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반전쟁 - 앨빈 토플러
앨빈 토플러.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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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북한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제2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기지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기지보다 규모가 크고 정교하다’는 UN분석이 보도되었다. 오늘은 ‘주한미군이 1978년 고엽제를 경북 칠곡군 왜관읍 캠프 캐럴 기지에 대량 매립한 사실’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안방에 앉아 태평하게 이런 뉴스를 보고 있는 요즘의 현실이 과연 전쟁과는 무관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전쟁의 싹이 틔어 오르고 있을지라도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는 절대 모르고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에 우리는 지금 너무 바쁜 것 같다.



왜 바쁠까. ‘제3물결’이 각 개인의 삶에서 요동치고 있고, 그 들이닥치는 물결에 둥둥 떠다니며 제정신을 차리기도 만만치 않은 형국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제3물결’이 뭔가. 앨빈 토플러가 세운 저서제목이자 시대에 대한 명명이다. 쉽게 말해서, 역사의 혁명분기를 산업으로 대입하면, 1차 산업은 농업, 2차 산업은 공업, 3차 산업은 서비스업이다. 산업이라는 용어 대신 ‘물결’ 넣으면 쉽다. (개념이해차원으로써 동급 넣고 설명한 것이지, 물결이라는 언어는 사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포괄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 20세기 미래학자 중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포춘>의 편집장과, 코넬 대학의 객원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미래 쇼크><제3물결><권력이동><부의 미래><불황을 넘어서> 등 미래학에 관련된 도서들이고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았다. 아내 하이디 토플러 또한 미래학자로 여러 명예박사 학위가 있고, 사회사상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공화국 대통령 메달’를 수상한 바 있다. 지금은 두 부부 모두 집필과 강연으로 바쁘다. 1993년 작을 한국에서 재번역하여 출간하는 시점에서도 그들은 신경 써줄 겨를 없이 무척이나 바빴으리라.



책의 내용을 큼직하게 나눠본다. 일단은 문명의 역사, 즉 제1물결부터 제3물결의 변화에 따른 전쟁국면의 주목할 만한 양상들을 조리 있게 풀어놓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부와 지식의 축적’이라고 한다면, 제1물결에서 농업기반으로 다져진 부는 제2물결의 토대인 대량생산을 일궈내고, 축적된 기술과 진보된 지식으로 제3물결인 지식기반산업들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전쟁의 역사도 이와 맞물려서 흘렀다는 것이고 저자는 여러 사례들로 이를 입증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당시는 20세기말이다. 제2물결에서 제3물결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제3세계는 모두 대량살상무기나 핵시설에 골몰할 때였고, 2차 대전 주역들 특히 미국이 가장 앞서가는 확전대비책으로서 정보와 기술이 융합된 지식전략을 국방에 접목했다. 그러나 그 수준이 시작단계였기에 저자는 당시에 발명된 무기체계나 전쟁전략보다는 앞으로 발전할 과학적 수준과 그에 상응하는 부산물들이 자국의 안보와 타국의 감시에 뛰어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표제가 ‘전쟁 반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저자의 논지는 이렇다. 세계는 점증적으로 ‘지식’이 접수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지식의 발전’이 일구어낸 많은 성과물들을 ‘전쟁’에 이용할 것인가, 반전쟁에 이용할 것인가. 또한 그 의지에 관계없이 미래가 ‘지식의 산물’로 인해 어떤 구도를 보이게 될 것이고, 거기에는 도사리고 있는 변수의 모양과 질량은 어떠한가.



말만 들어도 너무 방대하다. 이 책이 400페이지 조금 넘는데 종이 몇 백 장으로는 턱도 없는 주제이다. 저자 나름대로는 충실하게 다각도로 조명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인에게 다가가려고 무지하게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유식한 사람들이 이토록 복잡한 내용들을 이처럼 쉽게 풀어쓸 수 있다는 자체가 놀랍고 독자로서는 황송할 따름이다.



세계화를 넘어 초국화 되는 앞날에 다가 을 저자의 세계적인 관점을 보면서, 새삼 너무 국지적이고 한계성을 띤 나의 세계관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의 무자비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몇 달만 지나면 금세 전쟁에 관해 ‘지엽적’인 시선을 보내게 된다는 것도 깨닫는다. 이 책은 불안정한 ‘제3물결’의 피동사가 되고 있는 인류에게 따끔한 자극을 주고, 그동안의 전쟁의 역사를 깊이 파고듦으로써 거둘 수 있는 많은 양분을 자상하게 나누고 있다. 지금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으로 ‘어수룩한 시대의 방종’을 만끽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각성의 종을 울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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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의 심리학 - 속마음을 읽는 신체언어 해독의 기술
토니야 레이맨 지음, 강혜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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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눌 때든 연설을 할 때든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전달력에 효과적일 수 있다. 억양이나 발음에 독창성을 발휘하는 것으로도 메시지를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고, 목소리나 성량을 달리하는 것으로도 타의 이목을 끌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집중’은 만들어낼 수 있겠으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스’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이 내미는 특정 지점은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많겠는가. ‘예스’를 꺼낼 수 있다는 심리학인데 말이다.

저자는 토니야 레이맨. 미국에서 인정받는 비언어 의사소통 전문가라고 한다. 매주 폭스 텔레비전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 매체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고정 해설자로 출연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월 스트리트 저널><타임><코스모폴리탄><플레이보이><위민스 헬스><퍼스트 포 위민>등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에는 <왜 그녀는 다리를 꼬았을까 >가 있다.

책은 크게 4가지 파트로 나뉘어있다. 먼저 1장에서는 몸짓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전한다. 뇌에서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의 표현이 어떤 식으로 표정에서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뇌의 반응은 우회적이므로 이 ‘마음줄’을 쥐기 위한 선로를 소개한다. 2장은 5가지 심리 전략을 통해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상황해석에 대한 시각을 긍정적으로 하는 것, 상대의 선호감각을 통해 대화하는 것, 자신에게 좋은 암시를 주는 것, 상대의 표정이나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하는 것, 긍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닻을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3장에서는 대화할 때 쓰이는 제스처, 얼굴 표정에 드러나는 심리적 속마음에 대해 일일이 설명한다. 또, 회사에서나 거래 시, 상사나 부하직원과 있을 때 효과적인 자리배치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4장에서는 중점적으로 ‘결과에서의 예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언해 줄 점에 대해 말한다. 유대감, 이미지 연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준비, 자기 표현 등이 그 주제로 선정되었다.

저자에 조언에 따르면 이 세상에 써먹지 못할 것은 없다. 진정성도 써먹고, 미소도 눈물도 써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외모도 가꿔야 성공할 수 있다. 허리와 엉덩이의 이상적인 비유를 말하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더 연봉이 높다고 말한다. 걸음걸이도 자세도 외모관계도 중요하고 우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타인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비하도 두려워하지 말고, 미끼를 추가해서 기대감을 높이고, 공동의 적을 찾아서 미워함으로써 유대감을 만들라는 말도 한다. ‘죄책감은 훌륭한 자극제다’라는 말까지.

중요한 것은, 나를 보여주면 안 된다. 그것을 위해 저자는 나를 들키지 않을 ’가면‘를 써야 한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상대에게 날 읽히면 지는 것이다. 나는 가리고 상대만 읽어야 한다. 세상이 그렇다. 모르는 사람이 지는 게임 판이고, 때문에 상대보다는 더 많이 알아야 이겨먹을 수 있고, 남들보다 앞서 올라가려면 무엇이든 이용하고 어떻게든 수를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현대인은 목이 마르고, 관계 안에서 갈증이 나고, 불안하고, 우울하다. 그렇다면 그런 현대인의 심리를 더 깊게 이해하고, 만인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심리학’의 분야가 발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지식을 아는 놈은 이용해 먹을 수 있다’하는 식으로 나서서, 심리학으로 심리를 꿰뚫어, 덜떨어진 사람 혹은 자기 심리를 보여줄 만큼 순수한 사람 등이나 처먹고 살라는 식으로 책을 쓴다면 이 사회가 누구에 의해서 더 건강해 질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사업이나 회사생활, 즉 계약관계나 타산적 관계 안에서는 도움이 된다. 사람 속을 읽어서 성공하고, 더 돈을 벌고, 내 쪽으로 이익을 가져오기 위해서 심리전이 있는 곳이라면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격체로서 개인의 인생에 유익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21일 계획을 세워 책 말미에 소개함으로써 꾸준한 연습과 개발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람이 저자가 간파하는 식으로만 사람을 대하고 만나고 늘 분석하고 거기에 맞춰서 머리굴려가며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이 결코 건강한 사회나 인간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순수함의 관계를 맺어가야 할 청소년을에게는 필요악적 가르침이다.

이것이 지식인가, 혹은 진정한 학술로써의 가치를 지녔는가. 나는 세상에 닳고 닳은 여자가 더 약아빠지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술수라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이 책에서 유용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 사람들은 남들을 저자가 일러준 대로 판단해 가며 일을 벌이며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이게 옳으냐는 것이다. 이게 권할 만하고, 책으로 낼만한 소재며, 그렇게 살지 않는 인생들에게 떳떳하게 내밀 수 있는 책이냐는 것이다.

저자가 가진 성공의 기준은 돈과 명예이다. 그것만을 원하는 사람은 저자의 조언대로 관계를 맺고 사업을 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해서, 얼마간 이익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사람들을 읽어내는 만큼, 늘 자신도 그런 방식으로 분석 당할 수밖에 없고 그런 잣대에 갇혀 사는 인생이 빚어내는 삶의 그릇 또한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세상을 아는 방식은 아직 미숙하다. 왜 이런 말을 해서 자신의 미련함을 세상에 떠벌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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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고은옥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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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를 처음 배울 때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분리된 두 측면을 동시에 배운다. 랑케가 주장한 객관적 사건의 집합체, 카가 주장한 주관적 선정과 연구로서 한정된 기록. 그러나 분명한 것은 후대가 만날 수 있는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주관적이라는 실체는 무엇일까? 강자의 포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전쟁을 한다면, 둘 이상의 국가가 대립을 한다. 그 전쟁을 기록으로 남겨 역사가 된다면, 전쟁 당국은 자국의 입장으로서만 기록하고, 타국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로서의 역사만을 기록한다. 가령, 북한에서 6.25 전쟁, 한미연합해상훈련을 북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 주관적 해석이고, 그렇게 북한만의 역사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는 당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조작된 역사가 강대국의 손에서 힘을 받으면 ‘사실로서의 역사’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일본이 독도를 우격다짐으로 자국의 본토라고 설파하고 교과서에 실어버리는 것은, 사실로서의 역사를 짓밟고 왜곡이라도 해서 자국의 영토를 한 자라도 넓힌 조상의 추잡한 공로를 자신들의 후대에게 사죄하게 만들 역사를 쓰고 있는 꼴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시절이 기록한 강대국의 역사해설을 거부하는, 약소국의 입장에서의 역사가 어떠했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1950년대, 전후에 있었던 영국의 국제적 범법행위를 다루고 있다. 영국을 위해 세계2차대전에 전장으로 나가 싸웠고, 많은 수탈과 희생을 강요당했지만 모든 자유를 거부당한 케냐인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에는, 우리나라의 피맺힌 역사와 공통점이 많이 발견된다.

저자는 베벌리 나이두. 인종차별정책 정권 치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비열하고 무식한 정책이 자행되는 결과를 알게 되었다. 21살 때 재판 없이 수감되었다가, 영국으로 망명했다. 저서에서 <요하네스버그 가는 길><고난의 사슬><돌아갈 수 없다><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등을 썼다. <둘려요? 나이지리아>로 카네기상과 네슬 스마티 은상을 받았다.

케냐의 식민시대 역사는 이렇다. 1885년 독일이 케냐해안영토에 보호령을 설치했다. 1888년 영국 동아프리카 회사가 들어왔고, 독일이 해안 영토를 1890년에 영국에게 넘겨주었다. 1952년 10월부터 1959년 12월까지 케냐는 영국의 지배에 대한 반란(마우마우 반란)으로 비상사태 하에 있었다.

이 소설은 실제사건에 비해 소설 자체가 전달하는 경악스러움은 많이 퇴색되어있다. 아이들의 심리를 다루어 성장소설이라는 분류아래 들려주는 이야기는 배경만 취하여 소재는 허구이기에 읽을 때에 거시적인 역사적 관점이기 보다 두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

매슈네 가정은 영국인으로 케냐에서 농장을 하며 살고, 무고네 가족은 매슈네 집에서 신임을 받고 일을 하며 지낸다. 사회는 ‘마우마우’라는 저항세력의 출몰로 인해 불안정세를 이어가고, 케냐인들은 밤중에 몰래 잡혀서 마우마우의 일원이 되는 강제맹세를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매슈가 친구 랜스랑 ‘도가머리뻐꾸기’라는 영물을 잡아다가 구워먹는다. 영물 잡은 대가로 불행한 사건이 터지는데, 그 불씨가 밤중에 매슈네 농장을 태웠고 이 사건으로 매슈네서 일하던 모든 케냐인이 임시수용소로 가서 고문을 겪는다. 매슈가 자백했음에도 무고의 아버지는 마우마우맹세를 했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무고의 가족은 흑인전용거주지로 쫓겨난다.

메시지가 분명하고 명확한 소설이다. 케냐인 모두가 온전한 불행의 희생양이 되어 끝나고 있기 때문일까.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읽은 후 마땅히 가져야 할 ‘관심의 대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제야 이 역사가 진정한 시선을 가지고 고찰의 대상이 되고 있고, 영국의 변호사들이 나서서 그들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일에 작은 목소리를 내는 소설책이 한국에까지 출간되었고, 읽는 이는 많은 감동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아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는 뭐하고 있는가’이다. 영국의 변호사들이 나서서 60년 전 일에 대해 살아있는 피해자에게 보상하라고 자국 정부에 호소하는 이 일은,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롭고 처절한 투쟁시위를 연상하게 한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피해보상’를 논하였고, 이 일은 자국의 정부에 대한 일도 아니고 타국의 범법행위에 대한 역사적 보상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일본의 보상은커녕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그들의 지진소식에 추모시위도 해야 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리고 몇 분 살아계시지도 않는 이때까지 이 보상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끌고 온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도 염증을 느낀다.

소설은 소설 자체보다 역사적 감각을 되살려준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같은 식민지배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들의 역사도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 우리나라의 안일한 역사의식도 비통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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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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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영우 박사의 <원동력>이라는 책을 읽었다. 시각장애인인 그가 어떤 마인드와 철학으로 두 아들을 길러냈는지에 대한 자녀교육 서적이었다. 오히려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부자지간에는 더 친밀하고 성숙한 교류가 있었고, 두 아들 모두 극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논하고자 하는 이 책은 퇴계이황이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이다. 이황이 늘 국책을 다하기에 바빴으므로 아들을 만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육안으로 아들을 보지 못한 교육이라는 점은 두 책이 비슷하다. 그러나 강박사의 아들은 아버지보다 훌륭하게 자랐고, 이황의 아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부터 흥미진진한 독서가 시작되었다.

오천원권에서 만나기에 세종대왕 다음으로 친숙한 이황. 연산군 7년 11월 25일에 경북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고 43세에 고향에 내려갈 뜻을 품지만 귀향과 소환을 반복한다. 50세 이후에는 고향에서 서당을 세우고 저술에 몰두하였으나 조정에서는 계속 높은 관직을 제수했고 그런 반복의 시절을 보내다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162편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모두 맏아들 준에게로 향하는 편지들이다. 아들과의 서간교류가 이렇게 많았던 까닭은 조선의 정치가 혼탁하고 불안정했기 때문에 대신들의 휴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해서, 고향에 내려갈 일도 없고, 조정 일도 바빴다고 보인다. 그 덕에 이황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으니 후대에는 더 없이 좋은 일이다.

그가 늦게 과거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그 시대 과거시험이 참으로 어려웠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맏아들 교육만큼 어려울 수야 있었으랴, 싶을 정도로 아들은 이황의 속을 썩였다. 글공부에 취미가 없고, 방탕하게 놀러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여 시험에서 계속 낙방하는 아들에 대해 이황의 근심은 멈출 줄을 몰랐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잔소리를 한다. 많은 구정에서 성에 차지 않은 아들에게 하는 이황의 직접적인 탄식을 들을 수가 있다.

항상 네가 학업에 힘쓰지 않는 것이 안타깝구나. 다른 사람들의 자제들이 급제하는 것을 보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만, 그럴수록 한탄스러운 마음이 더욱 더 깊어지는구나. 너만이 홀로 분발하여 스스로 힘써 공부하려는 마음이 없느냐? (p. 48-49)

또한 너는 최근에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학업을 그만두고 게으름을 피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느냐? 세월은 흐르는 말과 같다. 나는 너희들 두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으니, 끝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느냐? 너는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느냐? (p. 50)

퇴계가 아들에게 주는 가르침을 잘 살펴보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살(肉)이 되는 조언과 살(虄)이 되는 책망이 많이 섞여있다. 게으르고 정진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휩쓸려 젊음의 방탕함을 만끽하는, 절제 없는 젊은이는 과거 이황의 아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으로 가지는 안타까움이 절절이 배어있다. 자각과 분별없는 젊은이들에게 유익할 책이다.

이황의 가솔에는 종들이 많았고, 종이 자식을 나으면 ‘입만 느는 격’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황의 가정은 가난했다. 상식적으로 잘나가는 조정대신의 가세가 형편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지만, 우리는 이황의 청렴결백함과 무욕한 물질관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형편이 낯설지 않다. 보통 가난한 집안의 선비는 비어있는 쌀독에는 관심이 없고, 글공부에만 매진한다. 하지만 그는 가난을 몸소 겪으며 먹을 것이 없음을 힘들어하고 그런 상황들을 어려워했음에도, 하는 일 없이 국가의 녹을 먹는 것조차 부끄러워한 꼿꼿한 선비였다.

이러한 까닭에 가난한 선비와 방탕한 자식의 대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네가 처가에 앉혀 사는 것은 본래 좋지 않다. 나로 인하여 너의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이나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지금 너의 형세가 더욱 어려워졌으니 내가 어찌 할까, 어찌 할까? 그러나 선비가 가난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어찌 마음에 두겠느냐? 너의 아비는 평생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아왔느니라. 하물며 너에게 있어서랴? 다만 굳세게 참고 순리대로 처리하여, 스스로 수양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p. 66)

아비가 이같이 훌륭한 말들로 아들을 권면해도 끝내 맏아들 준은 음서로 관직에 오른다. 이황은 자신이 아들을 이렇게라도 만들어내지만,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들을 대한다.

아주 개인적인 편지들이기에 이황이 가진 아버지로서의 면모와 사람으로서의 인격적인 면모가 조정대신으로서의 이황보다 더 짙게 나타나있다. 그 속에는 이기적인 모습도 있고, 시대의 학문성에 국한된 정신도 보인다. 또한 인정 많은 사람, 도리를 다 하고 사는 사람, 학자로서 소임을 다 하는 사람으로서의 소신도 엿볼 수 있다.

조금 더 정갈한 인격체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가르침들이 많다. 고전으로서 놓칠 수 없는 ‘시대를 아우르는’ 조언들도 수두룩하다. 참 좋은 스승을 만나 참된 가르침을 얻고도 청출어람은커녕 반도 미치지 못한 아들의 삶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런 좋은 가르침을 전해들은 나의 삶이 퇴계가 가진 삶의 조요함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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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유연하면 풀린다 - 당신의 관계에는 굳어진 패턴이 있다
클로에 마다네스 지음, 나혜목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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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정의 달이다. 어떤 가정이든 모두 각 나름의 문제를 안고 산다. 그저 평온하기만 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구성원 모두가 안정과 행복을 누리기만 하는 가정이 있을까. 누군가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에게 먼저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를 읽고 오라고 말해 주고 싶다.

과거, 가정에 발생한 문제를 이겨내는 것은 모두 여자의 몫이었다. 여인이 실질적 가장이 되어 생계를 잇는 것으로, 또는 남편 측의 갖은 모욕과 멸시를 참고 견디는 것으로, 사회에 무능한 여자가 ‘인내와 독기’만 있으면 어떻게든 가정은 지킬 수 있었다. 물론 그 가족구성원이 겪은 근원적인 아픔이 치유되기는커녕 내적인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의 지속이기는 할지라도 말이다.

현대사회의 가정은 봉착한 위기상황에 대해 극복할 내성이나 전략의 수준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사회에서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여성들이 굳이 집안에서 스트레스 받아가며 ‘참고 살아야 할’ 명분도 없을뿐더러, 예전만큼 가족의 해체 혹은 이혼이 개인의 인생에 큰 흠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경력이 있는 여배우가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으로 인정받을 때, 그 몸값이 우리나라 최고수준이라는 점을 예로 든다.)

이혼으로 인한 가정 해체도 많고, 해체 직전에 놓인 불행한 가정도 너무 많다. 위태위태하여 끼인각에 놓인 아이들만 불쌍한 경우를 우리는 쉽게 목도하고 있다. 마치 TV프로그램에 나와서 정신과 상담 몇 번 받으면, 가정의 평화가 쉽게 찾아올 것이라는 가시적인 해결, 그 단편적인 성과에만 급급한 안타까운 사례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가정안에서의 관계 회복법’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두 갈래로 나뉜다. 어그러진 관계에 대한 원인분석이 첫 번째요, 그 해결책 제시가 두 번째다. 간결한 구성이다. 저자의 집필 목적과 그 중심흐름은 목차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많은 인터뷰, 실험내용 등을 근거로 내세워 주장의 객관성과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다.

심리학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저자 또한 이 책에서 개인을, 즉 ‘나’의 변화를 유도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반대편에 서 있을 수 없었고, 민감하고 사적인 부분인 가정 안의 일이었기에 더 감정적으로 신중하고 깊이 있게 경청할 수 있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점, 이것이 이 책이 다른 심리학서와 차별화되는 능력이다.

가정에서 겪은 상처와 불행으로 인해서 어려운 시기가 있었던 사람, 혹은 그 때문에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었거나 의도적인 불편함을 조성해본 사람은 이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이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많은 가르침과 행동지침들이 상당한 통찰력과 지혜, 곧 인간 심리에 대한 세심한 분석을 동반하고 있기에 독자들을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힘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심지어 아량도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아량이 화를 돋울 수가 있다. 광용을 베푸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즉 상대를 동정받는 존재를 전락시키기 때문에 자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p. 157)

문학에서도 많이 이용되는 심리적인 고급 전술이다. 살면서 아량을 베풀어서 열등감을 심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조금씩 삶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인지하고 있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셰익스피어가 문학에 끼친 영향력이 얼만할까. 지구상의 돌멩이 개수를 묻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질문이다. 이 책이 내가 끼친 영향력이 그에 견줄 만하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볼 많은 심리학서를 깎아내릴 수 있는 원인이 될 책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그녀가 ‘관계’라는 부분에서 내게 주는 지혜와 통찰은 길지 않은 세상을 살 동안에 누적된 내 경험보다 훨씬 우월했다. 그래서 가정의 달,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힘든 많은 이들에게 꼭 건네주고 싶은 좋은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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