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 청춘
남시언 지음 / 마음세상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주저리 주저리 by Blueman
Blueman 새글쓰기바로가기new
[서평]1인분 청춘
독후감과 서평사이Blueman 2013/06/28 00:46
글자크기 글자크기 작게 글자크기 크게
1인분 청춘
남시언 지음 / 마음세상
나의 점수 : ★★★★

청춘을 위한 좋은 필독서






저자 : 남시언 a.k.a 티몰스(http://underclub.tistory.com)

`청춘이 멘토다`를 모토로 블로그에 연재한 청춘 칼럼을 교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추가한 책입니다.

흥미를 가지고 읽어보았는데 그 덕에 나름의 용기를 얻어 아예 지르게 만든 책입니다.
덕분에 소장하면서 계속 읽을 수 있겠군요.^^

짧은 분석과 개인 의견을 피력해볼까 합니다.

1장 남들과 다르게 하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념, 즉 통념을 벗어나기를 주문합니다.
이미 많은 이가 지나온 길, 거기서 정점이 되려면 속도 경쟁을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하나로는 사람을 만나면서 나이를 문제삼지 말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만나는 사람은 자기보다 나이가 낮더라도 반말하지 말고 차차 접근하며 대하라는 거죠.

`누군가를 판단할 때 나이로 생각하려는 느낌을 의식적으로 제거한다.`

이 단락이 마음에 드네요.

2장 숨겨진 날개를 찾는 방법

이 장에서 마음에 드는 글은 `착한 사랑 콤플렉스를 벗자`입니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은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싶겠지만, 이것은 좋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누구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둘 중에 한쪽 편을 들면, 적어도 A와 B중 한명은 얻을 수 있다. 따라서 A와 B중에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을 도와줘라.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새로운 C세력으로 동참하는 것도 좋겠다. 가장 나쁜 것은 중립을 지키겠답시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p74에서

이 글을 읽어보면서 블로그나 카페를 시작했던 시기가 생각나네요. 

시사쪽에 글을 쓰면서 약점을 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댓글로 강한 어투로 논리가 부족하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고 약점잡아 비판하는 것에 상처를 받아서 그만두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이가 `왜 그런 것에 주눅이 드느냐? 자기 소신을 그대로 밝히면 된다.`라는 것에 좌절에서 벗어났었습니다.

도덕적인 척하고 양쪽을 모두 얻으려고 하는 제 욕심이 화를 불렀던 거지요.

또 하나로는 자신만의 날개를 찾기 위해 실수하되 치명적인 걸 피하고 첫 인상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변화를 위해 필요없는게 뭐가 있는지도 찾아보라고 하구요.
 
3장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기

꿈을 위해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투자인지 남따라 하는 투기인지 생각해보라는 글입니다.
자신의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글이지요.

3장에서 마음에 드는 단락입니다.

현재의 당신은 어떤가? 명품 조건에 부합하는가? 아니면 약간 모자라는가?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청춘이니까? 명품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자기 자신을 명품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지금부터 조금의 노력만 투자하면 얼마든지 자기 자신을 명품화시킬 수 있다.
p141에서 

날때부터 명품이 아니라는 말이 와닿네요. 자기 노력을 강조하는 글이라...
글을 쓰는 동안 갑자기 부끄러워지네요. -_-;


4장 두 어깨에 날개 달기

여기도 앞에 독서가 중요하다고 하네요. `청춘이 독서를 해야하는 이유`부터 `현대판 위편삼절을 실행하라`까지.
그동안 책을 멀리한게 어찌나 후회되는지...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펼쳐봐야겠습니다. ^_^

이 장에서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네요. `죽을 각오로 살지 말고, 살 각오로 살아라.`

우리 혹은 남이 노력하려고 결심하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했다. -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난중일기”

좋은 표현이지요. 표현은 다르지만 죽을 각오로 노력하며 살라는 얘기지요.

반대로,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위험한 역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죽기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하물며 죽을 수 밖에 없다면 뭣하러 살려고 싸우겠습니까?
죽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건 무의미하다는 걸 이 책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흔히들 ˝열심히 살라.˝는 말의 최고급으로 죽을 각오로 살라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죽을 각오로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어차피 죽을 텐데 밥은 왜 먹고 숨은 왜 쉬어야 하는가? 일은 왜 해야 하고, 결혼은 또 왜 해야 하는가? 마치 식물인간처럼 가만히 누워서 평생 죽음만 기다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 죽을 각오로 사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에 좀 더 가까워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예외없이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p241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글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입니다. 자살률이 높은 우리나라에 걸맞는 글입니다.
누군가 자살을 생각한다면 한번 읽어보라 하고 싶네요.



이 세상은 자기 개발이 중요하다면서 스펙을 쌓으라 하지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어하는 건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현장에서 쓰일 일이 적거나 없는, `페이퍼 라이센스(종이조각)`란 걸 이 책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도 있겠지요. 프롤로그부터 4개의 장을 거쳐 에필로그까지 나와 있네요.


`꿈`을 찾는 길을 걷기 시작하면, 당신의 숨겨진 날개를 드디어 만날 수 있다. 쉴 틈 없이 뛰어가는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날아가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자기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조언을 담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계속 간직하며 읽어봐야겠군요.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세요. 재미있을 겁니다.

흔히들 "열심히 살라."는 말의 최고급으로 죽을 각오로 살라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죽을 각오로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어차피 죽을 텐데 밥은 왜 먹고 숨은 왜 쉬어야 하는가? 일은 왜 해야 하고, 결혼은 또 왜 해야 하는가? 마치 식물인간처럼 가만히 누워서 평생 죽음만 기다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 죽을 각오로 사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에 좀 더 가까워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예외없이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p241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아, 고맙다 -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성공멘토 이지성, 결핍과 상처로 얼룩진 20대를 고백한다.
이지성 지음, 유별남 그림 / 홍익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맘에 들어 소장하려고 주문까지 했습니다^^


읽고 나서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1. 자신의 상처를 스스럼없이 털어내는 용기가 부러웠다.

-> 저도 언제 그런 걸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드네요.


2. 솔직한 이야기, 꿈을 주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 저도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겠습니다.^^


3. 추억이 담긴 곳을 찍은 사진이 같이 있어서 보는 맛이 살아있었다.

-> 유별남씨께서 찍으셔서 사진이 글을 보태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4. 인생의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담대함과 관대함이 보였다.

-> 인생에 대한 고마움... 스스로 부끄러워집니다.

p14
아프다는 것은, 내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가두고 있는 어떤 껍질의 존재를
알은 한 때 자신을 보호해 주었던 껍질을 느끼고
깨뜨림으로써 새가 된다.
알의 한계, 즉 껍질은 알을 가두는 무엇이 아니다.
알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출발점이다.

p63
세상에는 돈, 외모, 학력, 재능, 배경 같은 것을 뛰어 넘을 힘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그 힘을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
나는 할 수 있고, 할 수 있으며,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해낸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마음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스무살 때 책에서 배웠고, 지금껏 그 힘을 사용해오고 있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는 그 힘이 있다.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놀랍고 신비한 힘이다.
마치 알라딘의 마술램프 속에 숨어 있는 거인처럼, 그 힘은 당신이 불러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거인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진정한 성공의 비결은 모두의 마음 안에 평등하게 들어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된다.

p229
"이 세상은 악이다. 악한 세상에 악한 복수를 하면, 그건 진정한 복수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악한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악한 세상에 진짜 복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꿈을 믿고 계속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착하게 사는 것이다."

세상에 짓밟힌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꿈을 믿자.
외모나 능력, 옷차림 따위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자.
지구가 더러운 행성이 아니라 아름다운 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돈 따위는 잊어버리고 살자. 진정한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깨닫고 실천하자. 그렇게 우리, 복수하자.
이 세상에 아름답게 복수하자.

p256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내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내게 지워진, 가끔은 숨이 턱까지 막히게 하는 그 무서운 짐들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어차피 한 번 살다가는 것.
누구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힘들다며 칭얼대는 것은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지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신을 하나로 모아 날카로운 창을 무수히 만들어 보이지 않는 운명을 향해 팔이 부러질 때까지 던져대는 것, 그것 하나밖에 없다.
이게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이요, 운명이다. 어차피 스무살 때 한 번 버린 목숨이기에 어떤 위험이 닥쳐온대도 겁나지 않는다.
갈 수록 남자가 되어 가는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주저리 주저리 by Blueman
Blueman 새글쓰기바로가기new
[주관적 서평]박가분/일베의 사상
독후감과 서평사이Blueman 2013/11/19 15:48
글자크기 글자크기 작게 글자크기 크게
일베의 사상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나의 점수 : ★★★★

우리나라 넷 우익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됨.




신문을 읽다 새 책 관련 소식을 봤는데 흥미로운 책 하나를 발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와의 대화]`일베의 사상` 박가분씨
경향신문-2013. 11. 8
일베의 사상 “남들 불쾌해하는 데서 즐거움 찾아”
경향신문-2013. 11. 9

이 글을 읽기 전에 두 기사를 읽어봐주셨으면 합니다.


작자이자 청년논객인 박가분 씨가 일베를 눈팅하면서 알게 된 것을 정리한 책입니다. 첫부분에서 기본 목적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p18
 이 책의 기본 목적은 일베 유저들의 심리적 동기나 사회학적 배경을 분석하는 데 있기보다는 그들의 행동이 지니고 있는 `사상적 형태`를 분석하는 데 있다. 인터넷 환경이 사람들에게 가져온 사상적 변용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의 우선적인 관심사다. 그런 다음에야 인터넷 유저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p19
 필자는 일베의 폭력적인 유머 코드 배후에 있는 사고방식을 나름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필자와 같은 좌파들의 자기모순을 공격하는 부분에서는 은밀한 연대의식마저 느꼈다.  일베 유저들도 그들이 비판하는 좌파들의 관념적 급진성을 반전된 형태로 철저히 구현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좌파들의 거울쌍이다.
(중략)
 일베에 대한 비판은 진보좌파가 스스로의 정치적 상상력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베를 도덕적이고 당위적으로 비판하기 이전에 그들을 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저는 그 전에 일본의 넷우익인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을 추적하며 다룬 야스다 고이치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를 읽어본 적 있었습니다. 재일 한국인을 음모세력으로 간주하며 오프라인으로 나와 항의집회를 펼치는 재특회에 대한 글을 읽어보았고 `재특회는 우리 이웃일 수도 있다`는 마지막 부분에 뭔가 여운이 남았습니다. 어쩌면 일베나 비슷한 넷우익 커뮤니티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구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일베가 일본의 `재특회`와 비슷하면서 다른 행동패턴을 띄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p36
 일베가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네티즌들을 `저격`하고 `신상을 터는` 그 특유의 공격적인 방식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사진을 몰래 찍어 올린다든지, 상대의 신상을 털어서 커뮤니티에 공개한 후 공공연한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일베의 유머 코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앞서 언급한 각종 사건 사고들 배후에는 일베 특유의 `잔혹한` 유머코드와 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잔혹한` 유머코드... 넷상에서 어디를 가든 이런 모습은 종종 볼 수 있는데 일베가 이런 유머코드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게 흥미로우면서 눈살이 찌푸려지네요.

p39~40
 일베 유저들은 자신이 검색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타인의 말에 섣불리 동의하지 않겠다는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다. 일베 유저들이 정치적 논쟁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이른바 `팩트`다. 검색을 통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팩트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정치적 주장과 이념도 의심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일베는 과거 인터넷에서 진보적인 `논객`의 말빨이 가졌던 권위와 도덕적인 힘을 이제는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일베는 인터넷 담론을 굴절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가 된다. 일베가 인터넷 세계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갖고 활동하는 이상 그러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팩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중요한 표현을 일베가 즐겨 사용한다는 거지요.

여기서 2002년과 지금의 인터넷 세계를 비교하게 됩니다. 10년이라는 간극의 시간 속에서 일베의 기원이 되는 넷우익이 등장하게 되는 거지요. 그 가운데 다수의 젊은 네티즌에게 있었던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작용한 거지요. 거기에 대해선 이 책에서 인용한 조윤호의 `개념찬 청춘`을 읽어보면 좋겠네요.

p100
 조윤호의 말대로 당시 젊은이들이 바랐던 정상국가란 욕망의 주체로서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과 놀이문화를 인정하고 그들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쿨`한 국가였다. 당시 젊은이들은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자기 말을 하는 대한민국을 바랐는데 이런 열망은 광장에서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끼`를 당당하게 발산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다.

p101
 자유로운 욕망의 주체인 나 자신을 국가가 인정해주고 나아가 그 욕망을 몸소 실현해주길 바라는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의 정치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다만 여기서 특기해야 할 점은 예전에 미국이라는 존재가 대한민국이 `정상국가`로 진입하는 데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었다면 오늘날에는 그것이 북한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즉, 지금 기세를 떨치고 있는 반공 반북의 분위기는 어른 세대의 경험이나 주입이 아닌 젊은 세대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젊은세대의 그런 열망으로 탄생한 노무현 대통령이 오히려 현실의 벽에 부딪치며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자 실망을 느껴 다음 대선에서 이명박을 선택하며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 겁니다.

p108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치적 이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이고 상상적인 국가를 향한 강박으로 나타나기 일쑤였다. 그것은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서 유저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어떤 것이든 간에 국가는 그러한 네티즌들의 이상을 자신의 편의대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이다. 진보적 네티즌들이 추종했던 노무현 정권도 그랬고, 최근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보수적 네티즌들이 추종하는 국정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인터넷 상에서 보수성향의 젊은 네티즌들이 나타나 커뮤니티를 차지했고 거기서 일베가 탄생한 겁니다. 그들의 사상을 한번 인용해보겠습니다.

p123
 일베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치적 동질성과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표출될 수 없었던 사회적인 갈등과 적대들이 특유의 `혐오 문화`라는 전치되고 응축된 형식으로 표출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중략)
 일베 자신이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젊은이도 애국보수가 될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을 표명하며 정체성에 대한 관용과 예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관용적인 자유주의 정치의 공간에 스스로를 위치 짓는다. 만일 우리가 일베에 대해 관용과 배려를 가르치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가 일베를 관용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일베를 관용하더라도 일베의 공격성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베가 보수든 진보든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마 `누구든지 사랑해주어야 한다.`랑 `젊었을 때 진보적인 생각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보수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라는 관념을 깨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일베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면서 `저학력`, `젊은 남성 루저들의 반란`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일베 유저들은 학력인증을 통해 잘못된 주장임을 알립니다.

p124
 일베 유저들이 현실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일베의 정체성을 단순히 특정 연령대나 특정 사회경제적인 계층의 특성에서 이끌어내는 것은 무리이다.
 일베는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소득계층이 모여 있는 곳이다.

즉, 일베도 우리나라 네티즌이 모여 노는 인터넷 커뮤니티지요. 작자는 혐오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하는 일베 유저들의 여러가지 사건을 예시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p128
 일베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서로에게 말을 놓으며 툭툭 내뱉는 것이 원칙이다. 일베 유저들은 이런 문화에서 집에 온 것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 일베는 서로에 대해 수고로운 감정노동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의 진보주의자들처럼 서로에 대해 가식적인 가면을 쓰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편한 공간이다.

p130
 일베는 혐오 문화를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정체성, 세계관, 상호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낸 인터넷 커뮤니티다. 관리자 역시 그 점을 의식하면서 `의외성`의 재미 그리고 남고생들 특유의 `말초적`인 쾌감을 발견한다.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면 일베가 하는 행동에 화를 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겠죠.

그런데 앞에서 말한 일본의 재특회와 다른 점은 바로 마이너리티(소수성)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재특회는 주저없이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의견을 꺼리낌없이 전달하지만 일베는 아니라는 겁니다.

p135
 우리는 일베 유저들 스스로가 현실세계에서는 마이너리티라는 자의식에 기반을 두고 자기 나름의 행동양식과 담론을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가령 일베 유저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일밍아웃`이라고 부른다. 일베 유저들은 일밍아웃을 당하는 순간 사회적 체면을 잃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우회적인 방식으로 주류 사회에 접근한다.
(중략)
 맥락도 없이 일상에서도 `김치년`, `홍어` 등의 말을 쓰다가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일베에서 동정받기보다는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뉴비`로 경멸당한다.

작자는 일베를 어떤 공동체로 평가하고 있을까요?

p158~159
 일베에서 공공연히 표출되는 반여성, 반지역, 정치 혐오 사상은 사실은 `관심병 문화=미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사건건 한국 여성에 대해 `김치녀`라고 조롱하는 일베 유저들이 `한심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소용이 없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의 언행이 현실에서 한심하게 들린다는 것, 현실의 가부장제의 감각에 비춰봐도 여성에게 불평 따위를 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그렇게 하는 자신을 메타레벨에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일베는 그 바깥의 현실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미학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학`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감성적 공동체, 부자연스러운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자율적이고 감성적인 공동체를 창출한다는 것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일베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1,2장에 비해 3장인 `일베와 한국의 정치`는 어려운 부분이 많아 좀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인터넷은 공론장인가`, `인터넷과 계급투쟁`이라는 제목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기존 체계에 맞서는 인터넷 세계를 전문가의 논문을 인용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저도 3장을 읽으면서 약간 지루했었습니다. 아직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가 많았으니까요.

작자는 2002년, 2008년 촛불집회를 들면서 일베가 촛불시위의 쌩생아임을 강조합니다. 촛불집회를 반대하지만 그 영향을 받아 반대 성향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p213
 2002년과 2008년 거리에서 반복된 `촛불의 사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의 국가권력을 국민주권의 이름으로 소환하고 심판한다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서부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라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이 자립했다.

p214
 2008년 촛불시위의 특이함은 그것이 자립적인 언설의 공간이 되었다는 점, 거기서 현실의 맥락에서 검열되지 않은 온갖 정념과 분노 그리고 공포가 여과 없이 표현되는 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참여자들이 느낀 독특한 해방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p215
 일베는 어떤 점에서 이러한 촛불시위의 몰이상적인 측면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베는 정확히 2008년 촛불시위의 말기와 똑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몰이상의 이상을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2008년 촛불시위도 그 최종 국면에서는 더 이상 국가에 대해 무언가 적극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떤 요구가 있었다 해도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요구(이를테면 이명박 하야)였다. 이런 점에서도 오늘날의 일베는 과거 광우병 촛불시위의 `정신`을 더 급진화한다고 할 수 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베와 비슷한 보수성향 커뮤니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에 한 걸음 더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보수적이고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을 많이 보이긴 하지만 진보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환경의 영향을 받았고 반대방향으로 계승했다는 점에서 말이죠.

p221
 일베에는 그 나름의 사상이 있다. 예를 들어서 일베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인터넷의 정치적 위상을 사유한다. 일베는 인터넷을 넘어서 어떤 이념을 실현하려는 열망을 거부하고 오로지 그 안에서 인정투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이유를 실현해나간다.

p223
 일베 유저들의 자존감은 이미 그 자신이 타인을 재치있게 조롱하고 공격하는 집단적인 문화적 능력에 의해 실현되어 있다.
(중략)
 무엇보다 일베 유저들은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이미 현실에서 잘나고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은 묘하게 촛불시위대와도 비슷하다.) 그런 자신감 때문에 일베 유저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인터넷에서 `마이너리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작자는 일베의 사상을 세 줄 요약으로 정리했습니다.

p254
1. 일베는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의 사상(여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이다)을 계승한다.
2. 일베는 현실의 국가, 현실의 시민사회에 대한 요구를 단념하고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 방식을 현실로 끌고 오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우파들이다.
3. 이러한 일베의 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장= 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이 이후에도 각자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누차 반복했듯이 일베의 사상은 촛불의 이상주의를 나름의 방식으로 계승한다. 일베 유저들도 알고 보면 못 말리는 이상주의자들이다.

어쩌면 일베의 등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일베를 배척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정하고 우리 스스로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 스스로의 이상을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 넘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여러나라에 번역되고 연구교재로 삼길 바랍니다. 일베는 대한민국이 낳은 하나의 커뮤니티이자 신드롬이기 때문입니다

p18
 이 책의 기본 목적은 일베 유저들의 심리적 동기나 사회학적 배경을 분석하는 데 있기보다는 그들의 행동이 지니고 있는 `사상적 형태`를 분석하는 데 있다. 인터넷 환경이 사람들에게 가져온 사상적 변용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의 우선적인 관심사다. 그런 다음에야 인터넷 유저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p19
 필자는 일베의 폭력적인 유머 코드 배후에 있는 사고방식을 나름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필자와 같은 좌파들의 자기모순을 공격하는 부분에서는 은밀한 연대의식마저 느꼈다.  일베 유저들도 그들이 비판하는 좌파들의 관념적 급진성을 반전된 형태로 철저히 구현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좌파들의 거울쌍이다.
(중략)
 일베에 대한 비판은 진보좌파가 스스로의 정치적 상상력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베를 도덕적이고 당위적으로 비판하기 이전에 그들을 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작품을 위해 중국과 일본 취재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와 작가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독일과 미국에 거주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깐두부만 먹는 훈츈 사람 이춘대씨>는 중국에서 러시아 국경을 넘으며 취재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 <불싯, 쎄자르. 이 세상에 로코코코적인 건 없어>는 독일 체류 프로그램 당시의 이야기, <빅 웬즈데이를 만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버클리대 체류 프로그램 당시의 이야기로, 다양한 계기의 여행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글들을 수록했다.

작품 자세히 들여다보기!
국경을 넘어선 여행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문학을 돌아보고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인식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의 경험을 문학적인 고민과 삶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시킨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의 세계가 잔잔하지만 밀도있는 문장에 녹아들어 있다.


이 책 속 구절이 어느 책에 인용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여행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되새김하게 되는 산문집입니다.

p11
 오래전부터 나는 국경을 꿈꿨다. 왜냐하면 나는 국경이 없는 존재니까, 내게 국경이란 곧 바다를 뜻했다. 살아 오면서 나는 여러차례 무작정 자동차를 몰고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러면 기껏해야 나오는 것이 동해, 아니면 서해, 그것도 아니면 남해뿐이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지리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작가의 심리가 나름 묻어나네요.

p28~29
 아무르 만에서 그랬듯이 태양은 중국 쪽으로 저물고 있었다. 지평선에 가까워 지면서 태양의 둥근 곡선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그 붉은 기운 사이에서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이 나타났다가 길가에서 태워달라고 손을 흔드는 우리에게 먼지만 뒤집어 씌우고 떠나 버렸다. 국경선 너머의 태양은 꼭 녹아 내리는 붉은 아이스크림 같았다. 그 녹아 내리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조명희의 시를 떠올렸다.
 거기에 내가 꿈꾸던 국경이 있었다. 국경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묻고 싶었다. 해를 향해, 석상이 될때까지 외쳐묻고 또 묻고 싶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어떤 곳인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제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만 하는가?

제가 읽어보면서 길지만 가볍게 읽어볼만한 산문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숨은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목차만 해도 흥미가 생길만한 여행지입니다.

깐두부만 먹는 훈츈 사람 이춘대씨
- 2004년 10월, 러시아 우스리스끄만 하루에 세 번
국경 너머 도끼로 이마까라 상들의 나라로
- 2005년 2월, 일본 나고야하고도 타지미하고도 카사하라
불싯, 쎄자르, 이 세상에 로코코코적인 건 없어
- 2005년 9월, 독일 밤베르크
아바, 내가 푸르미보다 진실되지 못한 밤비여서가 아니라
- 2005년 10월, 독일 밤베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빅 웬즈데이를 만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
- 2006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신화 바깥도, 동방신기 바깥도 없는데, 너 지금 뭐 하니?
- 2006년 가을의 버클리와 2004년 봄의 옌지
나와 신국판과 멸치 사이에 흐른, 그 참으로 오랜 침묵
- 2003년 12월, 중국 지린성 룽징
봉쇄선 백오십리 너머에서는 익살스럽고 구슬픈
- 2006년 2월 중국 화뻬이셩 후쟈좡 마을
아마도 슬픔이거나, 혹은 20세기가
- 2006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내 피를 물만큼이나 묽게 만들지 않으면
- 2003년 9월, 서울
당신들은 천당과 지옥의 접경으로 여행을 하고
- 1999년 8월, 일본 토오꾜오
그리고 우리에겐 오직 질문하고 여행할 권리만이
- 언제라도 나를 매혹시킬 세 개의 공간

여기있는 여행지를 언제 가볼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p11
 오래전부터 나는 국경을 꿈꿨다. 왜냐하면 나는 국경이 없는 존재니까, 내게 국경이란 곧 바다를 뜻했다. 살아 오면서 나는 여러차례 무작정 자동차를 몰고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러면 기껏해야 나오는 것이 동해, 아니면 서해, 그것도 아니면 남해뿐이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지리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작가의 심리가 나름 묻어나네요.

p28~29
 아무르 만에서 그랬듯이 태양은 중국 쪽으로 저물고 있었다. 지평선에 가까워 지면서 태양의 둥근 곡선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그 붉은 기운 사이에서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이 나타났다가 길가에서 태워달라고 손을 흔드는 우리에게 먼지만 뒤집어 씌우고 떠나 버렸다. 국경선 너머의 태양은 꼭 녹아 내리는 붉은 아이스크림 같았다. 그 녹아 내리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조명희의 시를 떠올렸다.
 거기에 내가 꿈꾸던 국경이 있었다. 국경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묻고 싶었다. 해를 향해, 석상이 될때까지 외쳐묻고 또 묻고 싶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어떤 곳인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제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만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는 지금 지인이 준 책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을 올해 안에 읽을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