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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평점 :
얼마 전 강영우 박사의 <원동력>이라는 책을 읽었다. 시각장애인인 그가 어떤 마인드와 철학으로 두 아들을 길러냈는지에 대한 자녀교육 서적이었다. 오히려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부자지간에는 더 친밀하고 성숙한 교류가 있었고, 두 아들 모두 극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논하고자 하는 이 책은 퇴계이황이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이다. 이황이 늘 국책을 다하기에 바빴으므로 아들을 만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육안으로 아들을 보지 못한 교육이라는 점은 두 책이 비슷하다. 그러나 강박사의 아들은 아버지보다 훌륭하게 자랐고, 이황의 아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부터 흥미진진한 독서가 시작되었다.
오천원권에서 만나기에 세종대왕 다음으로 친숙한 이황. 연산군 7년 11월 25일에 경북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고 43세에 고향에 내려갈 뜻을 품지만 귀향과 소환을 반복한다. 50세 이후에는 고향에서 서당을 세우고 저술에 몰두하였으나 조정에서는 계속 높은 관직을 제수했고 그런 반복의 시절을 보내다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162편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모두 맏아들 준에게로 향하는 편지들이다. 아들과의 서간교류가 이렇게 많았던 까닭은 조선의 정치가 혼탁하고 불안정했기 때문에 대신들의 휴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해서, 고향에 내려갈 일도 없고, 조정 일도 바빴다고 보인다. 그 덕에 이황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으니 후대에는 더 없이 좋은 일이다.
그가 늦게 과거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그 시대 과거시험이 참으로 어려웠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맏아들 교육만큼 어려울 수야 있었으랴, 싶을 정도로 아들은 이황의 속을 썩였다. 글공부에 취미가 없고, 방탕하게 놀러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여 시험에서 계속 낙방하는 아들에 대해 이황의 근심은 멈출 줄을 몰랐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잔소리를 한다. 많은 구정에서 성에 차지 않은 아들에게 하는 이황의 직접적인 탄식을 들을 수가 있다.
항상 네가 학업에 힘쓰지 않는 것이 안타깝구나. 다른 사람들의 자제들이 급제하는 것을 보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만, 그럴수록 한탄스러운 마음이 더욱 더 깊어지는구나. 너만이 홀로 분발하여 스스로 힘써 공부하려는 마음이 없느냐? (p. 48-49)
또한 너는 최근에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학업을 그만두고 게으름을 피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느냐? 세월은 흐르는 말과 같다. 나는 너희들 두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으니, 끝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느냐? 너는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느냐? (p. 50)
퇴계가 아들에게 주는 가르침을 잘 살펴보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살(肉)이 되는 조언과 살(虄)이 되는 책망이 많이 섞여있다. 게으르고 정진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휩쓸려 젊음의 방탕함을 만끽하는, 절제 없는 젊은이는 과거 이황의 아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으로 가지는 안타까움이 절절이 배어있다. 자각과 분별없는 젊은이들에게 유익할 책이다.
이황의 가솔에는 종들이 많았고, 종이 자식을 나으면 ‘입만 느는 격’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황의 가정은 가난했다. 상식적으로 잘나가는 조정대신의 가세가 형편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지만, 우리는 이황의 청렴결백함과 무욕한 물질관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형편이 낯설지 않다. 보통 가난한 집안의 선비는 비어있는 쌀독에는 관심이 없고, 글공부에만 매진한다. 하지만 그는 가난을 몸소 겪으며 먹을 것이 없음을 힘들어하고 그런 상황들을 어려워했음에도, 하는 일 없이 국가의 녹을 먹는 것조차 부끄러워한 꼿꼿한 선비였다.
이러한 까닭에 가난한 선비와 방탕한 자식의 대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네가 처가에 앉혀 사는 것은 본래 좋지 않다. 나로 인하여 너의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이나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지금 너의 형세가 더욱 어려워졌으니 내가 어찌 할까, 어찌 할까? 그러나 선비가 가난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어찌 마음에 두겠느냐? 너의 아비는 평생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아왔느니라. 하물며 너에게 있어서랴? 다만 굳세게 참고 순리대로 처리하여, 스스로 수양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p. 66)
아비가 이같이 훌륭한 말들로 아들을 권면해도 끝내 맏아들 준은 음서로 관직에 오른다. 이황은 자신이 아들을 이렇게라도 만들어내지만,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들을 대한다.
아주 개인적인 편지들이기에 이황이 가진 아버지로서의 면모와 사람으로서의 인격적인 면모가 조정대신으로서의 이황보다 더 짙게 나타나있다. 그 속에는 이기적인 모습도 있고, 시대의 학문성에 국한된 정신도 보인다. 또한 인정 많은 사람, 도리를 다 하고 사는 사람, 학자로서 소임을 다 하는 사람으로서의 소신도 엿볼 수 있다.
조금 더 정갈한 인격체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가르침들이 많다. 고전으로서 놓칠 수 없는 ‘시대를 아우르는’ 조언들도 수두룩하다. 참 좋은 스승을 만나 참된 가르침을 얻고도 청출어람은커녕 반도 미치지 못한 아들의 삶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런 좋은 가르침을 전해들은 나의 삶이 퇴계가 가진 삶의 조요함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