁화열차를 타고 이곳을 빠져나가 꿈에도 그리던(너무도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사실임!) 고향에 가게 된다.

오후 8시쯤이면 나는 평화동 사거리 그 근처를 지나 구이 쪽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집에 평화동 사거리가 소개되어 나도 잠깐 적어볼까 한다.우리 동네가 시에 등장하다니...어찌나 반갑고 흐뭇하던지 이 시를 읽다가 나는 기쁜 마음에 소리내어 웃었던 적이 있다.

...김용택 시인의 시를 가장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나는 까닭은 아마도 내 고향의 풍경이 그의 시속에 다시 피어오르기 때문이리라.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은 싫다네

평화동 네거리 서학동 방면으로 가는 신호등 옆 휴대폰 중계탑 우에

까치같이 살다가

아침이면 코롱아파트 곁을 지나

푸른 산 푸른 강으로 나가 수많은 나무와 꽃들을 만나지만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은 싫으니 그러나

사랑은, 내 사랑은 어디에서 어디로 오는가

...

:::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이 싫다네...중에서

 

그때 당신은

평화동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서 있었습니다

...

문득 가을을 보았습니다

...

나는 차를 타고 구이 쪽으로 갔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당신이 세상 속으로 그렇게 가고 내가 가는 세상에는

가을이었습니다

 

::: 가을, 평화동 사거리...중에서

 

눈이 옵니다

당신은 평화동 사거리 신호등에 걸려 서 있습니다

...

구이로 가며

나는 흩날리는 눈발 속에

푸른 소나무 한 그루를 칩니다

 

::: 겨울, 평화동 사거리...중에서

 

10여년 동안 나는 평화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1Km내 동서남북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그중 가장 행복했고 가장 서러웠던 때는 서쪽으로 향하는 황금빛 집에서의 4년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까닭은 그 때가 지금껏 살아본 집 가운데 제일 좋은 집이었으며(소박하기는!) 나는 나만의 방을 처음으로 갖았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나는 매일 집으로 향하는 그 길목에서 황금빛 노을을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그때 나는 "해가 지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집에서 나는 살았네."란 말을 되내이곤 했었다.)그리고 언제고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집 근처 내마음의 몬타나로 향하는 고요한 산책길에서의 행복한 추억이 함께 자리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한편으론는 가장 서러웠다고 또 말하는 까닭은 그 때 나는 혼란스럽고 두려웠던 시간을 원망과 한숨 그리고 그칠줄 모르는 눈물로 보냈기 때문이리라.

오늘 집으로 가면...나는 꼭 한번 평화동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무심히 걸어보리라.해 질 무렵 찬바람을 맞으며 그때처럼 벅차오르는 슬픔과 서러움을 서산자락 그 끝에 묻어둔 채로 그저 그렇게 묵묵히 걸어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