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할수록 사람들은 그 불안의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그래야 문제의 내용은 물론 해결책도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착하거나 혹은 비겁한 이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미래는 원래 불안한 거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무한 지속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해 1년 365일을 만든 것이다.

 무한한 미래를 1년 단위로 끊어 놓으면, 미래가 매년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365일이 지나면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무섭지 않다. 영원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는 인류가 시간의 공포와 불안에서 풀려나기 위해 지난 수만 년간 고안해낸 마법이다. 그래서 새해를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즐거운 결심을 해야한다. 새해 첫날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계획하거나 차가운 바닷물에 다이빙하지 말자는 거다. 제발 나를 괴롭히며 싸워 이기려고 달려들지 말자. 이미 충분히 많이 싸웠다. 나 자신은 절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설득해야 할 아주 착하고 여린 친구다.

 '새해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중략)

 '내가 읽고 싶은 책만 읽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남이 시켜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만나지 않는다!'

 

- '제발 나 자신과 싸우지 마라!' 中 (p.64~65)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구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갑수의 물건 철학은 다르다. 도구에 헌신하고 도구를 위해 희생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일상은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해지느냐고 내가 물었다. (중략)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는 것처럼 거짓말은 없는 것 같아. 자신이 행복한가, 불행한가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부터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거야. 시간, 공간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불행해질 수 밖에 없어. 시간, 공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지. 물건에 헌신하다 보면 내가 사라지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거야. 빠지고 몰입하는 거라고. '자아'라는 주체로 서는게 아니라 대상에 함몰되는 거지. 돈이나 밥이 아닌 다른 것에 함몰되는 것은 참 근사한 거야."

 

- '남자의 물건을 꺼내면 인생이 살 만해진다-김갑수의 커피 그라인더, 윤광준의 모자, 김정운의 만년필' 中 (p.138~139)

 

 

 

 그래서 보다 구체적으로, 부인이 불평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그 신중하기 그지없는 신영복은 "가까운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참 좋은 사람이라 하겠지만, 자신의 부인은 절대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수줍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감옥에 있을 때도 꼭 미운 사람이 하나는 있어요. 꼭, 하여튼. 그래서 그 친구 만기 날짜만 기다리는 거죠. 그러다가 자기 징역이 다 간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 사람이 출소하잖아요? 나가면 그 날 저녁은 참 행복해요. 앓던 이 빠진 듯이 시원하다, 그런 마음이에요. 그런데 며칠 있으면 또 그런 사람이 생겨나요. 꼴보기 싫은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 나가기를 또 기다리고....  그러면서 깨달았지요. 그 사람에게 물론 결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이 환경이 그런 대상을 필요로 하는구나, 라고요."

 신영복 자신에게 아내가 미운 사람인 건지, 아내에게 자신이 미운 사람인 건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일처제라는 환경이 아내는 남편의 약점을, 남편은 아내의 약점을 찾아내게 하는구나, 뭐 그런 식으로 나 편하게 이해했다. 아내에게 끊임없이 약점을 지적당하는 나로서는 참 많이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 '신영복의 벼루' 中 (p.190~191)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중심언어egocentric speech'라고 한다. 자신의 내면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수단이 박탈된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도덕적 팩임이 큰 사람에게 많ㅎ이 나타난다ㅏ. 이들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필요하다. 그림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어릴 때부터 익명성을 포기하고 산 안성기에게 그림은 아주 중요한 내면의 표현 수단이다.

 - '안성기의 스케치북' 中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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