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明成皇后 (1851~1895)  

아직도 '민비'라고 격하시켜 부르는 식민지 사관의 산물을 입에 담고 살고 있지는 않겠지? 

난 항상 명성황후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은 모두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나라를 강점한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요, 변명이며, 우리의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기 위한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명성황후를 권력에 집착하고, 친정세력의 이익을 위해 국가는 나몰라라 하고, 투기와 변덕, 사치가 심한....그런 여인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심한건지...... 

 

명성황후는 처음부터....

세력가인 친정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지도, 아들이나 손자를 통해 수렴청정을 하면서  권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오직 자신이 왕비가 되어 왕과 가장 가까이서 국정을 논의하고, 왕비 스스로 정치적 입지를 위한 필요에 의해 자신의 친정세력을 키워나간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고종보다 더 주목받은 권력의 핵심중에 핵심....명성황후 ....그녀의 정치 능력은>? 

국내, 국외적으로 혼란기에 외세를 끌어들여  자신의  정치적입지를 위해 노력한.., ....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 그대로..... 

그녀는 망국의 길로 나라를 이끈 나라망친 장본인인가? 아님 구국을 위해 몸 바친  혼란의 시대의 여걸인가? 

왜 대원군의 쇄국정치에 반대에 서있으면서도 급진적 개혁은 원하지 않았을까? 혹 지나친 쇄국, 급진적 개혁 사이에 균형을 원했던 걸까?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외세를 꼭 끌어들여야 했을까?  우리 스스로는 힘들었을까?

도대체 그녀의 친정세력들은 새로운 외척 세력으로 급격히 만들어 끌어올렸을까?  대원군을 향한 고종의 방패막이 역할로 필요했던걸까?  

아이고 머리 아퍼~~~

지나치게 총명하고, 정치에 적극적이며, 시대를 앞선 현대적인 머리, 심장을 가진 명성황후의 ... 행보를....
과연  긍정적으로 봐야할지? 아님 부정적으로 봐야할지.....?  그냥 내가 믿고 싶은대로 믿으면 되는건지...잘 모르겠다@@

척신들과 세도정치가들로 인해 찌들대로 찌들은 나라를 다시 일으켜 새우고, 강력한 국가를 위해 노력했던 대원군과 철의 여인 명성황후는 도대체 무엇을 두고 그렇게 대립했는가..........
둘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잡을 수는 왜 없었는지...태양은 오직 하나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당신 고종은 중간에서 도대체 무얼 하셨는지...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다른걸 다 떠나서........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당한 일만을 본다면...... 한마디로 그들은 분명 조선을 침략하고, 강점하기 위한 일에 명성황후가 큰 걸림돌이었다라는 의미겠다....안그러면....그렇게 충격적이고, 비통한 만행을 저질렀겠는가....

도대체 한 나라의 황후를 그렇게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또 있을까? 대원군과 고종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국가의 격이 완전히 훼손당하고, 돌이킬수 없는  망국으로 가는 길로 더 재촉하여 갈뿐인것을.......  

독도 영유권문제와 왜곡 교과서로 아직도 일본은 우리에게...........더이상 말을 말겠다....지친다...너무 언급하다보니...  

더 이상 욕조차도 씨가 말랐다 싶다....

일본의 야욕에 의해 ...지금도 이렇게 말도 안되게 당하고 , 억울해하고 있으며,,,,, 

일본 야욕에 의해 1895년 명성황후가 그렇게 처참하게 시해당했다. 

읽어보자...읽어봐야 답이 나오고, 읽어봐야 뭐든 더 할것같다...그넘들을 더 욕을 하던지...때려주던지.... 

책 주요내용을 보자...내용 흐름이 잡힌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을미사변'이라고도 한다. 청일전쟁의 강화가 성립하고 삼국간섭이 일어난 후에도 일본은 조선에서 전신선을 확보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일본군을 주둔할 필요를 느꼈다. 이에 일본정부와 대본영의 뜻을 받은 전권공사 미우라 고로가 그 장애물이 되는 왕비를 제거하고 친일정권의 확립을 목표로 경성수비대라는 일본의 군대를 사용하여 일으킨 모략 사건이다.

청일전쟁에서는 통신선의 확보가 전략상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규슈뿐만 아니라 멀리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군을 파견하고, 전황을 파악하여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대본영과 전투 지역 사이를 전신선으로 연결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청국에 대한 선전포고에 앞서 전쟁 지역이 되는 조선 및 중국 동북부에서부터 일본까지 연결되는 전신선과 전신국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앞에서도 언급했던 1894년 7월 23일 새벽녘의 군사작전, '조선왕궁 점령'의 숨겨진 목적의 하나였다.
 
   

 

 

명성황후가 맞는가? 진짜 명성황후의 사진은 있기나 한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