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지 에디션 D(desire) 1
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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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미건조의 독(毒), 흘러가는 세월이 그저 호수같이 잔잔하기만 한 인생의 독. 거칠고 험하게, 눈을 뜨면 바로 헐떡거리기 시작하여 평생 목구멍에 풀칠하기 바쁜 인생들에게는 그런 독의 유혹이 자리 잡을 여유가 없다. 이 독은 ‘내가 가만있으면 세상도 가만히 있어주는 삶’으로 기어들어가 순식간에 급작스러운 영혼의 파멸을 이끌어낸다. 그런 소설의 전형이다. 데미지.

 

저자는 조세핀 하트. 아일랜드 태싱으로 런던 헤이마켓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고,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여러 편의 연극을 제작했다. 영국광고업계의 거물이자 마거릿 대처 총리 공보 담당이었던 모리스 사치와 결혼, 두 자녀를 두었다. 이 소설에서도 똑똑한 부인과 두 자녀가 나온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데미지>는 그녀의 처녀작으로, 1994년 영화화하여 당시 논란과 함께 화제가 되었다. 저서로는 <죄><가장 고요한 날><망각><사랑에 관한 진실>등이 있다. 그의 다른 저서들의 제목도 범상치 않은 듯, 머리복잡한 날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제목들이다.

 

주인공과 그 아버지의 관계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자기의 신념과 사상을 주입시키며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에게서 주인공은 늘 떨어져나가고 싶어 안달이었고, 반대로 가고 싶어 했다. 부자관계 이면의 부자연스러움과 부적응. 그에게서 아버지란 정떨어지는 기억들뿐이 없었다. 좋은 부인과 나쁘지 않은 결혼 -가장 중요한 게 결여된-을 한다. 자녀를 원했을까? 그러나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었다.

 

의사와 정치가로서의 평화와 안정, 그것이 50이 될 때까지 누리던 그의 삶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찍고 있었다. 그는 평탄한 가정에서 그의 영혼을 이방인이라고 인식한다. 결핍과 부재, 어쩔 수 없는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터져주기만을 기다린다는 듯이.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우연히 한 파티에서 만나게 되고, 불꽃은 일어난다. 그렇게 그 여자, 안나에게 붙어버린 그의 영혼, 중년이냐 싶게, 20대인 아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그녀의 노예가 되고자 한다. 아니, 완전히 종속되었다.

 

차를 몰고 런던으로 가면서 모든  게 나를 휙휙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체념하고 피해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파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 나는 서글펐다. 그래도 이게 전보다 더 사는 것 같은 것을. (p. 172)

 

아들과의 약혼식 전날 밤, 그들은 따로 정한 아파트에서 만나 정사를 벌이고 이를 본 아들은 충격에 아파트 난간에 떨어져 죽는다. 안나는 떠나고 모든 사실을 들은 아내는 충격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수건으로 피가 터질 때까지 자기의 뺨을 내려친다. 그것을 보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 부분이 재밌다.

 

그녀는 다시 수건을 들고 뺨을 후려갈겼다. 피가 탁자의 유리 상판에 튀었다. 안나의 어떤 이미지가 외설스럽게 내게 다가 왔다. 그녀의 얼굴이 늘 살짝 부어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그 열쇠일까? 안나는 생명을 구하는 거친 키스를 얼굴선이 바뀔 만큼 살이 여리지 않았다. (p. 212)

 

아들이 자신의 천인공노한 만행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죽었고, 믿었던 남편의 배신과 그로 인한 아들의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 미친 듯이 자학하는 아내가 앞에 있는데, 그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외설스러운 이미지’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독기운에 완전히 빨려 들어간 인간의 모습일 뿐.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잃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죽을 날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시간을 걷는 인생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살아가는 인간이 있고, 죽어가는 인간이 있다. 그가 삼킨 달콤한 유혹은 살아있는 듯한 ‘발작’을 일으키게 도와주었을 뿐, 그 또한 죽어가는 과정이었다. 늘 그렇듯 독성의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외국소설을 읽을 때 역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주목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연 낯설지 않은 이름, 공경희 씨의 번역이다. 그의 이력까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일단 번역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고 책 전반에 걸친 그녀의 필력은 독자를 꽉! 사로잡는다.

 

매끄럽지만 얇지 않은 종이의 질감이 좋다. 요즘 책값에 비해 좋은 종이를 써서 제지회사 이름도 확인하게 될 정도다. 표지는 별로다. 꼭 외설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이상스러운 디자인은 책의 내용이 지닌 깊이를 격하시키는 듯하다. 영화와 같은 구성, 그런 장치가 들어있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기는 더 쉬웠으리라. 장면간의 흐름이 지루하지 않는다. 삭제가 적절하다. 초반부터 지루하지 않게끔 잘 잘려져 있다.

 

나는 이 책을 머리나 식힐 겸 읽고 싶었다. 경영분야의 서적을 읽고 있다가 집중력도 떨어지고, 잡념도 많아져서 들게 된 책이다. 허나 머리를 식힐 수는 없었다. 이 책은 독자에게 계속적인 생각의 깊이를 만든다. 삶에 대한, 인간 본성에 대한, 욕망과 그 끝없는 욕심에 대한 독자만의 생각을 이끌어낸다. 주인공의 인생을 만화 보듯 간단하게 인식할 수가 없다. 너무나 본질적인 이야기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대신 몰입을 준다. 이 책이 주는 집중력은 온전히 주인공의 심리로 훅 들어가게 만든다.

 

사실 제대로 된 사랑을 해 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과 그 욕망에 미쳐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다. 여자로서 나는 잉그리드 - 주인공의 부인 -에게 더 큰 연민을 느끼고, 그의 삶을 더 동정해야 마땅할까. 그런데 나는 주인공의 사랑에도 그에 못지않은 동정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은 진정, 사람을 비참하게도 불쌍하게도 만들어버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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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트인 과학자 - 데이터 조각 따위는 흥미롭지 않아요. 특히 숫자!
랜디 올슨 지음, 윤용아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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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머리 좋은 애’가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것은 분야를 막론한다. 스포츠도 음악도 미술도 머리는 차갑게 해야 한다, 낚시를 하든지 밭을 갈던지 머리를 써야 효율이 있다. 처음 학교를 가서 분류되는 기준점이 바로 ‘두뇌 활용수준’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머리 좋은 애들이 인정받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공동체 - 학교 -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학력자를 머리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며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가장 두뇌를 많이 쓰고 살 것 같은 이미지, 과학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충고, 예상하기로는 쉽사리 먹혀들 것 같지 않다. 과학계의 관행과 전통적 분위기가 여전히 그대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너무 무리한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은 과학자들은 대체로 저자 같은 급진적 개혁성을 과학의 세계로 끌어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극(極)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뭐에 대해서? 관계와 소통에 대해서.

 

저자는 랜디 올슨. 1955년생으로 지금은 영화감독 겸 제작자, 그리고 과학 해설가를 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뉴햄프셔대학에서 해양생물학 교수로 재직했다. 38세에 그만두고 남캘리포니아대학교 영화과에서 석사를 받았고, 뉴웨이브 과학 다큐멘터리<얼간이들의 무리>와 <시즐>을 쓰고 연출했다. 2008년부터 100차례 이상 미국전역의 대학을 돌며 <얼간이들의 무리>와 <시즐>의 상영과 과학토크쇼를 결합한 ‘he Sizzling Dodos College Tour’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가 과학계에서 많지 않은 나이에 정년교수직을 보장받을 정도로 탁월한 과학계인사였음에는 분명하다. 저자 자신도 정년직을 포기 하고 할리우드로 갔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새로운 꿈을 위해 할리우드에서 연기수업을 비롯한 전공수업을 시작한다. 거기서 저자는 앞서 말한 ‘머리 쓰는 인간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어쩌다가? 전 재산을 톡톡 털어 할리우드에 가서 연기수업을 배우고 있는데, 그 수업의 마귀할멈 같은 여교수가 그에게 이런 말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넌 대가리로 연기를 하니, 이 XX야! 잘난 척만 하는 저 같은 인간들은 꼴도 보싫으니까 당장 내 수업에서 꺼져! 안 그러면 경찰을 부를 거야! 농담 아니야, 이 머저리 같은 놈아!’(p. 12)

 

저자는 책에서 ‘어떤 동기의 근원지’가 인간의 4가지 감각에서 유발한다고 설정한다. 곧, 머리, 가슴, 복부, 성기. 머리는 논리와 분석, 가슴을 오로지 감정, 복부는 유머와 직감, 성기는 범우주적인 역학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밑 부분으로 내려갈수록 포함되는 대중의 영역이 커진다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역학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과학자들의 연설 방식, 세미나의 분위기, 소통에 임하는 자세, 커뮤니케이션의 농도와 그 수준 등에 관해 실제 사례들을 언급하며 심각한 오만함에 처한 그들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지적한다. ‘제발 그런 고리타분한 과학자는 되지 말라고!’말이다. 그리고 자극과 충족, 전달력과 그 스타일, 호감의 방식을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실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그래서 과학자들이 대중과의 소통에 더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그 실질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일단 주제부터 진부하지 않다. 왜냐하면 독자가 한정되어있지 않다. 과학계에게 하는 이야기 같지만 실질적인 주제는 ‘소통’이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꼴통들인 과학자를 상대로 설득하는 글이기에 주제가 어렵거나 철학적이거나 진부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에서는 상당한 전문성이 깃들어있으나 주석이 자세하게 들어가 있기에 오히려 지식적이라고만 보면 좋을 듯싶다.

 

무엇보다 흐름이 좋다. 각 주제 간의 연결성도 좋고, 계속적인 흥미를 유발시키는 - 저자는 이 책에도 자극과 충족을 담고 있다 - 장치들이 있어 신선함을 유지하며 읽을 수 있었다. 참신한 스토리는 오로지 저자가 그러한 인생에서 겪은 일들과 저자 삶에서 얻은 깨달음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과 그 표현방법에 있어 기술적인 면들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유용한 지식과 마인드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대성에 알맞다 못해 탁월함을 지닌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분야에든지 보수적 권위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분들이 읽는다면 커뮤니케이션의 건전한 개혁성을 일깨울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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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현실의 벽 앞에 멈춰 서 있는 젊은 당신에게
엘링 카게 지음, 강성희 옮김 / 라이온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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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무엇은 대체로 ‘기록’에 의존한다. 가령 세계대회에서 가장 높은 점수나 단축된 시간, 연장된 길이 등으로 매겨진 순위를 기준삼아 만들어진 세계랭킹으로 평가된다는 말이다. 모험이나 탐험 같은 것에는 세계최고라는 단어가 붙을 수 없다. 다만, 그 분야의 권위자 정도로는 불릴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을 ‘세계 최고의 탐험가’라고 홍보하는데 동의하고, 표지 우편에 진한 색으로 저자를 수식하는 문구로 쓴다.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이 책에 대한 의문이었을 뿐, 내용에 대해서 전적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표제는 저자가 진정으로 하려는 말을 압축해 놓은 듯하였다.

 

엘링 카게. 노르웨이 출생. 세계 최초로 걸어서 남극점에 도달하였으며, 북극점, 에베레스트까지 헤트트릭을 달성한 최초의 탐험가이다. 또한 변호사이며 출판사 CEO, 미술품 수집가이자 세 아이의 아빠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이드에 실린 그의 사진에는 코에 고드름이 맺혀있고, 얼굴에는 생기가 넘치는 미소가 만연하다. 기대감이 서린 독자의 눈에는 정말 근사한 이야기를 해 줄 듯한 편안한 인상의 아저씨다.

 

책의 재질이 참 좋다. 올 컬러로 되어있고, 그만큼이나 일러스트는 화려하다. 목차부터 예사롭지 않은데, 총 18개의 주제로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인생에 대한 모험,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생각들을 심어주는 책이다. 즉. 젊은이에게 필요한 조언들을 하고 있는데, 인생의 항해 앞에서 그가 느낀 철학적, 실제적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이다. 실제로 자기 계발서에 놓여있지만, 에세이에 버금갈 정도로 자기 얘기를 많이 한다.

 

책은 주제부터가 기승전결이 없다. 때문에 주제 그 자체가 가지는 효과도 반감되고 있다. 일정한 형식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두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용으로 들어가면 책은 문단과 문단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장마저 그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전반적으로 그런 필력의 두드러짐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중 하나 집어내자면 75쪽에서 76쪽에는 정말 문장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된다.

 

디자인과 구성에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쓴 책이다. 그러나 조금 과하다. 알아서 친 밑줄은 기본이고, 문단 하나를 동그라미 치기도 하고, 일러스트가 활자를 방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내용을 커버하기 위한 눈속임용 같이 느껴지는 것은 콘텐츠의 질적 수준에 대한 실망감이 있기 때문이리라. 컬러풀한 색을 배경으로 독특한 활자로 타이핑되어있는 곳곳에 삽입된 다른 이야기들은 기존에 저자가 하고 있는 내용과 맞물리기는 하나 한 가지 내용에 몰입하고 있는 상태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번역 또한 실망이 컸다. 번역자의 색깔이 너무 두드러지나 독자에게 그닥 도움이 되는 필력은 아니었다. 저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한 번잡스러움이 묻어난다.

 

수술하듯 냉정하고 정교하게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해 보도하고 기술로 세상의 문제가 대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암시하는 대중매체에 의지하는 한, 혹은 자기 계발에 관해 자신들이 들려주는 충고를 따르면 더할 나위없는 행복을 얻게 해주겠다는 대중매체와 광고에 의지하는 한,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실 세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끊임없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p. 118 - 참고로 이게 한 문장이다.)

 

저자는 아직 독자에게 무엇을 던지기에 미성숙한 면이 보인다. 다만, 그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임을 알리기 위한 책 한권이 필요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근거 없는 추상적 단어에 대한 허무맹랑한 이야기, 불필요할 정도로 상식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들의 지식적인 나열, 많은 책의 인용을 통한 자신의 생각 피력, 모든 게 깊이가 없다는 생각을 잇게 한다. 상충되는 언어들도 있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페이지 113쪽과 116쪽에서 밝힌 자신에 대한 소개다.

 

저자의 생각, 저자의 삶,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싶다면 읽어도 좋겠다. 그러나 저자에게서 뭘 얻어내고 싶다면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저자의, 저자에 의한, 저자를 위한 책, 그 이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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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형사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1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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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수목드라마 <싸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그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는 거대권력과 맞물린 갈등상황에서 주인공이 지닌 ‘망자가 남긴 마지막 진실해부’라는 소신을 바탕으로 명확한 주제를 선보인다. 더불어 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에게 한국과학수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과연 선진된 과학수사는 더 많은 완전범죄를 무색케 만들 유일한 수단으로 보이며, 그 수준 또한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것이 존재하기 이전에는 어찌 범인을 잡았나 싶을 정도로 놀랍게 발전한 과학수사. 허나 그런 과학수사를 한발 앞서며 쉽게 뛰어넘는 전설의 형사들, 그 마지막 전설을 만나는 책이다.

 

저자는 피터 러브시. 1936년 출생으로 스포츠 역사가였다. 서럭 테크니컬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다 <죽음을 향해 비틀비틀>를 쓰기 시작, ‘크리브 경사’시리즈 8권으로 발전하며, 마지막권 <마담 타소가 기다리다 지쳐>는 1978년 CWA(영국추리작가협회)의 실버 대거상을, 1982년 <가짜 경감 듀>는 그해 CWA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다. 90년대부터 ‘피터 다이아몬드’시리즈가 시작되어 현재까지 10권이 진행되고 있는데, 첫 작품인 이 책은 앤서니상을, <소환>은 실버 대거상을, <블러드하운드>는 실버 대거상과 매커비티상, 배리상을 받았다. 2000년도에는 CWA 다이아몬드 대거상 즉,  미스터리 작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안았다.

 

책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작품에서만 잘나가다 ‘끝난’여배우 제럴딘의 시체가 추 밸리 호수에서 발견되었고, 이 사건은 에이번-서머싯 지역의 수사 과장 피터 다이아몬드의 손에 해결되어야 했다. 그는 맘에 맞지는 않지만 경찰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존 위그풀 경위와 함께 말이다. 주인공은 피터 다이아몬드이고, 그의 캐릭터는 실제적인 것보다는 위트적인 구석이 더 매력적이다. 명석한 두뇌는 존 위그풀에게 있다. 그는 사실 ‘잔뼈가 굵어’장인과도 같은 솜씨로 사건해결을 이끌어간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에게는 직설적이고 과감한 발언과 동시에 친근하고 사교적인 수법들을 이용하여 필요한 진술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지나가는 발언 하나에도 예리한 감각으로 파고드는 구석이 있다. 그는 현대과학기술의 업적이라 하는 수사시스템을 배척하고, 예전 전설의 형사들이 주로 구사했던 식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일은 어찌어찌 꼬여서 그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제럴딘 사건에서 손을 떼고 백화점 앞에서 산타복장으로 서성거리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탐정의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재판에 휘둘린다.

 

이 때, 재판이란 제럴딘의 남편 잭맨과의 불륜 오해를 산 여자 다나의 재판인데, 검찰은 그 여자가 제럴딘의 살해자라고 확증할만한 단서와 증인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 여기서 피터는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죽을 고비 넘겨가며 추적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재판을 뒤집을만한 또 다른 증거들을 잡아낸다. 그리고 그 진범이 누구냐 하면, (침 꿀꺽) 이야~ 이런 반전이 있나. 정말 흥미진진해서 밤에 잠이 안왔다.

 

영국 특유의 그림들이 살아서 움직이듯, 추리영화를 보는 것 같은 캐릭터의 느낌이 아주 잘 살아있는 문체였다. 특히 피터나 잭맨 등 여러 인물이 내뱉는 식의 유머 구사가 세련되고도 맛깔스러워서 읽는 재미를 더했다. 참고로 난 ‘잭 니콜슨’같은 배우를 떠올리며 피터의 대사를 읽었는데, 정말 영상으로 그 피터가 가진 표정과 눈빛을 보고 싶도록 만드는 인물이었다.

 

저자의 이력으로도 충분히 설명되겠지만, 거의 단점이 없는 소설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균형 있게 발달되어있다고 느낀다. 무겁지 않으면서 가볍지도 않다. 재밌으면서 경박하지 않다. 완전히 영국식이면서도 국한성을 느낄 수는 없다. 읽으면서 딴 생각을 한 게 있다면 이 시리즈를 정복해야지 한다는 것, 그 정도로 피터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는 점.

 

번역이 아주 좋았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저자의 결을 느낄 수 있도록 애쓴 번역이었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역시 시공사구나, 했다. 추리소설을 안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단 한 번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부의 1장만 읽어도 게임은 끝난다고 본다. 정말 재밌고 행복하게 읽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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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의 리더십
V. 하워드 지음, 김문운 옮김 / 문장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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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창이든 온라인 서점 검색창이든, ‘리더십’이라는 단어 하나를 치면 무수히 많은 리더십 연구소, 전문가, 서적, 매거진 등 관련된 산업이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은 다들 리더십을 주제로 한 세미나나 강연들이 많기에, 성공한 CEO를 모두 리더십의 대가라고 생각한다거나 단번에 높은 직위까지 승승장구하는 것이 리더십의 발휘라고 생각하는 오류의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리더십이 가진 그 본질을 만날 수 있다는 부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V. 하워드. 미국의 저명한 문필가로, 그가 저술한 인간관계 분야의 책은 전 세계에서 백만 부 이상이나 팔려 현재 이 분야에서 고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저서로는 <움직이는 사람과 움직여지는 사람><기적의 설득력><리더쉽, 리더쉽><당신도 리더가 될 수 있다>등이 있다. 그야말로 리더십 부문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리더십 관련 많은 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가장 핵심요소로서 ‘인간관계를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독자에 대한 타인의 생각, 반응, 느낌 같은 것까지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 말한다. 흔히,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면 사람 앞에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능력이 먼저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녹록치 않은 인간관계 먼저 정복하는 것이 리더십의 첫걸음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책은 총 13장으로 나뉜다. 1장은 설득력의 중요성과 설득의 순서를 논한다. 3장에서 5장은 인간관계에서 신뢰감과 호감을 심는 방법을 조언한다. 6장과 7장은 리더십에 필요한 인간의 감정을, 8장은 관계의 불편 해소를 9장과 10장에서는 리더에 관한 본격적인 조언을, 11장은 설득력 향상의 비결, 12장과 13장은 관계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비법과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방법들을 말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인간관계 안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기술적인 면모들을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책은 뭔가를 크게 아우르려고 하는 성격이 두드러진다. 뜬구름을 잡고 있다고 느낄 만큼 요즘 세대가 읽기에는 너무 포커스가 방대하고 범위는 흐릿하다. 물론 인간관계라는 틀을 잡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저자가 내는 목소리는 우왕좌왕인 경우가 많다. 이 말도 필요하고 저 말도 필요하기에 정돈되지 않은 조언이 많다.

 

비즈니스맨에게나 어울릴 듯한 리더십 조언이었다. 요즘에는 집단이나 단체들이 상당히 다양화하고 구체화되고 있고, 기업이라고 해서 늘 공급과 수요의 법칙만을 생각하며 운영되는 곳들만 즐비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저자는 인간관계를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Give & Take’라는 인식을 토대로 하여 ‘이익과 목적 달성’과 같은 결과물들로 리더를 기르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저자의 관점이 고착화되어 책 전반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세계관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한 리더가 되었을 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관계에 대한 갈증 - 이해 타산적이지 않은 관계,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것에서 본연의 안정과 평안을 찾으려고 하는 성질 -은 어떻게 풀어갈지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의할 수 없는 저자의 발언은 이것이다.

 

독립이란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스스로 해결하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은 서로 주고 받는 상부상조의 세계인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이익을 바라는 것은 이기심의 표시도 아니며 마음의 나약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방법에 따라서는 지성 있는 인간의 증거이기도 하다. (p. 189)

 

그러나 주옥같은 명언들이 많기도 했는데, 그런 명구들은 이 책을 진정한 고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인생에 낙오되는 것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을 끄는 어떤 필요한 힘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p. 218)

 

리더십만을 말하기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상대를 간파하고 관계에서 보다 유리한 지점에 오르는 방법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지적해 주고 있다. 그렇기에 공적인 자리가 많거나 관계에서 실질적인 이점을 안고 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적합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진 인간관계의 근본인식 자체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었다. 분별력 있는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면 분명 또 하나의 관계지침서로서는 유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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