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가 가능해진 이후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자주 듣고 다닌다.  이 방송의 장점중의 하나가 관심 영역 주요 인물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거의 매일 중계된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경제학자, (구제역때) 축산농민, 담당 공무원, 관련부처의 장들도 빠짐없이 나와서 문답을 진행한다.   

문제는 전문가 또는 담당자라는 사람들이 가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지난 겨울 강원도 폭설로 여러 마을이 고립되었을때 고립된 마을의 할아버지와 제설 책임자의 전화인터뷰가 연달아 진행된 적이 있다. 

손석희: ... 어떠십니까? 
할아버지 : 아플까봐 걱정이죠. 병원도 못가고...  

뭐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서 현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준다음 담당공무원 인터뷰 

손석희: ....제설... 어떻게 됩니까?
담당자: 문제없습니다.
손석희: 조금 전에 인터뷰한 할아버지 마을도 뚫리는 겁니까?
담당자: 강원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내일 다 뚫립니다. 장비 충분합니다. 
손석희: 너무 거침없이 말씀하시니 할말이 없네요.

담당자가  문제없다며 너무 거침없이 말하고 내일 다 해결될꺼라고 하니 인터뷰는 그런식으로 쉽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문제가 있어야 질문을 더 하던가 하지...

문제는 다음날 다시 고립된 마을의 할아버지와 인터뷰할때 나왔다.

손석희: 어떠십니까?
할아버지: 똑같아요. 아무도 안왔어요.
손석희 : 어제 다 해결된다고 하던데... 

하다가 안된것도 아니고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는거. 힘들지만 해보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거침없이 말해놓고는 정작 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사실 거침없이 말할때부터 신뢰가 가지 않았다. 경험상 저런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편하자고 남들 고생만 시키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도와준다고 할때 거부하고 지원이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닥달해도(빤히 힘들어질 상황이 보이는데) 거부하고 결국엔 나자빠져서 '나 못해' 이래놓고 자기가 저지른 일 남들이 다 치우게 하는 무책임의 책임자..   내가 고립된 것도 아닌데 열 확 받더만. 

최근에는 방사능 위험 관련해서 전문가들의 역할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방사능이 절대 한국으로 오지 않을꺼라던 전문가들, 결국은  전국에서 방사능 검출되고(미량이지만) 우리에게 넘어올수 있음을 인정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근본적인 것은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40%를 차지하게 될때까지 어디서도 그런 점을 주의환기시키는 내용을 볼수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언제나 안전하다고 말할뿐... 하지만 후쿠시마처럼 한 방에 훅 가는 주제에 감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어제 손석희 프로그램에 수산검역담당자가 나와서 또 말끝마다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이런다. 이대로라면 사실 국민들은 할게 아무것도 없다. 철저히 한다는데야... 대체 저런 단답형 대답 한 문장만 외워가지고 와서 인터뷰할꺼면 응하질 말지. 아님 녹음기를 틀어 놓던지. 저말은 자기도 뭘 어찌해야하는지 잘모르겠다는 말로밖에 안들린다. 아는게 없으니 잘하겠다는 말만 반복에 반복... 

어쩌면, 전문가들이란
'나는 모른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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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이야기 꺼낸 김에 제목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한토막 추가.

 

 

 

지금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책은 아주 좋다. 추천한다.
하지만 서문에서 던진 비전문가들(일반인)에 대한 냉정한 지적은 거꾸로 나의 반문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어 잠시 끄적여본다. 

저자는 서두에서 LHC실험 가동당시 블랙홀이 만들어져 지구가 멸망한다는 (터무니없는)이야기가 나돌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일반인과 과학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좀 불편하게 느껴진다. 일반인의 그런 공포에 과학자들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원전 사태가 비근한 예다. 첨단 과학의 결정체인 원전이 우연한 사태 한 번에 재앙의 화산이 되었으니 '과학을 무조건 믿으라'는 말은 얼마나 허망한가? 인간의 공포를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비과학적이다. 수치와 통계만으로 공포가 제어되는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이 책 저자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과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이 물질의 근원과 우주와 별들에게 매료되는 것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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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4-0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문가들이란 '나는 모른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반명사
완전 공감입니다. 담당자란 당장 눈앞에서 등장하는 가림막일뿐-_-; 깃털인거죠~~ 몸통은 쩌 안전한 곳에서 호의호식!

귀를기울이면 2011-04-06 15:43   좋아요 0 | URL
몸통은 아마도 더 모를듯합니다. 보통은 낙하산들이니까요 -.-;

신지 2011-04-0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도 각자 전문가죠. 누구나 자기 직업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일반인과 구별을 하게 될 테니까요.

제 경우, 저는 이 글에서 공무원이 떠올랐습니다. 간혹 관공서에 가보면, 이 사람들은 정말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민원인의 사정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왜 그런게 필요하냐, 그게 왜 안되냐, 고 아무리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따져봤자, 그저 규정이 그렇게 돼 있다, 나도 잘 모른다~ 고 하면 민원인으로서는 별로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공무원 자신도 자기 맡은 일을 수행할 뿐(여기서 악의 평범성이 생각납니다), 자기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민원인들의 사정에는 저절로 무감각해지는가 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예컨대 알라딘 같은)사기업들은, 아무래도 고객입장도 상대적으로 어느정도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알라딘이 싫으면 다른 곳을 이용하면 되는데, 보통 관공서들은 민원인들에게 그냥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에요. (보통은 관공서에 갈 일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자주 가는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 겁니다.) 몇 번 안 좋은 기억들이 있어서, 전 무척 공감하고 있습니다.

귀를기울이면 2011-04-06 22:07   좋아요 0 | URL
쓰고나서 보니 저도 제 일에 대해서는 남들앞에 자신있어만 보이려고 애쓴것 같더군요. 다만 위의 예들은 마음만 앞섰지 실력은 허당이라는게 문제긴 하죠. 얼마전 어느 게시판에 법원공무원의 횡포가 떠들썩 했었는데 뉴스에 조직적으로 국가 세금을 떼먹다가 걸린 소식이 나서 확실히 그쪽은 좀 썩었나보다 했더랬습니다. 마침 오늘 맷값 최철원씨도 집행유예시켜주셨네요. 좌우간 돈 벌고 볼 일입니다.

신지 2011-04-07 02:05   좋아요 0 | URL
중국은 화산폭발이 있을지도 모르는 백두산 부근에 원전을 지을 예정이라는군요. 중국 일본을 합치면 앞으로 약 300기의 원전이 한반도를 둘러싸게 된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북한은 매일 핵전쟁 운운하고, 얼마전,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한이 우리 원전을 타격할 수 있다고 밝혔죠.

"사실 근본적인 것은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40%를 차지하게 될때까지 어디서도 그런 점을 주의환기시키는 내용을 볼수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언제나 안전하다고 말할뿐..."

ㅡ> 같은 생각입니다. 설령 전문가가 안전하다고 말해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특히,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싶어요. ㅠ


별족 2011-04-07 10:17   좋아요 0 | URL
집에서 심야전기로 난방을 하면 어떨까,하셔서 그러지 마시라고 했어요. 에너지 효율을 따지자면,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은 낭비 중에 낭비니까요. 물을 끓여 난방하면 될 것을 물을 끓여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고, 다시 그 전기로 물을 끓여 난방을 하는 짓을 우리나라에서 하잖아요. 원자력은 안전하지 않아요. 그저 '지금 당장' 불편한 저항을 막아 줄 따름이죠.

pjy 2011-04-0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구마구 찔리네요, 그저 '지금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서 눈감는게 어디 원자력 뿐이겠어요 -_-;;

귀를기울이면 2011-04-07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쯤해서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않는다면서 우리나라에서 호들갑이라고 타박하는 분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수 백 수 천년의 폐기물 유지관리가 필요한 원전을 설계하고 건설하고 유지하고 청정에너지처럼 광고했던 이들도 과학자들이었죠. 그러고 싶지 않았다해도 결국 과학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조종될수 있음을 자인하는 것 밖에는 안되는거구요. 과학은 과잉, 불편을 견디고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의 제어능력은 퇴화중인것 같습니다...

Lennon 2011-04-0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제 책을 읽어주시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반문에 답해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일반인들의 그런 공포에는 과학자들의 책임"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과학자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정보로부터 소외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책임은 그 정보를 가지고 있고 다루는 사람에게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과학자는 최신 정보와 전문 지식을 확산시키는 데에 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책임감이 바로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입니다. (제가 처음 쓴 서문에서는 좀 더 명확히 그런 말을 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날아간 모양입니다.) 제가 지적한 것은 일반인을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과학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다만 그러니까 일반인들도 좀 더 과학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의도는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과학을 무조건 믿으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서문에서 말했듯이 '과학은 '어디까지가 옳고, 얼마만큼 믿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무조건'이라는 말이야말로 과학과 가장 거리가 먼 말입니다. 원전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과학은 원전이 어디까지 안전하고 얼마만큼 위험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고 전이건 후건 마찬가지입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당연히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요.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이성 혹은 지성이라고 부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해있는 우주가 있습니다. 지성이 우주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좀 동떨어진 댓글이 되어 버렸군요. ^^


귀를기울이면 2011-04-07 18:31   좋아요 0 | URL
우와!영광입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조심스럽게 글을 쓸것을 그랬습니다.^^; 사실 물리학에 관한한 애송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이 책을 두고 "훌륭하다"라고 쓴것이 좀 걸렸거든요. "너무 좋았다"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것을 이미 저자께서 보신 후이니... 너무 건방져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각설하고 , 친절하게 답변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대로 '무조건'이란 말은 제가 덧붙인 것이고 바로 잡아주신 내용이 맞습니다. 저도 좋아하게 된 책을 오해하도록 글을 썼으니 이점 유죄네요. 굳이 변명하자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과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격한 기억들이 뒤섞여 글로 나오다보니 그리되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개인 블로그라는 점도 참작해 주시고요^^ 어쨌든 덕분에 저자분의 멋진 답변을 볼수 있게되어 너무 좋네요.
계속 좋은 책으로 만나뵙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감은빛 2011-04-1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무척 좋지만, 댓글들도 하나같이 대단해요!
멋진 통찰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