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할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죽었다.
호명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병명을 알게 되자마자 병은 금세 깊어졌다. 이모는 당신의 아버지처럼 당신이 느닷없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알았지만, 죽기 전에 내게 꼭 말해줘야 할 것은 없었다. 이모가 아는 것은 나도 알았고, 내가 모르는 것은 이모도 몰랐으니까.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고서 이모는 말의 시작과 끝마다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천만 번은 했을 것이다. 세상 누구도 나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호흡이 잦아들기 전에는 입 모양만으로 내게 잘 지내라고 말했다. 나는 잘 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123~124p.)

그때 밖은 파랗고 할아버지의 몸은 검었다. 파랗고 검은 것은 외롭다. 외로운 색이다. 어느 새벽에, 아픈 이모가 꼭 할아버지처럼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잠결에 그 장면을 보고 엉엉 울었다. 이모도 가겠구나. 할아버지처럼 가겠구나. 내 안에서 그런 소리가 왕왕 울렸다. 느닷없이 통곡하는 나를 보고도 이모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내 등을 가만히 끌어주며 중얼거렸다.
괜찮다. 아가야,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갈 거야.

근데 그런 걸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나, 이모.
지나가지 못하고 고이는데. 고유하게 거기 고여 있는데.

(124~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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