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사라지는 사회 - 한국의 디지털 아노미 현상
이정춘 지음 / 청림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 이상 '이것이 디지털 미디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의미 없을 만큼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화 된 이후, 수 많은 '디지털 비관론'과 '디지털 낙관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 책도 '한국의 디지털 아노미 현상'이라는 부제를 들고 나온만큼 어느 정도는 디지털 비관론의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한국 사회의 변화가 우려스러운 미디어 학자의 시선이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첫 부분은 다소 몰입감 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뒤로 갈수록 그냥 저자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이런 저런 촌평이 담겨 있을 뿐, '생각이 사라지는 사회' 라든지, '디지털 아노미'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물론 저자의 오랜 독일 유학 경험에서 나오는 한국 사회와 독일 사회의 비교 부분에서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책이 최신판인만큼 세월호 참사라든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같은 최근의 시사 이슈를 접목한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솔직히 필자가 '새로 얻은' 내용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논의들만이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5부의 '아버지 없이 살다' 장에 나오는 저자의 가족에 대한 시선은 다소 낡은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결손가정'에 대한 언급에서 불편함이 정점을 찍었다). 독일과 한국 사회의 비교 부분도 옥석을 굳이 가리자면 '선진국은 이런데, 한국은 아직 멀었다' 식의 지루한 논의가 반복되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저자가 독일에서 오랜 기간 공부했으니 그 준거집단이 단지 독일일 뿐.

 

물론 이런 류의 담론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필자보다 좀 더 이 책이 값진 것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디지털 낙관론이나 비관론에 대해 좀 더 깊게 탐구하고자 한다면, 저자가 인용하는 슈피처 교수나 니콜라스 카의 책을 직접 읽어보고, 같은 맥락에서 매클루언의 글도 읽어보고, 이 문제를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좀 더 신선하게 정리한 <<디지털 디스커넥트>>라는 책을 대신 추천하고 싶다(물론 이 책에 관해서, 저자의 정치적 입장이 뚜렷하기에 독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디지털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들에 대한 정리 부분도 더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기의 국가 -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을 '위기의 국가'라고 정의했지만, 두 명의 저자가 논하는 것은 포스트 베스트팔렌 체제라고 부르는 근대국민국가 모델의 붕괴이자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는 국가가 가지고 있던 포괄적인 정치적 권한(집행의 권한) 축소와 국제적 자본의 권력 확대(하지만 이윤 추구의 논리와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는 권력) 상황에서 20세기에 이룩했던 복지 사회 모델이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 20세기 동안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면서도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모델은 복지국가 모델이었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변혁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20세기 중반까지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복지 국가 합의는 빠르게 붕괴되었고, 국가는 다시 간섭과 비효율의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업들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국가의 기능 축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노동 시장을 경직시키거나,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반하는 규제(환경, 공중 보건 관련된 규제들이 결국 다 이런 것 아니겠는가)에 대해서는 철폐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치고 국가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저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마누엘 카스텔의 '흐름들의 공간'이라는 말처럼, 국제적 자본은 더 이상 국가에 종속되지 않고 단지 '필요한 경우'에 국경을 지키는 행위자가 된 이상, 더 이상 국가는 그들과의 협상에서 '갑'의 위치에 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저자들이 이러한 위기를 경제적 측면에서 더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지는 않고, 이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의 근원에 경제 논리가 있음은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으므로, 관심 있는 독자라면 자세한 내용을 더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나아가 '근대'라는 것 자체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좀 더 추상적인 논의도 펼친다. 그것을 클레의 작품에 나오는 천사처럼 외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근대가 약속했던(혹은 보장하기로 조건지었던) 것들의 회복을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하는지, 두 저자의 입장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논의들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의 관점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현대 사회의 위기 담론들에 대해 긴박함을 느끼면서도 피로감을 함께 느끼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서 논의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평불만도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서 떠나가지를 않는다. 과연 우리 세대는 더 이상 `더 나은 내일`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인지 되묻게 되었다. 오랜만에 발견한 `내가 살아 숨 쉬는 사회`의 이야기를 해 주는 사회학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굴의 시대 -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무거운 이야기들을 담담하지만 때로는 비장한 어조로 풀어나갔고, 앞으로 계속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써 가슴 한 구석에 무거움과 불편함을 덜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불편하게 느껴질지언정, 이 책에 담긴 날카로운 이야기들이 진실의 조각을 담고 때문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이 사람을 죽인다 - 의사.약사.제약회사가 숨기는 약의 비밀
레이 스트랜드 지음, 이명신 옮김, 박태균 감수 / 웅진리빙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고르려고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입니다. 합법적으로 처방되고 있는 약물에도 부작용이 있다는 것은 평소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이고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약은 먹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아서 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은 대부분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FDA에 사용 승인이 나서 환자들에게 처방되다가 장애나 심각한 부작용 및 사망의 폐해를 초래한 약물 케이스들을 설명하고, 아울러 여러 가지 약들을 혼합해서 복용할 경우 약물 간 상호작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생기는 역효과라든지, 약품과 각종 식품 및 영양소와의 상호작용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유용한 내용들을 설명해줍니다. 수많은 신약들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 제약회사와, 신약으로 치료의 희망을 보고 있는 환자들 양측으로부터 약물의 빠른 승인 압력을 받은 FDA가 처한 전형적인 규제기구의 딜레마 해결 과정을 낱낱이 폭로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 딜레마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자도 이에 대해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약물의 검사 및 규제 인력은 부족한 실정이고, 저자가 표면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약회사가 거대 자본으로 성장함에 따라 그들의 입김은 더 강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비자의 올바른 선택 문제로 문제 해결의 방법이 환원되는 느낌인데,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이런 책을 통해서 약물 부작용에 더 경각심을 가지고, 약물 오남용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기는 하겠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도 많은 것 같은데 기회 되면 그것들도 읽어보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