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의 상황을 보자...한국사람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이들이 옳지않다는 걸 안다.  

그럼 이런 역사내용을 배우는 중국사람들, 일본사람들은 이 것이 혹 잘못된 내용이 아닐까하고 한번이라도 생각할까?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써온 우리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왜곡된 내용 하나 없이 모두 다 진실인가? 

멀리 갈것도 없이 가장 가까운 , 현재 우리가 쓰고 있고 있는 근대사, 현대사는 모두 옳게 쓰이고, 옳게 알고 있을까? 

아마도 진실도있고, 아예 거짓도 있을수있고, 왜곡도 되고 ...그러므로 수정해야할것들이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흔하게 쓰여지고, 흔하게 읽혀지는   근현대사에 대한 기록물을 우리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읽고 있을까? 

치우치다 못해 편협하고 꽉 막힌...민족주의만을 강조한 책을 보며 내 생각도 편협하고, 꽉 막히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열린 민족주의, 품위있는 민족주의를 바라는 나는............  

좀더 정체성을 회복한, 우리사회와 민족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을 의식하는 시민적 민족주의를 원하고 있는데...   

내가 대중을 위해 쓰인  역사서적들을 읽을때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건 ...  

치우치지 않고, 잘 균형이 잡혀있는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기술의 두측면을 어떻게 서술했는가?

과연 작가가 무학자(無學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썼는가?  이다... 

사람들이 거쳐온 시간들의 이야기를  알고자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건 꼭 어떤 선택된 부류에게만 주어진것이 아닐꺼라
생각하니까.....  나같은 사람, 너같은 사람이  모두 함께 읽고, 이해할수 있게 쓰여졌다면,,,,,, 

과거 사실을 보는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내 시선이 달라질수 있기때문에  편협한 시선말고,,
열린 시선으로 내용을  서술해주었다면................더 바랄게 없을듯........................       

김기협의 <해방일기> 제1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1945. 8.1 ~ 10.29) 가 출간되었다. 

저자의 어마어마한 집필 계획에 눈이 가요 눈이 가~ 해방일기에 눈이가요.. 너머북스의 해방일기 1권. 

1945년 8월1일 해방전야부터 1948년 8월 31일(3년)까지 10권을 집필 목표로 한다고 한다.    

 ‘해방공간’이라고 불리는 3년 동안 이 땅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해방을 맞이하긴 했지만......좌우익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해방된 대한민국엔 좌익,우익만 존재했을까? 

해방이 되고 이젠 자주적으로  민족독립국가가 수립될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던 일은 그러지 못하게 된 일로 되버렸다.  
민족 반민족,,좌익 우익의 구도로 이념논쟁이 불이 붙었다,,,일제강점기때 나라를 위해 어떻게 했는데...그 이념때문에.......... 

이념이 다르면 싸워서 어느 이념이 꼭 옳다고 못을 박아야 되는게 인간사인가? 그게 옳은일인가? 옳지않은일인가?  

해방공간기 3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이럴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어보자..그리고나서 묻고, 따지고 생각해도 된다..


 

『해방일기』 제1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 를 한번 보자.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 후 소련군과 미군의 점령까지는 몇 주일의 간격이 있었고, 전국이 실효적 점령 상태에 들어가는 데는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이 ‘권력의 공백’ 기간에 해방 조선의 정치적 요소들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민의가 집중된 두 개의 초점이 민족혁명과 사회혁명이었다. 민족혁명을 앞세운 쪽이 우익이고 사회혁명을 중시한 쪽이 좌익이었다. 두 진영이 혁명의 속도와 범위를 타협할 수 있다고 보는 중도파가 민의를 폭넓게 대표하면서 건국준비위원회로 나타났다.

9월로 접어들며 극좌와 극우가 나타났다. 일체의 사회혁명을 거부하는 극우파가 한민당을 거점으로 만들었고, 급속하고 철저한 사회혁명을 주장하는 극좌파가 건국준비위원회를 장악하고 인민공화국을 출범시켰다. 극좌와 극우는 서로 상대방의 배제를 주장하는 대립관계로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존재를 내 주장의 근거로 삼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중도파의 입지를 함께 공략했다.

10월까지 미-소 군대의 실효적 점령이 완성됨에 따라 점령군의 존재가 정치 상황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국제관계에서 방어적 입장에 처해 있던 소련 쪽보다 국제정책의 급격한 변화를 앞두고 있던 미국 쪽 입장이 더 큰 작용을 일으켰다. 이북의 소련군이 조선인의 자치활동 성장을 도와주며 소극적 입장을 지킨 반면 이남의 미군은 일본인의 지배자 위치를 물려받아 자치활동을 적극 억압했다. 극우파가 미군의 옹호 아래 세력을 키우고 그 반동으로 극좌파가 좌익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