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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평점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지대한 관심, 성실과 노력을 발휘했던 조선의 대표 지식인들을 만나는 책 `미쳐야 미친다(정민 지음, 푸른 역사 펴냄)`를 소개합니다.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민 교수는 18세기 이후 조선의 지식인이 보여준 열정과 광기의 기록을 따라가는 `미쳐야 미친다`를 쓰셨습니다.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노긍, 김영 등을 그 시대의 안티 혹은 마이너로 보았지요. 18세기는 조선에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영정조 시대, 지식인들을 대거 기용해 나라의 학문이나 기술 발전에 힘쓰도록 만들었죠. 다만, 당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개성을 지닌 탓에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 재평가 받았다고 할까요?
나는 이 책을 통해 잊혀진 작은 영웅들을 복원해내고 싶다. 그들은 죄인으로, 역적으로, 서얼로, 혹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기생과 화가로 한 세상을 고달프게 건너갔다. 이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심지어 굶어 죽기까지 했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 잊혀졌지만, 어느 순간 나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했던 그들의 뜨겁고 따뜻한 마음만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 6쪽 `머리말`에서
이 책의 내용을 다 요약할 수 없지만, 되도록 책을 보고 쓰며 어떤 책인지 이해하도록 느낌을 담아내겠습니다.
1부_벽에 들린 사람들
처참한 가난과 신분의 질곡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맹목적인 자기 확신, 추호의 의심 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되는 삶을 살았던 옛사람들의 내면 풍경이 나는 그립다.
이 책의 제목처럼 자신의 관심사에 빠졌던 지식인을 다룹니다. 요즘 표현으로 치면 마니아 혹은 오덕후라 할까요? 여기 소개된 지식인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배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특이한 관심사에 빠져 활동하는 것도 힘들 텐데, 제약이 더 많았던 18세기에 오죽했을까요?
한 시대 정신사와 예술사의 발흥 뒤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어느 한 분야에 이유 없이 미치는 마니아 집단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에 뚜렷한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질 때가 더 많다. 하지만 한 시대의 열정이 이런 진짜들에 의해 안받침되고, 우연히 남은 한 도막 글에서 그들의 체취와 만나게 되는 것은 한편 슬프고 또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
- 31쪽 `미쳐야 미친다` 말미
학문의 성취가 높아질수록 주변의 질시는 높아만 갔다. 그는 세상에게 버림받은 채 학문에만 몰두하다가 평생을 따라다니던 곤궁을 떨치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 49쪽 `굶어 죽은 천재를 아시오?`에서
특히 박제가가 읽었다는 서문장 이야기를 접하면서 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와 겹쳤습니다. 둘 다 생전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 했고, 찌르고 자르는 차이가 있지만 귀에 상처를 냈었죠. 서문장은 서얼이었는데, 그런 삶이 불행했기에 같은 처지의 박제가가 보고 슬퍼했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해하는 용기가 없어 그렇지 나라도 같은 상황에서 저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했고요.
문장 공부를 버리고 경국제세의 공부에 몰두하고는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써먹을 데도 없다. 그래서 뜻 높은 이에게 마음을 슬쩍 비춰 보일 뿐, 세상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중략)
나는 껍데기의 삶은 살지 않겠다. 뼈가 썩은 뒤에도 길이 남을 정신으로 살겠다. 세상 사람들아! 나는 나다. 그의 이름이 어떻고, 신분이 어떻고,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어떻고는 묻지를 말아라.
- 103쪽 `송곳으로 귀를 찌르다`에서
지식인의 긍지를 갖고 살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슬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요.
품은 식견을 세상을 위해 쓰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김삿갓 같은 시인의 존재는, 지식인을 고작 말장난이나 하면서 경계인으로 떠돌다 죽게 만든 벼든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일깨운다.
- 105쪽 `그가 죽자 조선은 한 사람을 잃었다`에서
2부_맛난 만남
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다.
우리가 아는 지식들이 만난 사람들, 이들의 만남을 통해 얼마나 인간적이고, 삶에 큰 정점을 찍었는지 느껴지네요.
이정은 허균보다 아홉 살 아래에 보잘것없는 화공의 신분이었다. 나이를 잊고 신분을 떠나 사귐을 나누었던 그가, 네가 못 오면 내 옆에서 웃고 떠드는 그림이라도 그려서 보내라고 부탁할 만큼 각별히 아꼈던 그가, 잘먹고 잘살라며 정성의 귀한 비단을 다 버려 놓고 달아났던 그가 이렇게 덧없이 훌쩍 가버리자 참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그림을 중하게 여겼지만, 나는 그 사람을 중히 여겼다는 말, 그가 죽자 풍류가 문득 다 스러지고 말았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 130쪽 `이런 집을 그려주게`에서
이래서 사람과 만남이 중요하나 봅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일이죠.
한 세상 건너가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쉽지가 않다. 벗이 있어 그 험난한 여정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옛 사람은 벗을 두고 `제이오` 즉 제2의 나라고 했다. 내가 품은 생각을 그가 홀로 알고, 그의 깊은 고민을 내가 먼저 안다. 지기나 지음이니 하는 말은 차고 쓴 세상을 견뎌내는 동지애적 연민을 수반한다.
- 138쪽 `산자고새의 노래` 서두
서로 짧은 글로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당시 지식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짧은 글 속에 작품세계를 심으며 대화를 나눴다는 건 서로 터놓고 얘기할 정도로 친하다는 걸 반증하지요.
척독은 지금을 치면 엽서쯤에 해당하는 짤막한 편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략)
척독은 결코 시간이 없어 짧게 쓴 것이 아니다. 긴 편지를 쓰는 것 이상으로 애를 써서 작품성을 의식하고 제작된 글이다, 척독을 읽고 나면 정경이 떠오르고, 그림이 그려진다. 절제된 비유와 간결한 표현, 말할 듯 하지 않고 머금는 여백의 미를 추구한다.
- 213쪽 `돈 좀 꿔주게`에서
3부_일상 속의 깨달음
고수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그들의 눈은 남들이 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을 단번에 읽어낸다. 핵심을 찌른다.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는 맑고 깊은 눈,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일깨움을 이끌어 내는 통찰력이 담겨있다.
작가는 평범한 소재에서 남들이 보지 못 하는 걸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통찰력을 가졌다는 게 대단한데 지식인들도 가졌다는 사실에 놀랐지요.
이옥이 지은 《연경》이란 책이 발견되었다. 골초였던 그는 담배를 사랑한 나머지 담배의 역사를 기록으로 정리할 생각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중략)
˝부처님에게는 향로가 있어 아침 저녁으로 향을 사른다. 향로에 향을 사르고 나면 향은 반드시 연기가 된다. (중략) 화로에 태워 연기가 되고 나면 향 연기도 연기이고, 담배 연기도 또한 연기이니, 담배 연기나 향연기나 똑같은 연기여서, 똑같은 연기 가운데 이 연기와 저 연기일 뿐이다. 부처님이라 해서 어찌 다만 향 연기만 좋아하고 담배 연기는 좋아하지 않겠는가?(후략)˝
- 246~248쪽 `연기 속의 깨달음`에서
기발함이 느껴지죠? 이번에는 문장에 관한 홍길주 이야기입니다.
홍길주는 두 차례 행차 사이의 맥락 문제를 문장가가 문장지을 때 끊어졌다 이어지는 기변과 연관짓는다. 한 편의 글은 여러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단락이란 생각의 덩어리이다. 여러 개의 생각들이 여러 개의 덩어리를 이루고, 그 덩어리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총체적인 형상을 빚어낸다. 그러기에 하나 하나의 덩어리들은 각기 독립된 개채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밀한 연계가 있어야 한다.
- 296쪽 `천하의 지극한 문장`에서
당연해 보이는 설명을 심오하게 다루지요? 우리는 글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 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 단학의 수련도 결국은 마음공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결코 속세를 떠나 가족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깊은 산 속에서 풀뿌리나 캐어 먹으며 사는 삶을 부추기는 것일 수 없다. 생식하고 고기 안 먹고, 잠 안 자고 수련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략)
하늘을 훨훨 나는 신선이란 것도 결국 잡념을 걷어가 해맑아진 마음을 얻게 되는 대자유의 경계를 비유한 것이 아니겠는가?
- 316쪽 `신선의 꿈과 깨달음의 길`에서
신선의 꿈을 꾸었다는 허균의 이야기에서 저 같은 사람은 신선처럼 될 수 없다는 체념을 했고, 이 세상이 얼마나 어지러웠으면 신선을 꿈꾸었을까하는 생각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을 진정으로 닦는 게 어렵다고 말하네요.
18세기 지식인들의 열정, 성실, 기행을 보면서 나도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 스스로 그렇다고 자부했었지만, 이들의 모습에 겸손해져야겠더군요.
지식인의 삶 속에서 만나는 삶의 지혜, 뚜렷한 목표의식, 평범함을 거부한 개성! `미쳐야 미친다`는 흥미로우면서 우리가 배울 게 뭐가 있을 까하며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에 나온 지식인들과 저자인 정민 교수님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