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통치기는 조선의 르네상스 라고 일컬어 진다.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문예부흥의 시대가 열렸고 이로서 다양한 문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18세기는 빛나는 별들의 시대였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선도한 정조의 시대이자 연암의 시대 또한 다산의 시대, 단원의 시대였다.  

정조는 세자시절부터 끊임없이 수련했고 많은 시(時), 서(書), 화(畵) 작품을 남겼다.
정조는 당대 가장 뛰어난 학자였고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한 왕이었다.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수많은 글씨와 그림을 남겼다. 또 김홍도와 신윤복 같은 화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그에게 시와 글, 그림은 신하들과 백성들을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신하들과 함께 시를 지으며 서로의 생각을 이해했고 자신의 뜻을 편지에 담아 전하며 마음을 나눴다.

18세기 지성사의 빛나는 두별 중 한별~ 

조선후기 대문호 ,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한 중상주의 실학파의 거두  연암 박지원 ( 1737 영조 13년. ~1805 순조5년)  

연암에게는 항상 조선 최고의 문장가.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 진보사상가, 파격적인 문체가라는 수식어 따라다닌다.  

그러나 뛰어난 문장가이기전에 연암은 만년우울증환자,서른이 되기도 전에 머리카락과수염이 하얗게 세어버린 청년이고,가난때문에 스스로 농사를 지었다고 전해온다.1777년 사도세자 폐위 문제를 두고 당파싸움에 휘말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황해도 연암골로 들어가 살았다. 연암이라는 호가 이 지역의 지명을 딴것..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이서구() 에게는 스승이면서 또 벗이었다. 

연암은 특히 산문을 잘 썼다.시는 즐기지 않았지만  그는 산문의 달인(?)였다. 조선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은 자유롭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열하일기’, ‘연암집’, ‘허생전’ 등의 다양한 한문소설을 발표했다.  

박지원은 《연암집》에서 이른바 연암체라 불리는 고유한 문체를 사용하여, 기존의 판에 박힌 글투를 과감하게 탈피했다. 전통적으로 지켜야 했던 바르고 고운 문체 대신 비속어를 적극적으로 끌어 쓰는 등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썼으며, 해학과 풍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당시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들을 그의 글에서 제안하고 있다. 그가 당시 문인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면 그의 글은 새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소박한 것에서 정신을 엿보는 그의 통찰이 《연암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암이 안의현감재직시절 정조로부터 '문체가 바르지 못하니 이를 반성하라'는 편지를 받았다. 연암이 문체반정의 대상이 된것이다. 당시는 중앙의 조정에서 국왕 정조에 의해 문체반정(文體反正)이 추진되던 시기였다.문체반정이란 당대 과거시험지를 비롯해 지식인들의 일부 저술에 보이는 문체가 잘못되었다고 하여 그 문체를 단속해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바로 문체반정의 주 표적이 되었다.그 후 반항도 해보지만 결국은 정조에게 박지원은 자신의 문체가 잘못되었다는 속죄의 편지를 보냈으며, 이를 받아 본 정조는 그의 문재(文才)를 칭찬하며 더 이상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였다. 

 박지원은 그가 평소 저술에서 강조하였던 북학의 정신을 직접 현장에서 구현하는데 주력하였다. 박지원은 백성들의 삶 전체에 관심이 많았다. 안의현감으로 재직하던 당시 고을 내 노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어 효의식을 고양시키고, 옥사를 관대하게 처리하였으며, 백성들의 구휼에도 주력하였다. 그는 뿐만 아니라 각종의 수차나 베틀, 물레방아 등을 제작하여 사용하게 하였고, 하풍죽로당이나 연상각, 공작관 등의 중국식 건물을 지었다. 중국 사행길에서 보고 들었으며, 자신이 [열하일기]에 기록한 중국의 실용적인 문명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연암의 실용적·과학적인 의식은 ‘과정록’에 잘 드러나 있다. 곧 연암은 평생 도박을 하지 않았고 미신이나 풍수 같은 걸 믿지 않았다는 그 아들의 회고담을 통해서다.

 글을 보면 연암은  훤칠한 풍채와 우렁찬 목소리, 다혈질이면서 온순한 성격, 걸출한 유머러스한 면모, 꼼꼼하고 주도면밀한 그리고 강직한 성격인것 같다. 


 무엇보다 연암의 인간적인 품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교우의 폭이다. 신분제도가 엄연한 조선조임에도 그 는 서얼 출신을 마다하지 않았고 손아래 문사들과도 흉금을 털어놓았다. 박지원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토의, 토론을 즐기며. 그는 당대에 함께 활동한 홍대용, 박제가 등과 친밀히 교제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독서의 범위를 넓혔다. 또 책을 읽으면서 주체적 사고와 세계를 탐구하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졌다는 것도 특징이다.
 

 연암은 그가 가장 애중했던 처남 이재성(李在誠)의 집에 갔을 때, 처남이 그 어린 자식과 겸상한 것을 보곤 “군자는 손자를 안아주지만 자식은 안아주지 않는 법”이라고 호통칠 만큼 유가의 계율에 고집불통이었지만 부모형제에겐 끔찍했다. 아버지가 위중하자 중지를 베어 그 선혈을 약에 타서 시탕하거나 아버지의 변을 맛본 일, 그리고 먼저 간 형과 형수의 초상을 극진하게 치러준 일들이 그렇다.
그의 사랑은 집안의 노복들은 물론 가축에게도 절절했다. 노복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노복에게 곤장을 치되 행벌한 뒤 노복을 주물러 멍을 풀어준 일이나, 안의 (安義) 현감을 그만둘 때 자신이 짓던 농토를 노복에게 증여한 것 등이 그렇다. 오죽해야 연암의 어떤 청지기는 연암이 죽은 이튿날 따라 죽기까지 했으랴!
그는 개를 기르지 않았다. 기르면 잡아먹지 아니할 수 없어서였다. 어느 날 애마가 죽자 연암은 죽은 말을 묻어주라 지시했고, 하인들이 말고기를 먹자 그 뼈라도 묻어주라고 유시하기도 했다.  


 

 《 연암집(燕巖集)》은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묶은 문집이다. 창강 김택영은 박지원 글에 대해 ‘천 년의 역사 가운데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던 바’라고 극찬하였다.  연암의 뛰어난 문장력과 개성, 그리고 인간미가 숨김없이 드러나는 글이다.  

돌베개에 출간된 이 책은 조선 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집』을 완역한 것이다.

 3권으로 정리된 이 책에는 연암의 한시, 서간문, 비문, 서문, 발문, 소품문, 한문소설 등이 빠짐없이 수록돼 있다. 특히 198행에 이르는 장편 한시 ‘해인사’를 비롯,40여편의 한시는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 함께 읽은 연암 박지원... 

 

 연암 박지원의 작품 세계를 다채롭고 균형 있게 조감할 수 있도록 구성한 문학 선집. 김명호 교수가 우전 신호열 선생과 함께 번역한 <연암집>을 저본으로 하여 대표작 100편을 가려 뽑았다. 앞선 <연암집>이 학술적인 전문 번역을 추구했다면,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보다 문학적이고 대중적인 번역으로,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펴낸 책이다.
사상성보다는 문예성, 역사성보다는 현대성에 치중하여 수록작을 선정했다. 따라서 작가의 개성과 인간미가 진솔하게 드러나고, 인생의 보편적 주제를 다루며, 기발한 사유나 참신한 발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연암을 알고싶고, 연암의 글을 읽고 싶다면 이책을 제일 먼저 읽어봐라~~ 가독성 좋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실학자이자 문장가로 손꼽히는 연암 박지원의 산문 스무 편을 모아 자세히 해설한 책이다. 5년여 간 '연암강회(燕巖講會)'를 통해 대학원생들과 박지원의 글을 강독해온 지은이가 풍자문학과 파격적이고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만 알려진 연암의 정신세계와 작가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각 장은 연암의 글을 한글로 옮긴 전문을 먼저 보여준 다음, 차례대로 각 단락을 떼어 다시 읽고, 그에 관한 고유명사와 용어 등을 풀이하는 '주해', 연암이 그 글을 쓴 배경과 그의 당시 생각 등을 살펴보며 단락을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평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장의 말미마다 작품 전체에 대한 지은이와 당대 타 지식인들의 평가를 담은 '총평'을 덧붙였다 

 

 

 연암 박지원의 아들인 박종채가 쓴 박지원의 전기. 박종채는 4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초고를 집필했으며, 그후 몇 년에 걸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아버지 박지원을 후세에 제대로 전하기 위해 고심했던 박종채는, 이 책에서 아버지의 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만이 아니라 그 인간적 면모와 함께 목민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도 자세히 들려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박지원이 활동했던 18세기 영·정조 시대의 지성사와 사회사에 대한 풍부하고 생동감 넘치는 보고서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 

 

 

대문호 연암 박지원이 그의 가족과 벗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연암이 60세 되던 1796년(정조 20) 정월에 시작되어 이듬해 8월에 끝나는 이 편지들은, 서울대 박물관 소장 자료인 <연암선생 서간첩>에 실려있는 것으로 처음 번역되어 빛을 보는 글들이다.

이 책의 편지들은 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집>에 실려 있는 편지들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책 제목으로 쓰인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완전히 익지는 않았다."라는 그의 편지 구절에서 보여지듯 진솔하고 사적인, 그의 가족애가 묻어나는 글들인 것이다. 박지원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수 있는, 따뜻한 글들이다. 

  

   

 

 

 열하일기..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1737~1805)의 열하견문기.  열하일기는 《연암집(燕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팔촌 형님이던 정사(正使) 박명원(1725~1790)을 수행하는 자격으로 청으로 갔다. 공적인 소임이 없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연암은 북경 여행과 함께 전인미답의 열하 지방을 체험한 후 돌아온 즉시 열하일기 집필에 전념하여 이 작품을 완성한다. 이 책에는 시대착오적인 반청(反淸) 사상을 풍자하고 조선을 낙후시킨 양반 사대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등 현실 비판적인 내용과 신랄한 표현이 담겨 있다.1780년 6월, 압록강 국경을 건너 열하에 도착한 뒤 그 해 8월, 다시 연경에 돌아오기까지, 여행 기록은 물론 청조 문인 명사들과의 친교나 청나라의 문물 제도 등에 대한 느낌을 날짜 순으로 기록했다.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지리·풍속·습상(習尙)·고거(攷據)·토목·건축·선박·의학·인물·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문학·예술·고동(古董) 지리·천문·병사 등에 걸쳐 수록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상세히 기술되어있다.

수레나 선박의 활용과 벽돌의 사용, 지동설에 대한 중국 학자들과의 토론 등 청조의 번창한 문화와 문물을 본받을 것(북학·北學)을 주장,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기념비적 저작중 하나로 꼽히며 파격적 문장으로 국문학적으로는 영-정조(英-正祖) 연간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중요 저술로도 평가된다.

이 열하일기는 26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허생전, 호질 등도 실려 있다.

   

보리출판사의 열하일기. 번역자 리상호는 1911년 조선광문회에서 <연암전집> 가운데 <열하일기>만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과, 한학자 김택영이 1900년과 1916년에 출판한 연암집을 묶어 후손들이 출판한 〈연암전집〉,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열하일기>를 국역했다.  

돌베개의 열하일기. 5 년간의 공들인 번역과 현지답사, 500여 컷의 생생한 도판으로 되살린 열하일기의 진면목. 이 책의 역자 김혈조 선생은 연암 산문문학 연구에 일생을 매진한 전문 학자이다. 자신의 연구과제가 늘 연암 박지원의 산문문학이었기에, 책을 내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늘 열하일기는 그에게 있어 연구의 대상이었고, 고심처이기도 했다.

2007년 이전에 이미 열하일기는 대략 번역해 두었으나, 완역을 위해 옛 원고를 다듬고 번역하지 못한 부분을 번역하는 등 2007년 8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약 1년간 본격적으로 이 작업에 매진했다. 이 기간 동안 역자는 연구년 교수로서 중국 산동대학에 체류했는데, 꼬박 1년을 열하일기 번역에만 매달렸다.

  

그린비의 열하일기.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지식저장소'로 꼽히는 중국 기행집 <열하일기 熱河日記>를 새롭게 재구성했다. 씌어진 지 200년을 훌쩍 넘긴, 읽기에 수월할 리만은 없는 텍스트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판본을 만들고자 한 것.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저자 고미숙 외 두 사람이 함께 옮겼다.<열하일기>는 여정을 따라 가는 편년체 방식으로 쓰인 7편의 글들과, 여정과는 별도로 쓰인 기사체 글들이 공존하는 책이다. 이 때문에 연암의 여정과 의식의 흐름을 밀도 있게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책은 기존의 배치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편집으로 <열하일기>의 이해와 감정의 효율을 최대치로 올리려는 시도를 한다.
연암과 이국 친구들과의 길고 긴 밤샘 필담 부분은 희곡 형식으로 처리한 점도 눈에 띈다. 연암의 발자취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안내도, 그리고 시각적 요소에 비중을 크게 둔 편집은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열하일기>라는 '뜨겁고 생명력 넘치는' 텍스트에 진입하기 위한 문턱을 낮춰준다.

    

 

 

^^ 연암산문정독은  연암의 산문 작품을 번역한 책 중에서 가장 정밀하고 전문적인 책이다. 이 책은 정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독자층은 좀더 광범위하게 볼 수 있다. 연암 전문가를 넘어서서, 연암의 산문을 보다 깊이 있게 읽고자 하는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다섯 권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2권까지 출간...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의 산문 작품 22편을 뽑아, 원문을 교감(校勘)하고 번역·주석한 것이다. 연암 산문의 애호가(愛好家), 전문 연구자들이 좀더 정세하게 연암의 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역주(譯注)·고이(考異)·집평(輯評)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었다.

이해하기 힘든 구절에 대한 상세하고도 정밀한 학술적 주석을 가하여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전고(典故)의 원출처를 일일이 찾아 상세한 내용을 밝히는 방식을 취하였다. 매 작품마다 소단락을 나누어 분석하였는데, 번역문과 원문 모두에 주석을 달았다.

번역문의 경우 ‘역문풀이’라는 형식으로 단어나 문장의 뜻을 해석, 전고(典故) 등을 조사하여 밝혔고, 원문의 경우 ‘원문풀이’라는 형식으로 주석을 달아 인용된 원전의 문장을 찾아 일일이 적어 주었다. 또한 김택영, 박영철, 이재성 등 여러 사람의 평점 비평에 대해서도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제시하고, 주석을 달았다.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작품을 몇 번이고 퇴고하면서 글의 완성도를 높여 간 작가였다. 이 책에서 수행한 면밀한 이본 교감은 연암의 이런 퇴고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본들의 차이를 살피다 보면 연암이 글의 어떤 대목에서 이리저리 주저하며 생각에 골똘히 잠겨 글을 다듬고 표현을 고쳤는지, 어떤 대목에서 특히 마음이 흔들리고 고심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연암의 글을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자료이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 작품 33편을 뽑아, 원문을 교감(校勘)하고 번역·주석한 것이다. 『연암집』(燕巖集)의 알려진 모든 이본을 수합·대조하여 원문을 교감하였으며, 번역이 난해한 부분에 대한 기존 번역서의 번역문을 나란히 제시하여 한눈에 해당 구절의 동이(同異)를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산문의 원문에 표점을 붙여 번역문과 나란히 수록함으로써 서로 대조해 가며 읽을 수 있게 했고, 이본들을 자세히 교감하여 그 결과를 각주로 제시했으며, 번역의 동이(同異)를 밝혔고, 고사나 전거(典據)가 있을 경우 학문적인 견지에서 그 내용을 최대한 자세히 밝혀 주었다.

 

 

  

 

 ^^ 아직 이 경지까지 못 왔다.. 못 읽어봄..그러나 꼭 포함시키고 싶다..앞날을 기대하며...

 선귤당 이덕무가 연암 박지원의 기문 10편을 뽑아 비평을 하고 서문을 달아 엮어낸 비평집 <종북소선>에 대한 연구서이다. <종북소선>은 지금껏 박지원의 자찬 산문집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하지만 서울대 박희병 교수는 그와는 다른 주장을 제기한다. 박 교수의 연구 결과, <종북소선>은 이덕무가 직접 박지원의 글 중에서 기문을 가려 뽑고 비평을 붙여 엮어낸 자찬 비평서라는 것이다.

<종북소선>은 학계에 그리 널리 알려져 있는 책이 아니며, 본격적인 연구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 비평사와 정신사에서 대단히 주목해야 할 문제적 저작이다. 또한 문인 이덕무의 조선 시대 최고의 산문비평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귀중한 저작이다. 

 

선귤당 이덕무가 연암 박지원의 기문 10편을 뽑아 비평을 하고 서문을 달아 엮어낸 비평집 <종북소선>에 대한 연구서이다. 조선 시대 최고의 비평가 이덕무의 면모 그리고 연암 박지원과 선귤당 이덕무의 고도의 지적 대화를 정밀하게 구현해냈다.

<종북소선>은 지금껏 박지원의 자찬 산문집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하지만 서울대 박희병 교수는 그와는 다른 주장을 제기한다. 박 교수의 연구 결과, <종북소선>은 이덕무가 직접 박지원의 글 중에서 기문을 가려 뽑고 비평을 붙여 엮어낸 자찬 비평서라는 것이다. 이 책이 이덕무의 자찬 비평서라는 근거는 이 책에 자세히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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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삶을 새롭게 재조명한 책. 기존의 연암의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다룬 책들은 많았다. 그러나 박지원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왜 그가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연암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본 작품은 드물었다. 이 책은 주변의 인물들이 연암에게 미친 영향과 함께 연암이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을 세심하게 추적한다.

사실 연암은 십대 시절부터 우울증으로 인한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연암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잠 못 드는 밤이면, 시장을 오가며 수집한 풍문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김용관 저자는 연암이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상황과 18세기 조선의 사회상을 맞물려 살펴보고, 당시 집필했던 글들을 통해 연암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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