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달 두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 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 오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 자리로
바람이 가득 가득 몰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여린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다녀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
오월 편지 / 도종환
|
|
|
|
|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어도 이상하게 계속 읖조리게 되는 도종환 시인의 '오월 편지'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의 구절이 가슴속에 꽉~~박힌 채 빠질 생각을 안한다.
중학교 국어선생님께서...."도종환 시인의 시는 한국의 서정성을 잘 나타내고, 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특징이다.. "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수록...더 뚜렷한 감정선이 보이는 그분의 시 속에서...
오늘도 난 생에 대한 진하고,
애틋함속에 허우적대는 내 마음을 잡아본다....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 당신>이 출간 25주년(초판 1986년)을 맞았다.
시인과 평소 친분이 있는 판화가 이철수가 표지 글씨와 그림을 새롭게 꾸며
이 시집의 특별한정판을 출간했다.
표면적으로는 먼저 간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노래한 시집이지만 그 밑바닥을 관통하는 시인 특유의 한국적 서정과 생에 대한 깊고 진한 성찰의 자세가 애틋함을 더욱 고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