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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국가 -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을 '위기의 국가'라고 정의했지만, 두 명의 저자가 논하는 것은 포스트 베스트팔렌 체제라고 부르는 근대국민국가 모델의 붕괴이자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는 국가가 가지고 있던 포괄적인 정치적 권한(집행의 권한) 축소와 국제적 자본의 권력 확대(하지만 이윤 추구의 논리와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는 권력) 상황에서 20세기에 이룩했던 복지 사회 모델이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 20세기 동안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면서도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모델은 복지국가 모델이었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변혁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20세기 중반까지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복지 국가 합의는 빠르게 붕괴되었고, 국가는 다시 간섭과 비효율의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업들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국가의 기능 축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노동 시장을 경직시키거나,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반하는 규제(환경, 공중 보건 관련된 규제들이 결국 다 이런 것 아니겠는가)에 대해서는 철폐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치고 국가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저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마누엘 카스텔의 '흐름들의 공간'이라는 말처럼, 국제적 자본은 더 이상 국가에 종속되지 않고 단지 '필요한 경우'에 국경을 지키는 행위자가 된 이상, 더 이상 국가는 그들과의 협상에서 '갑'의 위치에 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저자들이 이러한 위기를 경제적 측면에서 더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지는 않고, 이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의 근원에 경제 논리가 있음은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으므로, 관심 있는 독자라면 자세한 내용을 더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나아가 '근대'라는 것 자체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좀 더 추상적인 논의도 펼친다. 그것을 클레의 작품에 나오는 천사처럼 외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근대가 약속했던(혹은 보장하기로 조건지었던) 것들의 회복을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하는지, 두 저자의 입장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논의들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의 관점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현대 사회의 위기 담론들에 대해 긴박함을 느끼면서도 피로감을 함께 느끼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서 논의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