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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트인 과학자 - 데이터 조각 따위는 흥미롭지 않아요. 특히 숫자!
랜디 올슨 지음, 윤용아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머리 좋은 애’가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것은 분야를 막론한다. 스포츠도 음악도 미술도 머리는 차갑게 해야 한다, 낚시를 하든지 밭을 갈던지 머리를 써야 효율이 있다. 처음 학교를 가서 분류되는 기준점이 바로 ‘두뇌 활용수준’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머리 좋은 애들이 인정받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공동체 - 학교 -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학력자를 머리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며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가장 두뇌를 많이 쓰고 살 것 같은 이미지, 과학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충고, 예상하기로는 쉽사리 먹혀들 것 같지 않다. 과학계의 관행과 전통적 분위기가 여전히 그대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너무 무리한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은 과학자들은 대체로 저자 같은 급진적 개혁성을 과학의 세계로 끌어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극(極)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뭐에 대해서? 관계와 소통에 대해서.
저자는 랜디 올슨. 1955년생으로 지금은 영화감독 겸 제작자, 그리고 과학 해설가를 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뉴햄프셔대학에서 해양생물학 교수로 재직했다. 38세에 그만두고 남캘리포니아대학교 영화과에서 석사를 받았고, 뉴웨이브 과학 다큐멘터리<얼간이들의 무리>와 <시즐>을 쓰고 연출했다. 2008년부터 100차례 이상 미국전역의 대학을 돌며 <얼간이들의 무리>와 <시즐>의 상영과 과학토크쇼를 결합한 ‘he Sizzling Dodos College Tour’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가 과학계에서 많지 않은 나이에 정년교수직을 보장받을 정도로 탁월한 과학계인사였음에는 분명하다. 저자 자신도 정년직을 포기 하고 할리우드로 갔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새로운 꿈을 위해 할리우드에서 연기수업을 비롯한 전공수업을 시작한다. 거기서 저자는 앞서 말한 ‘머리 쓰는 인간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어쩌다가? 전 재산을 톡톡 털어 할리우드에 가서 연기수업을 배우고 있는데, 그 수업의 마귀할멈 같은 여교수가 그에게 이런 말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넌 대가리로 연기를 하니, 이 XX야! 잘난 척만 하는 저 같은 인간들은 꼴도 보싫으니까 당장 내 수업에서 꺼져! 안 그러면 경찰을 부를 거야! 농담 아니야, 이 머저리 같은 놈아!’(p. 12)
저자는 책에서 ‘어떤 동기의 근원지’가 인간의 4가지 감각에서 유발한다고 설정한다. 곧, 머리, 가슴, 복부, 성기. 머리는 논리와 분석, 가슴을 오로지 감정, 복부는 유머와 직감, 성기는 범우주적인 역학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밑 부분으로 내려갈수록 포함되는 대중의 영역이 커진다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역학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과학자들의 연설 방식, 세미나의 분위기, 소통에 임하는 자세, 커뮤니케이션의 농도와 그 수준 등에 관해 실제 사례들을 언급하며 심각한 오만함에 처한 그들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지적한다. ‘제발 그런 고리타분한 과학자는 되지 말라고!’말이다. 그리고 자극과 충족, 전달력과 그 스타일, 호감의 방식을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실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그래서 과학자들이 대중과의 소통에 더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그 실질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일단 주제부터 진부하지 않다. 왜냐하면 독자가 한정되어있지 않다. 과학계에게 하는 이야기 같지만 실질적인 주제는 ‘소통’이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꼴통들인 과학자를 상대로 설득하는 글이기에 주제가 어렵거나 철학적이거나 진부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에서는 상당한 전문성이 깃들어있으나 주석이 자세하게 들어가 있기에 오히려 지식적이라고만 보면 좋을 듯싶다.
무엇보다 흐름이 좋다. 각 주제 간의 연결성도 좋고, 계속적인 흥미를 유발시키는 - 저자는 이 책에도 자극과 충족을 담고 있다 - 장치들이 있어 신선함을 유지하며 읽을 수 있었다. 참신한 스토리는 오로지 저자가 그러한 인생에서 겪은 일들과 저자 삶에서 얻은 깨달음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과 그 표현방법에 있어 기술적인 면들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유용한 지식과 마인드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대성에 알맞다 못해 탁월함을 지닌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분야에든지 보수적 권위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분들이 읽는다면 커뮤니케이션의 건전한 개혁성을 일깨울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