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R네 집에서 송년 파티. 시가를 나눠 피웠다. 쿠바산과 마닐라산, 그 밖에 또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나라들의 담배들을 비교하는 토론. 나보고도 의견을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전문가들이 무게를 있는 대로 잡으며 큼지막한 시가를 칼로 자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항문이 똥을 자르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두 경우 모두, 열중해 있는 얼굴 표정은 똑같다.(189p.)
두 아이의 이 보드라운 살갗 아래 감춰진 단단한 살 속엔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다. 자연 상태의 그 에너지를 내가 조종하고 있는 것 같은 뿌듯함. 앞으론 그들의 몸이 그토록 튼실할 순 없을 것이다. 또 그들 얼굴의 표정도 그토록 선명할 순 없겠지. 눈의 흰자도 그토록 하얄 순 없을 테고. 귀의 모양도 그처럼 그린 듯이 완벽할 수 없을 것이고, 피부의 세포도 그렇게 촘촘히 짜여 있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극사실주의 속에서 태어나 점점 더 느슨해져서 아주 대략적인 점묘법으로 끝나 결국엔 추상의 먼지로 날아가버린다.(215p.)
열다섯 살 때 나도 해변에서 내 또래 남재애들을 상대로 이두박근과 복근 시합을 벌였었다. 열여덟 살인가 스무살 때는 수영복 아래쪽이 얼마나 불룩한지를 자랑했다. 서른 살, 마흔 살이 되면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비교한다(대머리에겐 불행이다). 쉰 살 때는 배(배가 안나와야 한다), 예순 살 땐 치아(빠진 게 없어야 한다). 이제 소위 원로라 불리는 늙은 악어들의 모임에선 등, 걸음걸이, 입을 닦는 방식, 일어나는 방식, 외투를 걸치는 방식을 비교한다. 한마디로 나이, 나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아무개가 나보다 훨씬 늙어 보이지, 안 그래? (217p.)
방금 전 바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다가, 파스티스를 몇 잔째 마시고 있던 옆의 남자에게서 들은 농담이다. 여자는 안 됩니다. 여자도, 커피도, 담배도, 술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을까요? 의사의 대답.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시간이 좀더 길게 느껴지긴 하겠죠. (309p.)
긁는 즐거움. 짜릿한 쾌감이 점점 커지다가 결국 시원함으로 끝나는 것 뿐 아니라, 특히 가려운 지점을 1밀리미터 오차도 없이 정확히 찾아냈을 때의 희열이란. 그거야말로 ‘자신을 잘 이해하는‘것 아닐까. 긁어야 할 지점을 옆 사람에게 정확히 가리켜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은 날 만족시킬 수 없다. 누가하든 목표 지점을 살짝 비껴가기 일쑤다. (3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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