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먹은 누룩이 아니고, 책에는 술그릇이 담겨 있지 않는데 글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는가. 장차 장독 덮개가 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런데 글을 읽고 또 다시 읽어, 읽기를 사흘 동안 오래 했더니, 꽃이 눈에서 생겨나고 향기가 입에서 풍겨 나와 위장 속에 있는 비릿한 피를 밝게 하고, 마음속의 쌓인 때를 씻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즐겁게 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여, 자신도 모르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어가게 한다.  

- 문무자 이옥(李鈺, 1760~1815)의 묵취향서 -

 "나는 요즘세상의 사람이다. 내 스스로 나의 시, 나의 문장을 짓는데 선진양한(先秦兩漢)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위진삼당(魏晉三唐)에 무어 얽매일 필요가있는가”라고 자부하던 문무자 이옥(李鈺, 1760~1815). 그는 새로운 글쓰기로 정조에게 맞섰다.   

  18세기는 천재의 세기라 불린다. 18~19세기 조선 문단에서 불었던 장르적 열풍이 있었다. 개성이 풍부한 작가들이 숲의 나무처럼 많은 18세기 후반의 문단에서 최고의 지성 박지원과 북학파들, 정약용 그리고 김려나 이옥이 이러한 새로운 물결의 주인이었다. 이 천재들이 일으킨 새로운 글쓰기가 산문 즉, 소품문(小品文)이다.소품문은 말 그대로 짧은 글, 자투리 글 성격의 현대적 장르로 말하면 에세이다.  과거답안 같은  문장이 아니라, 소품에다가 현재의 조선의 사회 문제를 담기 시작했다.

 소품문에는 문학의 소재로 잘 다루어지지 않던 많은 것들이 소품문에서 즐겨 다루어졌다.  혜택받은 존재가 아닌 소외된 인간들, 미천한 인간으로서 여성과 중인 평민들 그리고 어린이의 생활모습의 일상들,  담배와 물고기, 새와 바둑, 음식과 화훼 같은 기호품을 문학의 소재로서 당당하게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한문산문에 비해 자유롭고, 내용 또한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데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는 내면의 흐름을 보여준다. 소품 문학의 문체는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을 떠올리면 된다. 소재의 폭이 넓으며 자신의 내면을 스스럼없이 표현하여 자기 색깔의 개성이 드러난다. .

소품문이 크게 유행하자 문체의 변화가 체제의 안정성에 위협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판단한 정조는 문체를 지난날의 모범적인 상태로 되돌리려 1792년 당시 유행하던 소품(小品), 소설 등의 문체가 정통적 고문을 어지럽히는 잡문체라 하여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일으킨다
 

이옥이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1792년 국왕 정조가 출제한 과거시험에 소품체 과문을 제출,  정조 임금으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기도 하고 매일 10편씩 열흘 동안 시를 지어 바치라는 과제를 주기도 하고,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해 보기도 하고, 경상도 삼가현(三嘉縣ㆍ지금의 경남 합천지역)에서 충군(充軍ㆍ범죄자에게 내리는 군역)하는 엄벌을 내리기도 했지만 이옥은 자신의 글쓰기를 고집하며, 그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이른바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시범케이스다. 이런 정조의 생각은 박지원, 남공철, 김조순 등 당대 일류급 문사들도 곤욕에 빠뜨렸다.  

정조는 소품 문학을 억압하는 ‘문체반정’을 시행하면서 신분과 처지에 따라 문책을 달리했다. 남공철과 같은 주요 집안의 자제는 직접 불러서 엄하게 훈계하고 문체를 고치게 했다. 박지원의 경우에는 남공철을 통해 ‘문체를 고치면 홍문관과 같은 청화한 관직을 주마.’라며 당근 정책을 썼다. 그런데 이옥처럼 양반이기는 하지만 한미한 무반계 출신에게는 가차없는 처벌을 내려 시범케이스로 삼았다.

이옥은 문체로 인하여 관직 진출이 막혀버렸지만, 그의 문체를 고치지 않았고 신념을 지켰으며 이후 문학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자기만의 개성적인 문체와 내용을 고집함으로써 군주로부터 견책을 당할 만큼 독특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러한 그만의 창작 방식으로 인하여 그의 작품들은 조선시대 그가 살아온 시대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후대에 남겨주고 있다.


 

 

 

 

 

 

 

 

 

  이옥은 개인 문집도 없는 데다 묘지나 행장을 발견할 수 없어 그 생애는 매우 불분명하다

이번에 나온 전집은 성균관 시절부터 절친했던 벗 김려가 나중에 그의 글을 수습해 ‘담정총서’로 한데 모은 것이 주요한 근거가 됐다.이밖에도 여러 문집에 분산되어 있던 그의 글을 모아 한글로 옮긴 '완역 이옥 전집'(전 5권·휴머니스트)은 실로 이옥 사후 200년 만의 일이다. 

오랫동안 한문 고전을 정독해온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이옥의 글들을 전부 모아 장르별, 작품별로 새롭게 배열하고 교감,교열을 거친후, 세 권의 번역문으로 엮었으며 자료편으로는 원문과 영인본 각각 1권씩으로엮었다.  

 

 

 

안대회교수의 고전산문산책.. 을 읽고 이옥의 글을 더 많이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이옥 전집을 구입, 읽게 되었다. 

<고전 산문 산책>의 저자 안대회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조선 후기 소품문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일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 10년의 성과를 담아내다 보니 772쪽이라는 두툼한 책이 되었다. 안대회는 정민 과 더불어 한문학을 일반 독자에게 널리 보급한 소중한 학자이다.
그는 18세기 한국 문학을 주로 연구해오면서 소품문이 중요한 문학사적 현상임에도 무관심의 영역에 방치된 것을 문제로 여기고,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해석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18~19세기 소품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조선 후기 문화의 색다른 모습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소품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조선 후기 문화와 문학의 다양한 현상을 해명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책은 조선 후기 천재 작가 23명의 고전산문 160여 편을 담았다. 이 책에서 주목한 작가는 17세기 초반에는 허균이 있고, 18세기에는 이용휴, 심익운, 박지원, 노긍, 이덕무, 이가환,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유만주, 이옥, 남공철이 있으며, 19세기에는 김려, 강이천, 심로숭, 정약용, 유본학, 장혼, 이학규, 남종현, 홍길주, 조희룡  같은 작가를 새롭게 조명한 것이 특징. 낡은 문체보다는 새로운 문체를, 전형적인 것보다는 변화를 추구한 글을, 관념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인 글을, 이념적이기보다는 정서적인 글을, 규범적이기보다는 실험적인 글들을 가려 담았다. 

01 허 균 ― 개성 충만한 사회비판
02 이용휴 ― 일침견혈(一針見血)의 산문
03 심익운 ― 좌절한 영혼의 독설
04 박지원 ―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
05 노 긍 ― 냉소와 자의식의 산문
06 이덕무 ― 섬세한 감성 치밀한 묘사
07 이가환 ― 지사의 비애와 결벽의 정서
08 유득공 ― 벽(癖)에 빠진 사람들
09 박제가 ― 강개한 정서와 예리한 시각
10 이서구 ― 언어 밖으로 넘쳐난 사상과 감정
11 유만주 ― 결함 세계의 품격
12 이 옥 ― 저잣거리의 이야기꾼
13 남공철 ― 소외와 일탈의 인생
14 김 려 ― 상처받은 인생 불편한 심기
15 강이천 ― 무명의 불량선비
16 심로숭 ― 살아남은 자의 슬픔
17 정약용 ― 마음의 열망
18 유본학 ― 고담한 산문미학
19 장 혼 ― 여항 문단의 편집자
20 이학규 ― 비탄과 인고의 정서
21 남종현 ― 가난한 서생의 고단한 삶
22 홍길주 ― 천하의 지극한 문장
23 조희룡 ― 유쾌함과 위트의 문장 

 

** 위 글들은 이옥전집, 고전산문산책을 읽거나 출판사 책소개등의  내용중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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