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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형사 ㅣ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1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수목드라마 <싸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그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는 거대권력과 맞물린 갈등상황에서 주인공이 지닌 ‘망자가 남긴 마지막 진실해부’라는 소신을 바탕으로 명확한 주제를 선보인다. 더불어 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에게 한국과학수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과연 선진된 과학수사는 더 많은 완전범죄를 무색케 만들 유일한 수단으로 보이며, 그 수준 또한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것이 존재하기 이전에는 어찌 범인을 잡았나 싶을 정도로 놀랍게 발전한 과학수사. 허나 그런 과학수사를 한발 앞서며 쉽게 뛰어넘는 전설의 형사들, 그 마지막 전설을 만나는 책이다.
저자는 피터 러브시. 1936년 출생으로 스포츠 역사가였다. 서럭 테크니컬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다 <죽음을 향해 비틀비틀>를 쓰기 시작, ‘크리브 경사’시리즈 8권으로 발전하며, 마지막권 <마담 타소가 기다리다 지쳐>는 1978년 CWA(영국추리작가협회)의 실버 대거상을, 1982년 <가짜 경감 듀>는 그해 CWA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다. 90년대부터 ‘피터 다이아몬드’시리즈가 시작되어 현재까지 10권이 진행되고 있는데, 첫 작품인 이 책은 앤서니상을, <소환>은 실버 대거상을, <블러드하운드>는 실버 대거상과 매커비티상, 배리상을 받았다. 2000년도에는 CWA 다이아몬드 대거상 즉, 미스터리 작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안았다.
책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작품에서만 잘나가다 ‘끝난’여배우 제럴딘의 시체가 추 밸리 호수에서 발견되었고, 이 사건은 에이번-서머싯 지역의 수사 과장 피터 다이아몬드의 손에 해결되어야 했다. 그는 맘에 맞지는 않지만 경찰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존 위그풀 경위와 함께 말이다. 주인공은 피터 다이아몬드이고, 그의 캐릭터는 실제적인 것보다는 위트적인 구석이 더 매력적이다. 명석한 두뇌는 존 위그풀에게 있다. 그는 사실 ‘잔뼈가 굵어’장인과도 같은 솜씨로 사건해결을 이끌어간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에게는 직설적이고 과감한 발언과 동시에 친근하고 사교적인 수법들을 이용하여 필요한 진술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지나가는 발언 하나에도 예리한 감각으로 파고드는 구석이 있다. 그는 현대과학기술의 업적이라 하는 수사시스템을 배척하고, 예전 전설의 형사들이 주로 구사했던 식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일은 어찌어찌 꼬여서 그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제럴딘 사건에서 손을 떼고 백화점 앞에서 산타복장으로 서성거리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탐정의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재판에 휘둘린다.
이 때, 재판이란 제럴딘의 남편 잭맨과의 불륜 오해를 산 여자 다나의 재판인데, 검찰은 그 여자가 제럴딘의 살해자라고 확증할만한 단서와 증인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 여기서 피터는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죽을 고비 넘겨가며 추적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재판을 뒤집을만한 또 다른 증거들을 잡아낸다. 그리고 그 진범이 누구냐 하면, (침 꿀꺽) 이야~ 이런 반전이 있나. 정말 흥미진진해서 밤에 잠이 안왔다.
영국 특유의 그림들이 살아서 움직이듯, 추리영화를 보는 것 같은 캐릭터의 느낌이 아주 잘 살아있는 문체였다. 특히 피터나 잭맨 등 여러 인물이 내뱉는 식의 유머 구사가 세련되고도 맛깔스러워서 읽는 재미를 더했다. 참고로 난 ‘잭 니콜슨’같은 배우를 떠올리며 피터의 대사를 읽었는데, 정말 영상으로 그 피터가 가진 표정과 눈빛을 보고 싶도록 만드는 인물이었다.
저자의 이력으로도 충분히 설명되겠지만, 거의 단점이 없는 소설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균형 있게 발달되어있다고 느낀다. 무겁지 않으면서 가볍지도 않다. 재밌으면서 경박하지 않다. 완전히 영국식이면서도 국한성을 느낄 수는 없다. 읽으면서 딴 생각을 한 게 있다면 이 시리즈를 정복해야지 한다는 것, 그 정도로 피터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는 점.
번역이 아주 좋았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저자의 결을 느낄 수 있도록 애쓴 번역이었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역시 시공사구나, 했다. 추리소설을 안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단 한 번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부의 1장만 읽어도 게임은 끝난다고 본다. 정말 재밌고 행복하게 읽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