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양반~중인~상민~천민의 구조이다.  
 
양반은 지배 신분층을 말하고, 문반과 무반을 총칭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왕이 조회 朝會할때 왕을 중심으로 東은 文班, 西는 武班으로 나누어 섰는데...이 두 班열을 양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양반.. 사대부士大夫 <사림士林< 사류士類<  사족士族, 이는 갈수록 더 넗은 범위의 양반층으로 말하는 용어다...  
 
양반은 조선의 지배 신분층으로 벼슬을 얻어 나라 관리로서 정치를 하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토지,노비)으로 특권을 누리며 
그 뿌리를 단단히 내린다. 노비를 대대로 물려줄수 있고, 자녀들에게 재산도 물려 줄수 있는...특권을 누린...그들.!!! 
 
<조선양반의일생>에서 보면 양반의 생애를 국가의 중심 세력이면서 조선 사회의 그늘이기도 했다고 표현했다.  
정말 한 문장으로 그들을 가장 잘 표현한 했다고 할수 있다. 

 

<조선을 이끈 명문가 지도> 

권오영,김문택,김학수,성봉현,이근호,이기순,이상필,이성무,이영춘,임선빈,한희숙 공저다.
 
 조선을 이끈 명문가에 대한 계보학적, 인문학적으로 따라 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행동과학자 혹은 경제심리학자가 조선시대를 파고든다면 무엇보다 먼저 가문의 족보와 그 계보에 얽힌 다양한 변수들을 묻고 따질 것이다. 조선을 이끌어간 양반들의 행동을 가장 근저에서 규정한 것은 바로 ‘가문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그간 조선시대를 다룬 역사 연구는 이 ‘가문의 논리’에 소홀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조선시대 대표 가문의 계보가 어떻게 설정되고 서로 얽혀들었으며, 각 가문을 지탱한 가문의 철학, 인적 구성, 문화적·경제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조선시대 역사를 움직인 ‘실질적인 변수’이자 잘 드러나지 않는 ‘내재적 변수’의 한 측면을 파헤치고자 한다.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이끄는 뿌리회 및 뜻을 함께하는 연구자들은 현지답사와 문헌 연구를 토대로 하여 전체 4권 분량으로 조선을 이끈 명문가에 대한 계보학적, 인문학적 탐색을 해나갈 예정이다.

 
   

 

맘먹은대로..즉 계획대로 꾸준히 시리즈로 출간되면....기꺼이 감사히 읽는다.
난 왜 그렇게 시리즈를 좋아하는지.....뭔 맘인지...참~~   

판형 좋다~내 개인적으로 말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ㅎㅎ!!  

그럼,

권력 과 부를 지녔고,,,게다가 지식으로 까지 무장한 무리들은 누구인가? 
예상대로 '양반 '이다. 

관료체제가 확립(경국대전에서 성문화됨)되면서 양반의 개념은 관직을 가진이뿐아니라 그의 가족과 家門까지를 의미하도록 그 범위가 넒어진다.

가문...이라는 건  한마디로 양반 중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인거다.   

양반도 급이 있다. 양반이라고 해도 다 같은 양반이 아닌것이다.  

조선 사회에는 가통家統, 학통學統, 대통大統이라 하여 이른바 3통이 존재했다. 학문적 전수의 계통과 질서를 담은 학통이 ‘학문권력’을, 왕통의 계승을 뜻하는 대통이 ‘정치권력’을 상징한다면 가계의 계승을 뜻하는 가통은 ‘가문권력’의 상징이었다

16세기 이전에는 본인의 능력으로 성취되는 삶을 사는 사회였다면 그 이후에는 개인 가치가 가문속에서 좌지우지 되는 

양상을 보인다. 즉  이 시기의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문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양반사회에서 가문의 존재가 부각되고 그 영향력이 강화된 것은 17세기 이후였다. 17세기를 기점으로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혼인 및 상속제도의 변화와 관련이 깊었다. 혼인에 있어서는 남귀여가혼男歸女嫁婚을 제한하는 대신 친영親迎이 강조되고, 상속에 있어서는 자녀균분에서 봉사조의 강화를 통한 장자 중심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특히 왜란 이후 예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고, 『소학』 『가례』 등 주자학적 실천윤리나 예제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면서 세상의 모습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예학禮學의 시대’ ‘종법宗法의 시대’가 그 서막을 열게 되었으니, 그것은 곧 부계친 중심의 ‘남자의 시대’ ‘가문의 시대’를 뜻했다  
   

이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가문 간의 연대는 정치·학문·사회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가문을 알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사료를 해석하는 맛도 달라진다 

   
  가문을 보전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조선의 명가들은 슬기로움과 지혜를 바탕으로 집안을 유지·발전시켰고, 저마다의 가풍을 이어주며 역사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그러면 명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양반 사대부에 있어 왕조 500년을 관통하는 최고의 가치는 역시 벼슬이었다. 명가의 일차적 요건은 벼슬이라 하겠지만, 벼슬만 이어진다고 그 조건이 충족된 것은 아니었다. 명가가 되려면 가풍과 저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당대인에게 모범이 되거나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무언가여야 했다. 가령 청백이나 효열이 그런 예일 수 있고, 도학이나 문한 혹은 절개나 의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 이 책에 소개된 그 대단한 10개의 명문가는 어떤 집안인가? 
이름만 들어도 고개는 끄덕여 진다. 

   
  이 책에 소개된 10개의 가문은 이러한 경향을 망라하는 조선의 대표적 명문가들이다.이들 가문은 서울 및 경기, 호서, 영남 등 그 터전이 서로 달랐고, 학파나 정파 그리고 가치와 지향도 한결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사림시대를 살며 정치·학술·문화계의 리더로 활약하며 시대정신에 충실했고, 자가의 번영을 넘어 세상의 발전을 함께 고민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주역이자 선각자들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삶의 환경과 조건들을 조화롭게 용해시켜 여느 가문과는 차별되는 가풍을 창조하고, 또 지켜옴으로써 전통시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그래서 이들이 남긴 삶의 자취는 특별한 집안의 이채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해야 할 역사적 자산이 된다. 이것이 이들 가문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삶의 흔적을 이 한 책에 담아 펴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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