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의궤가 돌아왔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지 145년만이다.  이번에 반환되는 의궤는 어람, 즉 임금 열람용이 많은데다 유일본도 30권 가량 포함돼 있어 더욱 귀중하다.

외규장각 도서 296권가운데 유일본8권을 포함한 1차 반환분 75권이 먼저 돌아오고 . 다음달 27일까지 모두 네차례에 걸쳐 항공편으로 돌아온다. 이번 의궤반환은 영구반환이 아닌 대여 형태로 들어온다. 

온습도 조절 특수상자에 담겨 이송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안전하게 보관된다.

정부는 오는 7월19일부터 9월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 도서 특별전시회를 가질예정이다.  

 

 (사진출처 중앙일보)

  

외규장각 도서는 19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직원으로 일하던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297권을 발견해 공개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1991년에 서울대가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구했지만 프랑스가 등가교환(문화재 맞교환)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그후 1993년 한프정상회담때 미테랑대통령이 경부고속철도부설권을 프랑스의 테제베가 따기 위한 의도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1권을 가져와 반환의지를 밝혔으나  또 무산되고 그후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은 지난해 G20서울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방한한 사르코지 대통령을 설득, 5년단위의 갱신이 가능한 '임대'방식의 반환에 합의했다. 

양국은 이후 실무협상을 거쳐 합의문에 서명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 국립도서관 간 약정으로 최종 반환 일정을  조율했다.  양국 간 합의문을 보면 대여받는 외규장각 의궤의 문화재 지정은 절대 불가하며, 전시를 하는것도 프랑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무조건 반환되어야 한다..무조건 반환되어야한다...약탈해 갈때 그놈들 맘대로 가져간것도 화나는데 약올리는것도 아니고 대여는 무슨 대여~~ 그거 우리꺼야!! 손떼~ 

 

외규장각을 알기 전에 먼저 규장각에 대해서 알아볼까? 

숙종때 작은전각을 마련해 '규장각'이라 했으나 직제는 없었고, 정조 즉위후 1776년(정조1년) 규장각(奎章閣)이 창덕궁에 세워졌다. 규장(奎章)은 임금의 시문이나 글을 가르키는 말로 이름대로 역대왕의 글과책을 보관하기위한 왕실도서관 역할을 했다. 

정조는 여기에 비서실 기능과 문한 기능을 통합적으로 부여하고, 과거시험주관, 문신교육의 임무까지 부여했다. 이후 실학자와 서얼 출신의 학자들을 채용하며 많은 책을 편찬하였다.  

1782년에 좀 더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자료를 관리할 목적으로 외규장각을 세우자 원래의 규장각을 내규장각이라 이르고, 서적을 나누어 보관하도록 했다.

외규장각은? 

외규장각은  1782년(정조6년) 강화도에 설치한  왕실 관련 서적 보관목적으로 만든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도서관이다. 규장각 도서 중 영구 보존의 가치가 있는 책들을 별도로 보관한 외곽서고이다.  

설치 후 왕실이나 국가 주요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총 천여권의 서적을 보관했으나 1866년(고종3년) 병인양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침입한 사건)때 프랑스군에 의해 강화도가 습격당하면서  일부서적은 약탈,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외규장각도서는 외규장각에만 있는 유일본으로 사료적 가치가 우수하며, 제작 당시의 비단 장정 유지본으로 미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어람용 의궤중 다수인 298책이 이에 해당된다.   

  

그럼 여기서 의궤를 알아볼까? 

의궤(義軌)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행사가 있을때 그 과정과 의례절차,내용등을 기록과 그림으로 소상하게 정리한 기록이다.  의례 또는 의식의 궤범이 되는 책이라는 뜻이다. 실록에도 의궤의 기록이 남아있지만 내용의 규모가 크고, 그림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의궤로 제작되었다.   태조부터 편찬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임진왜란 때 유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의궤가 작성되는 주요행사로는 왕비,세자등의 책봉, 왕실의 혼인, 추숭이나 존호가상, 태(胎)의봉안,국가의 각종제사(종묘사직), 친경(친농,친잠), 사신영접, 국왕행차,궁궐건물건축및 보수, 공신녹훈, 왕실인장이나 어진제작및 봉안, 궁중잔치,실록편찬등을 기록해 국가의 주요행사에 모범전례를 만들어 유사한 행사가 있을때 이를 참고하도록 하였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는데 의례 및 준비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각종공문서, 업무분담, 담당자명단,동원인력수, 소요된물품,경비내역등과 행사 하이라이트부분을 그린 반차도 등 그외 많은것을 기록함으로써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볼수있다. 

현존하는 의궤로 가장오랜된 의궤는 선조의 첫번째 정비 의인왕후 박씨의 장례에 대한 것이 기록으로. 1601년(선조34년)에 만들어진 '의인왕후 빈전혼전도감의궤' 와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이다.  

대체로 의궤는 5~8부가 제작되었는데, 국왕열람용으로 어람용1부가 포함되며 나머지는 관련관서 및 사고에 나누어 보관햇다.

의궤는 유일본인 어람용과  일종의 복제본인 분상용으로 구분하기도 한다.조선시대 어람용 의궤는 국왕 열람 목적으로 임금에게 바치는 유일본인 고급도서로,  고급 초주지를 사용해 화려한 비단 표지로  제작되었다.  외규장각 도서에 유일본, 어람용이 많은 이유는 외규장각이 왕립도서관이며 당시  어람용의궤류 대부분이 외규장각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조선왕실의궤는 서울대규장각2900여책,장서각550여책 그리고 프랑스,일본등 흩어져있는것까지 포함하면 4100여책이 남아있는것으로 추정한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오늘은 이책 다시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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