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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평점 :
배설, 성장통, 성(性), 질병, 노화, 죽음
가식도 금기도 없는 한 남자의 내밀한 기록
『소설처럼』『학교의 슬픔』의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차린 ‘삶’의 성찬!
- 앞 표지(띠지) 홍보문구
『몸의 일기』(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을 사서 읽어보기로 결심한 건 지금 찾을 수 없지만 어느 신문의 책 소개 글을 접하면서입니다. 책 속 구절을 인용하며 남자의 몸을 매력있게 다뤘다고 소개했던 기억이 나네요.
홍보 문구에도 알 수 있듯 성, 사랑, 질병, 죽음 등 한 남자의 생애를 일기라는 형식(당연히 1인칭 시점이죠?)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13세 1개월 4일 1936년 11월 14일 토요일
아빠가 이런 말을 했었다. 모든 사물은 무엇보다도 먼저 관심의 대상이다. 따라서 내 몸도 관심의 대상이다. 난 내 몸의 일기를 쓸 것이다.
13세 1개월 8일 1936년 11월 18일 수요일
내 몸의 일기를 쓰려는 또 다른 이유는, 모두들 다른 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란 몸은 전부 다 거울 달린 옷장 속에 버려져 있나 보다. (후략)
(33~34쪽)
주인공 '나'(저자의 친구 리종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 전쟁으로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두려움에 창피를 겪은 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때론 '라루스 사전'에 있는 인체 해부도와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비교하며 얼마나 자랐는지, 얼마나 아버지의 몸을 닮으려 했는지 알 수 있죠.
어렸을 적부터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꽤 발랄하고 야한 구석이 있습니다. 주인공을 돌봐주던 비올레트 아줌마, '도도'라는 주인공의 상상 속 동생, 주인공의 친구 티조, 팡슈 등과 함께 한 모습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죠.
13세 5개월 6일 1937년 3월 16일 화요일
아빠가 미리 얘기해줬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일이 닥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난 잠에서 깨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잠옷 바지가 젖어 있었고 두 손도 온통 끈적끈적했다! 이불에도 묻어 있었다. 사실상 온 사방에 묻어 있었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퇑 뛰었다. 바지를 벗으면서 난 아빠가 얘기해줬던 걸 떠올렸다. 그걸 사정이라고 해. 밤사이에 그 일이 일어나더라도 겁먹지 마라. 다시 오줌을 싸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그건 새로운 미래가 시작된다는 신호야. 놀라지 말고 얼른 적응하는 편이 나아. 넌 앞으로 평생 정자를 만들어낼 테니까. (후략)
(53쪽)
23세 1946년 10월 10일 목요일
(전략)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가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 몸뚱아리도 나처럼 발가벗은 채였는데 따스했다. 포동포동한 데다 더할 나위 없이 여성적인 몸. 그녀의 말은 세 마디가 다였다. 쉿, 움직이지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고는 날 삼켜버렸다.
(중략)
모든 게 끝났을 때, 그녀는 내 귀까지 미끄러져 올라오더니 속삭였다. 팡슈가 네 생일이라고 해서. 나 정도면 괜찮은 선물이 아닌가 싶더라고.
(146~147쪽)
모나와 결혼하고, 아들(브뤼노)과 딸(리종), 손자(구레구아르)와 손녀(파니와 마르그리트)를 얻은 주인공 '나'는 서서히 늙음을 겪는데요. 자연스레 일기도 진지한 분위기로 접어듭니다. 젊은 시절의 발랄함과 180도 다르지요.
53세 5개월 2일 1977년 3월 12일 토요일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 내 목욕의 변천사를 한 차례 정리해봤다. 여덟아홉 살까지는 비올레트 아줌마가 날 '씻겨주었다.' 열살에서 열세 살까지는 씻는 시늉만 했고, 열다섯 살에서 열여덟 살까지는 욕실에서 몇 시간씩 보냈다. 오늘 난 일터로 달려가기 전에 샤워를 한다. 은퇴하고 나면 늘어져 있게 되진 않을까? 아니, 습관이 무섭다고, 나 혼자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는 한은 샤워가 잠을 깨워줄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병원에서, 면회가 금지된 시간에 간병인이 날 씻겨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누군가가 내 시신을 닦아주겠지.
(300~301쪽)
86세 9개월 16일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우리 몸은 끝까지 어린아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
(471쪽)
앞에 말씀드렸듯이 이 책을 밤에만 읽었습니다. 자주 빼먹긴 했지만 오랜 기간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가진 야함, 발랄함, 진지함을 모두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죠. 처음 읽을 땐 쑥스러움과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같은 남자가 남자의 몸을 읽는다는 게 아무렇지 않더라도 세밀하게 훑어보기 쉽지 않았으니까요. 성장하는 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다 늙어감과 죽음을 서서히 느끼니 책을 읽는 저 스스로의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야함 혹은 발랄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쓰기 힘든 데 한 남자의 인생을 다루니 알 것 같았습니다. 하나만 썼으면 이런 작품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홀로 두고두고 읽어도 좋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마음을 나누며 읽을 만한 '몸의 일기', 전 별 5개를 과감히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