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람됨은 이러하다. 물소 이마에 칼 같은 눈썹, 초록빛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孤高)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내고, 권세 있는 자를 보면 일부러 더 멀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맞는 경우가 드물어 언제나 가난했다.”
“고명한 일에만 마음을 두고 세상일에는 무심하였으며, 사물의 명리(名理)를 종합하고 깊고 아득한 세계에 침잠하였다. 백세 이전의 사람들과 흉금을 트고, 그 뜻은 만 리를 넘어 날아다녔다 -박제가가 쓴 소전(小傳에서 자기자신을 소개한글..-
“젊은데도 불구하고 어른처럼 점잖습니다. 생각은 건전하고 심지가 굳으며 말은 명료합니다. 질박할 뿐 아니라 슬기가 뛰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수재입니다. -청장관 이덕무 평 -
그는 조선에서 문장이 매우 뛰어난 자이다. 그의 키는 작달막한데 굳세고 날카롭다. 그의 문장은 찬란한 별빛과 같고 조개가 뿜어내는 신기루 같으며 용궁의 물과 같다.” - 중국의 문인 우촌 이조원 평
외모는 털보에다 키가 매우 작았다. 위의 글은 박제가(朴齊家, 1750년~1805년)에 대한 평이다.
박제가(朴齊家, 1750년~1805년) 는 박평(朴坪)의 서자 ,서얼이지만 정조의 적자와서자를 구분않는 인재등용관방침으로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많은 저술을 했다.(정조는 재위 1년(1777) 서자들의 벼슬길 진출을 허용하는 『서류소통절목(庶類疏通節目)』을 반포하고 재위 3년(1779) 이덕무·박제가·유득공·서리수 등 4명의 서자를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에 특채)
조선후기의 정치가 ,실학자로 북학파의 핵심인물로 청나라의 문물수용과 중상주의 경제정책을 주장.
호는 초정, 정유, 위항도인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삼려대부 굴원등이 읊었던 시가집의 '초사'를 아껴 호를 '초정'이라함)
스승 박지원의 문하에서 실학을 연구, 이덕무,유득공,이서구,이희경등 실학자들의 벗. 특히 이덕무와는 절친
정조2년에 청나라에 사은사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따라가 청의 이조원, 반정균등과 교류후 '북학의' 저술 (연암은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해 자신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다고 하며 3일 동안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고 북학의 서문에서 칭찬하기도 했다).
글씨와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의 글씨는 추사체의 선구적역할-추사는 박제가에게 학문을 배웠다.)
돌베개에서 출간된 박제가의 <정유각집> 상·중·하 3책은 <북학의>를 제외한 초정 박제가의 시와산문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시1721수, 산문123편을 상중하로 나눠 실었다. 시문집명으로 쓰인 '정유각'은 박제가의 당호. '정유'는 소나무의 별칭인데, 정조가 박제가 집 마당의 소나무를 칭찬하고 이를 '어애송(御愛松)'이라 명명한 데서 연유한다.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은
정민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한국한문학 전공
이승수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조교수. 한국한문학 전공.
박수밀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고전문학 전공.
박종훈 전남대학교 호남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한문학 전공.
이홍식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고전문학 전공.
황인건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강사. 고전문학 전공.
박동주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강사. 고전문학 전공
6년간 정성을 들여 출간된 책이니 번역자들의 노고에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그의 생애, 학문, 사상, 문예를 살펴보자.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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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각집』 서문 ㅣ 이덕무
『정유각집』 서문 ㅣ 반정균
시집 1
시집 2
『정유각집』 해제
박제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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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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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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