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납치 사건 그림책이 참 좋아 30
김고은 글.그림 / 책읽는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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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고은 작가의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은 아주 깜찍한 그림책이다.

 

  제목부터 표지까지, 첫 대면부터 범상찮다. 엄마, 아빠, 아이 세 식구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에 꽁꽁 묶여 하늘로 끌려올라가고 있다. 제목을 보아하니 그 세 식구는 동아줄에 이끌려 어디론가 납치되어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아빠는 묶인 채로 발버둥 치고 있고, 엄마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두 손을 꼭 모으고 빌고 있다. 그 위로 태양이 이들을 비웃듯 이글거린다. 표지 가득 하늘만 보이는데도 바다가 생각나니 이 두 사람만 없다면 바캉스 배경이 따로 없다. 오로지 주인공 만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에 대고 ”, 이 납치사건엔 모종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이야기 또한 기가 막힌다.

  열심히 일하러 가던 아빠, 엄마는 각각 자신의 가방과 치마폭에 납치를 당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 떨어뜨려진 엄마와아빠와 나는 집도, 회사도, 학교도 다 잊고 신나게 놀았는데, 아무 일도 없더란다. 그렇게 끝!

  그런데 이 황당한 납치사건이 너무나 위트 있게 그려졌다. 아침 730분 "일해역" 3-1 승강장에서 만원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아빠 "전일만"씨는 사람들에 떠밀려 지하철을 못 탄다. 첫 등장부터 누락, 낙오된 아빠는 가방과 함께 승강장에 널브러져 있는데  그런 아빠를 아빠의 가방이 덥석 삼켜버린다. 아빠는 가방에 잡아먹혀 버린 것일까.

 

  체통 없이 삼켜진 것으로도 모자라 아빠는 그림책의 주인공 자리도 빼앗긴다. 다음 페이지부터는 가방이 주인공이다. 그 아빠의 가방은 홀로 기차역으로 가 아빠의 지갑에서 꺼낸 아빠 돈으로기차표를 끊고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산다. 아빠는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심하게 아빠 가방의 연식을 추리해 본다. 기차여행에 삶은 달걀과 사이다, 가방의 연식이 아빠와 동년배인게 틀림없군. 그렇게 납치의 긴장감이 잠시 풀어진다.

  

  여기까지도 나는 우스워 죽을 판이었는데, 그 가방이란 놈이 기차에 올라타 느긋하게 달걀과 사이다를 까먹는 동안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보고 빵 터져버렸다. 아빠 대신 주연을 꿰 찬 가방의 위상에 굴하지 않고 일품 연기력을 보여주는 그 앞좌석녀는 코가 빠지기 일보직전이고, 내가 어쩌자고 이런 험한 일을 겪는가, 내가 오늘 살아나갈 수는 있을까 싶은 얼굴이다.

 

 

  이런 코믹한 장면이 이어지다 -엄마는 치마폭에 싸여서, 아이는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숫자들이 풍선의 공기처럼 빠져나가면서- 결국 세 식구는 무인도에서 만나게 된다. (가방은 무인도에서 아빠를 뱉어냈는데, 애초에 소화를 시킬 생각은 아니었던 듯하다.)

  옷도 다 벗어 던지고 신나게 하루를 논다. 어쩔 것인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져 버렸는걸. 짐짓 어쩔 수 없음을 가장한 채 오랜만에 휴가를 보내게 된 세 사람. 신나게 놀고 해가 지는 해변에 누워 아이는 중얼거린다. “그래도 별일 없었어요.”라고.

 

  그렇다. 별일 없는 것이다. 하루쯤 쉬어도.

  독자들도 멈춰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나도 누가 좀 납치해줬으면.

 

  그런데 뒷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가방이랑 치마는 다시 이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을까? 그래서 그들은 꿈같은 하루의 휴가를 가끔 기억하여 다시 그 쳇바퀴 도는 전쟁 같은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왠지 그렇게 뒷이야기를 상상하면 비극인 것 같다. 그런 상상은 마지막 페이지의 독백 그래도 별일 없었어요.”의 여운을 꿀꺽 삼켜버린다. 그 독백의 여운이 계속되려면 그들은 그만큼 계속 쉬어야 한다. 질리도록, 걱정되도록 그렇게 오래도록 그래서 다시 일상에 오더라도 다시는 예전처럼 복잡하게 살지 못하도록, 가방 따위가 제 주인의 딱함을 못 본채 하지 못해 꿀꺽 삼켜버리는 하극상 따위는 생겨나지 못하도록, 오래오래 그렇게 쉬어야 할 것 같다.

 

  살다보니 그리고 자식을 키우다 보니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조금 멈칫거리게 된다. 오래 생각하면 정말 그런 답을 얻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하기가 귀찮다, 어렵다, 힘들다. 그리고 정말 그런 답이 나오면 어쩌나. 깊고 깊은 고찰 속에 얻은 결론이 그렇게 나와 버린다면. 그렇게 살아도 아무 별일 없다고 아니, 그렇게 살아야만 한 번 사는 인생을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 결론이 나와 버린다면, 정말 그렇게 살 자신이 없는 나는 정말이지 그런 결론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 가족에게도 하극상의 가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의가 아니라 고의가, 의지가 아니라 핑계가, 그리고 나를 납치해 줄 누군가가 말이다.

 

  누군가에게 이 그림책은 그렇게 살라는 실천의 격려이며 응원이겠지만, 나에게 이 그림책은 다른 의미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다들 생각하고, 결론내리고, 그 결론을 실천하기까지의 용기를 이끌어 내는 일련의 과정을 힘들어 한다고, 그래서 나처럼 몇몇은 그걸 덮어두고 잠시 잠깐의 멈칫으로만 경험하며 살 뿐이라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생각을 하고, 누군가는 범상치 않게 실천으로 나아가도, 남아있는 평범한 아빠, 엄마는 그저 누군가 납치해주지 않는다면 그냥 그런 삶을 산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그런 위로다.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담보로 사고의 나태함을 얻어낸 어리석은 인간 군상을 위한 위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변명에 얽매여 시간을 향유할 수 없게 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 바고 그런 나를 위한 위로. 그러고 보면 그림책은 늘 나를 위로해 준다. 그러고보니 나는 또 좋은 친구를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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