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오후 4시 무궁화열차를 타고 이곳을 빠져나가 꿈에도 그리던(너무도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사실임!) 고향에 가게 된다.
오후 8시쯤이면 나는 평화동 사거리 그 근처를 지나 구이 쪽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집에 평화동 사거리가 소개되어 나도 잠깐 적어볼까 한다.우리 동네가 시에 등장하다니...어찌나 반갑고 흐뭇하던지 이 시를 읽다가 나는 기쁜 마음에 소리내어 웃었던 적이 있다.
...김용택 시인의 시를 가장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나는 까닭은 아마도 내 고향의 풍경이 그의 시속에 다시 피어오르기 때문이리라.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은 싫다네
평화동 네거리 서학동 방면으로 가는 신호등 옆 휴대폰 중계탑 우에
까치같이 살다가
아침이면 코롱아파트 곁을 지나
푸른 산 푸른 강으로 나가 수많은 나무와 꽃들을 만나지만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은 싫으니 그러나
사랑은, 내 사랑은 어디에서 어디로 오는가
...
:::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이 싫다네...중에서
그때 당신은
평화동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서 있었습니다
...
문득 가을을 보았습니다
...
나는 차를 타고 구이 쪽으로 갔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당신이 세상 속으로 그렇게 가고 내가 가는 세상에는
가을이었습니다
::: 가을, 평화동 사거리...중에서
눈이 옵니다
당신은 평화동 사거리 신호등에 걸려 서 있습니다
...
구이로 가며
나는 흩날리는 눈발 속에
푸른 소나무 한 그루를 칩니다
::: 겨울, 평화동 사거리...중에서
10여년 동안 나는 평화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1Km내 동서남북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그중 가장 행복했고 가장 서러웠던 때는 서쪽으로 향하는 황금빛 집에서의 4년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까닭은 그 때가 지금껏 살아본 집 가운데 제일 좋은 집이었으며(소박하기는!) 나는 나만의 방을 처음으로 갖았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나는 매일 집으로 향하는 그 길목에서 황금빛 노을을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그때 나는 "해가 지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집에서 나는 살았네."란 말을 되내이곤 했었다.)그리고 언제고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집 근처 내마음의 몬타나로 향하는 고요한 산책길에서의 행복한 추억이 함께 자리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한편으론는 가장 서러웠다고 또 말하는 까닭은 그 때 나는 혼란스럽고 두려웠던 시간을 원망과 한숨 그리고 그칠줄 모르는 눈물로 보냈기 때문이리라.
오늘 집으로 가면...나는 꼭 한번 평화동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무심히 걸어보리라.해 질 무렵 찬바람을 맞으며 그때처럼 벅차오르는 슬픔과 서러움을 서산자락 그 끝에 묻어둔 채로 그저 그렇게 묵묵히 걸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