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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현실의 벽 앞에 멈춰 서 있는 젊은 당신에게
엘링 카게 지음, 강성희 옮김 / 라이온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세계 최고의 무엇은 대체로 ‘기록’에 의존한다. 가령 세계대회에서 가장 높은 점수나 단축된 시간, 연장된 길이 등으로 매겨진 순위를 기준삼아 만들어진 세계랭킹으로 평가된다는 말이다. 모험이나 탐험 같은 것에는 세계최고라는 단어가 붙을 수 없다. 다만, 그 분야의 권위자 정도로는 불릴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을 ‘세계 최고의 탐험가’라고 홍보하는데 동의하고, 표지 우편에 진한 색으로 저자를 수식하는 문구로 쓴다.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이 책에 대한 의문이었을 뿐, 내용에 대해서 전적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표제는 저자가 진정으로 하려는 말을 압축해 놓은 듯하였다.
엘링 카게. 노르웨이 출생. 세계 최초로 걸어서 남극점에 도달하였으며, 북극점, 에베레스트까지 헤트트릭을 달성한 최초의 탐험가이다. 또한 변호사이며 출판사 CEO, 미술품 수집가이자 세 아이의 아빠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이드에 실린 그의 사진에는 코에 고드름이 맺혀있고, 얼굴에는 생기가 넘치는 미소가 만연하다. 기대감이 서린 독자의 눈에는 정말 근사한 이야기를 해 줄 듯한 편안한 인상의 아저씨다.
책의 재질이 참 좋다. 올 컬러로 되어있고, 그만큼이나 일러스트는 화려하다. 목차부터 예사롭지 않은데, 총 18개의 주제로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인생에 대한 모험,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생각들을 심어주는 책이다. 즉. 젊은이에게 필요한 조언들을 하고 있는데, 인생의 항해 앞에서 그가 느낀 철학적, 실제적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이다. 실제로 자기 계발서에 놓여있지만, 에세이에 버금갈 정도로 자기 얘기를 많이 한다.
책은 주제부터가 기승전결이 없다. 때문에 주제 그 자체가 가지는 효과도 반감되고 있다. 일정한 형식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두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용으로 들어가면 책은 문단과 문단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장마저 그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전반적으로 그런 필력의 두드러짐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중 하나 집어내자면 75쪽에서 76쪽에는 정말 문장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된다.
디자인과 구성에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쓴 책이다. 그러나 조금 과하다. 알아서 친 밑줄은 기본이고, 문단 하나를 동그라미 치기도 하고, 일러스트가 활자를 방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내용을 커버하기 위한 눈속임용 같이 느껴지는 것은 콘텐츠의 질적 수준에 대한 실망감이 있기 때문이리라. 컬러풀한 색을 배경으로 독특한 활자로 타이핑되어있는 곳곳에 삽입된 다른 이야기들은 기존에 저자가 하고 있는 내용과 맞물리기는 하나 한 가지 내용에 몰입하고 있는 상태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번역 또한 실망이 컸다. 번역자의 색깔이 너무 두드러지나 독자에게 그닥 도움이 되는 필력은 아니었다. 저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한 번잡스러움이 묻어난다.
수술하듯 냉정하고 정교하게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해 보도하고 기술로 세상의 문제가 대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암시하는 대중매체에 의지하는 한, 혹은 자기 계발에 관해 자신들이 들려주는 충고를 따르면 더할 나위없는 행복을 얻게 해주겠다는 대중매체와 광고에 의지하는 한,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실 세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끊임없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p. 118 - 참고로 이게 한 문장이다.)
저자는 아직 독자에게 무엇을 던지기에 미성숙한 면이 보인다. 다만, 그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임을 알리기 위한 책 한권이 필요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근거 없는 추상적 단어에 대한 허무맹랑한 이야기, 불필요할 정도로 상식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들의 지식적인 나열, 많은 책의 인용을 통한 자신의 생각 피력, 모든 게 깊이가 없다는 생각을 잇게 한다. 상충되는 언어들도 있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페이지 113쪽과 116쪽에서 밝힌 자신에 대한 소개다.
저자의 생각, 저자의 삶,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싶다면 읽어도 좋겠다. 그러나 저자에게서 뭘 얻어내고 싶다면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저자의, 저자에 의한, 저자를 위한 책, 그 이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