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을 맞아 칠백의총七百義塚 에 다녀왔다. 700.cha.go.kr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에 있는 사적으로 1592년(선조25) 8월 18일 임진왜란 제2차금산싸움에서 순절한 의병장 조헌등 700의사의 유골을 모아 합장하여 '칠백의총'이라고 하였다...
1603년(선조36)에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 重峰趙憲先生一軍殉義碑가 세워졌고, 1634년 순의단을 세워 해마다 8월 18일에
제향을 올렸으며, 1647년(인조25)에 종용사 從容祠 를 건립하여 700의사의 신위를 모셨다.
일제강점기말에 일제의 우리 민족혼말살정책으로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하고,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서 경역을 황폐하게 만들었으나, 지역 주민들이 파손된 비석을 땅속에 묻어 보존함으로써 지킬수 있었다.
1963년 의총을 보수하고 종용사를 다시 지었고, 정화작업으로 현재모습으로 새로 단장하였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매년 9월 23일에 칠백의사 순의제향을 실시하여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임진왜란때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과민족을 구한 7백여명의 의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잊지말고 기억하자~~
칠백의총은 현재 무료개방이다. 국민의 문화생활향상과 호국선현 유적을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위한 정책이라고 한다.
맞다. 호국선현 추모객에게 요금을 받는다는건 정말이지 적절하지 않다....잘했다~~~
하루빨리 현충사 또한 무료개방을 원한다..
참배를 마치고 걸어 내려오는길에 담 밑에 핀 매발톱을 오랜만에 봤다~~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찍기에 바쁜 엄마뒤에서 우리 아이들!!!
" 엄마~ 그렇게 좋아?"""" 아까 묵념할때는 그렇게 심각하더니? "
방명록을 작성하고, 묵념을 올린후 계단에 앉아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울 아들~~지금 무슨생각을 할까?
꼭 읽어봐야~~ 칠백의총 다녀온 후 우리 아들에게 몇편 읽어주니~~~ 뭔가 많이 느끼는 듯한 눈망울이....잊혀지질않는다!!
책소개를 보자.
곽재우, 조헌, 고경명, 고종후, 이정암, 서산대사, 사명당... 알듯한 이름과 모를듯한 이름이 섞여 있는 이들이 이 책의 저자로, 모두 임진왜란 당시 분연하게 의병을 일으켜 조국을 위해 떨쳐섰던 인물들이다. 단지 의병장으로만 알려진 이들 임진왜란의 영웅들이 남긴 420여 편의 시와 20여 편의 격문을 모아 실었다.
아홉 명의 의병장들이 전란의 한가운데에서 겪은 희노애락이 글 속에 절절히 담겨 있다. 격문을 띄워 나가 싸우자는 외침 속에 담긴 우국충정, 임금이 수도를 버리고 의주로 피했다는 소식에 복받친 비분강개, 함께 싸우던 전우의 전사 소식에 복수를 다짐하는 열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그들의 남겨진 글 속에서 단지 의병장들이 칼과 창 속에 산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식과 덕망을 바탕으로 많은 글을 남긴 이들이었음 또한 알 수 있다.
단지 임진왜란 = 이순신의 공식으로만 단순화된 오늘날의 시각을 넘어 이 책은 각각의 의병 봉기 순서에 맞추어 의병장들의 착품을 엮었고, 그 문학성을 가려 뽑아 수준급의 내용들을 자랑한다.
이책의 지은이는 임진왜란때 나라를 지킨 아홉 의병장들이다...
홍의장군 곽재우 : 경상도 의령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켰다.
조헌 : 충청도 옥천에서 처음 봉기하였고 청주성 싸움에서 동생,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
고경명 : 전라도 담양에서 아들과 함께 봉기, 금산 싸움에서 전사했다.
이정암 : 황해도 연안에서 '연안대첩'으로 기록될 전투를 벌였다.
정문부 : 함경도 경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서울 수복에 공을 세웠다.
서산대사 휴정 : 73세의 나이에 격문을 띄워 천 오백 승병을 모았다.
사명대사 유정 : 서산대사의 뒤를 이어 금강산 승병과 함께 왜적에 맞서고, 후일 전후 회담을 이끌었다.
문덕교 : 함경도 함흥에서 봉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