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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노래하는 백골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7
오스틴 프리맨 지음, 김종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2월
평점 :
도서추리(처음부터 범인이 밝혀진 상태에서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고 범인이 잡히는지 그 과정이 중점인 추리소설)의 창시자이자 최초의 법의학자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쓴 오스틴 프리먼의 단편집 <노래하는 백골>을 읽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병렬읽기(이책 저책 잡다하게 읽음)를 하므로 이 단편집 읽으며 링컨 라임 시리즈 10권인 <킬룸>도 읽었는데요. 링컨 라임 시리즈가 손다이크 박사에게 빚진 바가 많지 않나 싶었어요.
기술적으론 엄청 차이나지만
손다이크 박사의 수사 방법이나 평소 습관이 링컨 라임과 많이 겹치더라고요.
미세먼지들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분석하는 거나
(링컨 라임이 미량 증거를 추출해 가스크로마토그래피로 분석하는 거 생각남 ㅋ)
사실로 확인된 것만 믿는다거나
실제로 조사해 확인하기 전까진 확신하지 않는다거나...
제일 후덜덜 했던 건 단편 <전과자>에서 살짝 나온 손다이크의 습관이었어요.
낙타를 확인하러 동물원에 가서는
동물에게서 빠진 털이며 새의 깃털 같은 것이 눈에 띄면 주의깊게 집어올려 저마다 다른 종이에 싸서 뭐라고 써넣은 다음 녹색 트렁크 속에 넣었다. 타조우리를 떠나면서 그는 말했다.
"이런 것들이 언제 어느 때 어떤 일에 쓰이게 될지 모른다네. 이를테면 여기 화식조(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지역에서식 하는 날지
못하는 몇 종의 대형 조류)의 작은 깃털과 큰 사슴의 털이 있는데, 이 두 가지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어떤 범죄의 비밀을 폭로하고
죄없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도 가끔 있거든. 그런 일이 전에도 몇 번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네."
"그런 건 많이 모으고 있잖은가?" 돌아오며 나는 말했다.
"많이 모았지. 아마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컬렉션일 걸세. 그 밖에도 법의학에 관계있는 것,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작은 것,
이를테면 여러 지방의 특수한 공장이나 제작소에서 채집한 먼지, 흙, 식품, 약품 등에 관한 컬렉션은 세계에서도 드물 걸세."
설정상 링컨 라임도 틈만 나면 잡다한 걸 수집해 각종 컬렉션을 만들어뒀습니다. <킬룸>에서는 링컨 라임이 수사 때문에 바하마에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남들은 잡지를 읽거나 바하마 관광지나 역사에 대한 책을 보는데, 익숙치 않은 지역에 가는 거니까 지리를 알아야 한다면서 바하마의 지질, 식물, 동물상에 대한 기본 지식을 읽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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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단편들을 살펴보면....(스포무)
1. 오스카 브러트스키 사건
거래할 다이아몬드를 가득 들고 기차를 타려던 브러트스키는 길을 헤매다가 범죄자 사일러스 히클러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과연 브러트스키의 운명은?
2. 노래하는 백골
외딴 등대로 교대하러 홀로 배를 타고 간 남자. 그곳에서 과거에 자신이 밀고한 남자와 마주치는데...
"아주 흥미 있는 민화로구먼. 훌륭한 교훈이 담겨 있네. 우리가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우리 주변의 생명 없는 것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스스로의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말이지?"
3. 계획된 살인 사건
1등석에 올라탄 펜베리는 도저히 1등석을 이용할 만하지 않은 남자와 같은 칸에 오르게 된다. 안 그래도 불쾌한데 자신을 노려보는 이 후줄근한 남자... 그 남자는 누구이고 왜 펜베리를 협박하는 걸까? 경찰견에 얽힌 터무니없는 미신을 타파한 이야기.
4. 전과자
범죄 현장 유리창에 선명하게 찍힌 다섯 손가락 지문... 무죄를 호소하며 손다이크 박사를 찾아온 전과자. 손다이크는 어떻게 그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인가...
"'증거로서의 사실의 가치는 조사해 보기 전까지는 미지수'라는 것일세. 이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지만, 다른 자명한 일과 마찬가지로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치기 쉽지."
5. 파랑 스팽글
기차에서 둔기에 머리를 얻어맞고 사망한 여자. 그 여자를 모델로 썼던 화가. 동생의 무죄를 주장하며 손다이크를 찾아온 화가의 형.... 손다이크의 박사가 파악한 진상은...???
6. 어느 퇴락한 신사의 로맨스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간 한 중년의 신사. 그곳에서 과거의 연인을 만난다. 이 신사는 왜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간 걸까??
진심 후덜덜한 미량 증거물 분석. 진심 링컨 라임 보는 줄...
사연이 가슴 아팠습니다.
"인생의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나면 번쩍이는 도금 같은 건 금세 떨어지고 마니까요. 중년이 되면 도금이 완전히 벗겨진다고까지는 말 못하겠지만 어쨌든 상당히 보기 흉한 모습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지요."
7. 모아브어 암호
별로 재미없었어요.
8. 버너비 사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젊은 부인과 행복하게 사는 버너비, 부인이 직접 조리한 음식을 같이 먹는데 혼자만 중독 증상을 보인다. 주치의도 손을 쓸 수 없어 손다이크 박사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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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습니다. 범인을 이미 아는 도서추리물이라고는 하나... 무슨 보고서 쓰듯, 범죄 과정 나오고 수사과정(저비스 -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 겸 의사, 왓슨 역할 - 의 기록)이 나오는 형식으로 소설을 쓴 게 서스펜스도 없고... 흥미롭긴 하나 지루합니다.
해설에 나오는 이 평가가 넘 정확합니다.
"독자가 '총명'해졌다고 하여 두려움, 흥분, 극적인 대단원을 희생시키고 대신 '눈물 없는 과학'으로만 작품을 채웠다고 개탄했다."
게다가 너무 다 완벽하고 실수도 안 하는 손다이크 박사가.. 무매력이더라고요. 작가의 페르소나처럼(작가 자신이 다방면에 관심과 지식이 많고 아주 팔방미인이었더군요) 뭐든 잘하는 손다이크 박사가 인상적이긴 한데... 단편이라 설정이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셜록처럼 괴팍하든가, 링컨 라임처럼 냉소적이든가 아님 유머라도 뛰어나든가 뭔가 괴벽 같은 게 있어야 머리에 탁 남을텐데... 재미없는 모범생 같아요.
그래도 개인적으론 링컨 라임 할애비를 보는 것 같은 부분들은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