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와 형식을 중시하던 조선의 유학자들은 정해진 형식이 없는 소설문학을  

일반 평민이나 아녀자들이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는 잡스러운 글로 치부하며 시문학에 비해 경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시대 소설의 주요 독자층은 왕실 사람들이었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궁궐내 사람들에게 ‘소설’은 답답한 생활을 잠시 잊는 최고의 재미거리였으며,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바깥세상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했다.   

낙선재에는 궁중 여인들이 즐겨 읽던 한글 고전소설이 보관돼 있었다.

  (1847년 헌종이 각별히 아끼던 후궁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곳으로  김씨가 죽은 후에 한동안 고종의 편전(便殿)으로 사용됐고,  1926년 순종이 죽은 뒤부터는 계속 순종의 계비(繼妃)에 의해 사용돼왔다.) 

조선 왕실의 소설, 일명 ‘낙선재본’이라고 불린 이 소설들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직계 자손인 이해청이  낙선재에 드나들면서 접한 뒤 가람 이병기에게 귀띔해 연구자들 사이에 알려졌고,  김태준의 <고전소설사>(1933)에도 일부 소개됐다.  광복 이후 소설의 행방이 묘연했다가 1965년 창경궁 장서각에서 정병욱 서울대 교수가 발견하고 이듬해 학계에 발표했다.  

일부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83종 2000여 책의 낙선재본 소설은 모두 한글필사본으로 번역소설이 700여 책이며 창작소설이 1300여 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남녀 간의 사랑, 영웅의 일대기, 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내용으로 이뤄졌다.
대부분 작품이 당시의 획기적인 사회의식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돼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보관하다가  그간 출판요구가 많았던 낙선재본 소설을 현대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기획해 조선 왕실의 소설’ 시리즈를 내놓았다.  

낙선재본 소설의 마지막 독자는 순조의 딸인 덕온 공주의 증외손녀인 윤백영 노파다.  <징세비태록> 등 몇 권의 소설에 자신의 해제를 단정한 한글 서예로 붙여 놓기도 한 윤 노파는  낙선재본 발견 당시인 1960년대의 인터뷰(1966년 8월 25일자 중앙일보)에서 “<춘향전>은 유식치 못하고 깊은 뜻이 없고 잡되다. 조선 왕실의 소설은 문자가 좋고 윤곽이 크고 감정 표현이 풍부하며 일거일동을 섬세하게 그려 읽을수록 끌려든다”고 말했다.  

이 작품들은 유식하지만 출세하지 못한 선비들이 생계 수단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소설뿐만 아니라 중국소설도 많이 번역됐다. 이들 작품은 중국 역사를 교양 수준으로 섭렵할 수 있게 해 준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등 4명이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현대 어휘로 풀어쓰고 주석을 달았다.   

낙선재본 전문가인 임 교수는 “민간이 읽었던 홍길동전이나 춘향전처럼 ‘전’으로 끝나는 소설과 달리 왕실에서는 이념 지향적이고 가문 의식이 뚜렷한 ‘록’자류 소설을 읽었다” “낯선 중국 고사를 인용하는 등 까다로운 부분이 많아서 한 작품을 읽는데 약 6개월 걸린다”면서 “번역 과정에서도 고어의 맛을 살리면서 현대어로 바꾸는 게 무척 힘들었다”"한국소설만 모두 현대어로 번역하는 데도 30년은 걸릴 텐데 우선 앞으로 한 10년 동안 흥미로운 작품 순으로 번역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어본과 함께 원문 이미지와 함께 원문의 어휘를 그대로 사용하고 주석을 붙인 영인ㆍ교주본을  동시에 출간했다. 

교주본이 현대어본보다 판형이 크다. 개인적으로 교주본 판형이 더 맘에 들더라. 책 디자인도 깔끔한게 예쁘다.

현재 4번째책까지 출간되었고 2011년에는 화씨 집안의 처첩 간의 갈등을 다루는 가정소설인 '화문록'을 출간할 예정이다.


                                                                                                                                                  
'                                       그 시리즈 첫번째책으로  

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소설로 분량이 비교적 짧은 '낙성비룡(洛城飛龍) ', '문장풍류삼대록(文章風流三代錄)', '징세비태록(懲世否泰錄)'을 한 권으로 묶었다 

 낙성비룡'은  어쩌면 실리와 기회를 쫓으며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뒤통수를 강타할 인물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이경모’는 미련할 정도로 참을성을 가진 사람으로 과거와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닌 즐기는 ‘진짜 공부’를 한다. 우정과 사랑, 기본적인 예의를 중시한 그는 실리만 좇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할 예정이다.과거에 장원급제해 입신 후에도 겸손하게 선비의 자세를 잃지 않는 인물을 그렸다.

'문장풍류삼대록'은 중국 송대의 유명한 시인이자 문장가인 소동파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혼인 전후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예나 지금이나 평생의 배우자를 구하는 데에는 여간 깐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동파의 조카 소원의 황당한 혼인담은 흥미롭다.

'징세비태록'은 청나라를 배경으로 충신과 간신 간의 대립과 전쟁, 사랑 등을 묘사했다.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것은 조선 후기 청나라를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반영한 것으로 당시 소설로는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조선 왕실의 소설' 시리즈. <태원지>는 그 두 번째 책으로,  

오랑캐의 원나라를 물리치고 천하를 되찾고자 하는 임성 일행이 바닷길에 나선 후 겪게 되는 모험담이다. 조선에서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서 중국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해양판타지로
천명을 받은 ‘임성’이 자신을 따르는 호걸들과 함께 조선을 찾아가다가 풍랑을 만나 대양을 표류하면서 여러 섬들을 탐험하고, 온갖 요괴들을 물리쳐 고난을 극복한 후, 신대륙 태원에 도착해 통일을 이루고 건국하는 이야기다.  


  

 

 세번째 책으로 영이록은
 재상가의 귀한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서른이 되도록 바보 취급을 받던 주인공이 어느 날 하늘의 기밀이 담긴 천서(天書)를 공부한 뒤 신기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바보에서 신선으로 환골탈태한 주인공이 행하는 갖가지 이적들은, 결국 지상세계의 길흉화복이 모두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세계관을 전한다.

하늘에는 신선이 있고 지상에는 재상이 있으니
천상천하에 그 귀함이 다를 바가 없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행색이 변변치 못해 바보 취급을 당하던 손기는 어느 날 빼어난 재상인 손아랫동서로부터 크게 모욕을 당한 후 집을 나가 깊은 산중에 있는 도관을 찾는다. 그곳에서 하늘의 기밀이 담긴 천서(天書) 세 권을 공부하고 영이(靈異)로운 능력을 지니게 되는데….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 손기는 더 이상 바보사위가 아닌 지상세계 온갖 요물을 굴복시키는 능력자 손 천사(天使)로 거듭난다.

 

네번째 책으로 낙천등운은 


 집안이 몰락하면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사창가로 숨어 들어간 왕석작은 포주의 양아들 노릇을 하던 중 동예아를 만난다. 원래 양가집 처자인 동예아는 돈이 궁했던 삼촌 때문에 처음에는 팔리다시피 왕석작과 맺어진다.

이들은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랑을 지켜내고 '낙천등운'이란 제목처럼 나락을 벗어나 청운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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