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당신의 인생을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은 책‘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듯 여기서 그만 끝내겠다며, 평생 문학을 사랑해 온 분답게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그를 만다다 中>
- P58

죽음이 삶에 대해 갖는 열등의식, 마치 늙음이 젊음에 대해 느끼는 그것처럼.

<귀천을 하루 앞둔 날 中>
- P69

"오늘 밤은 잠들지 않으려고 해요. 생의 마지막 밤을 잠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모든 순간을 깨어서 느껴보려고 해요. 지상의 모든 순간, 모든 마지막을."

<귀천을 하루 앞둔 날 中>
- P72

죽을 때가 오면 그냥 죽어라.
죽음 속에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없다.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다 中>
- P76

조금 일찍 가더라도 사뿐히 떨어지자. 매달린다고 매달려질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니.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다 中>


- P102

그의 죽음은 잘 짜인 한 편의 각본이자 매끈한 연출 같았습니다. 단 그 스스로 각본을 쓰고, 스스로 연출을 맡고, 스스로 주인공이 된.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다 中>
- P103

제가 이번에 특별한 경험을 해보니 죽음은 무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잘 살기만 하면 두렵지 않게 죽음을 맞을 수 있따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잘 사는 길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일생 추구해 온 돈, 명예, 권력, 지위는 물론, 건강까지도 죽음 엎에는 먼저 죽습니다. 사랑만이 죽음을 초워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영생하게 합니다.

<죽음을 두렵지 않게 맞는 방법 中>

- P108

데이비드 실즈의 에세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는 "시도가 실패한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모든 인생은 결국에는 실패한다. 우리가 할 일은 시도하는 과정에서 즐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죽음을 자주 생각하면서 저는 삶을 과정으로 보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中>

- P129

결론을 말하자면 수용의 단계에서 죽음은 아름다워집니다. 빛이 납니다. 승화됩니다. 삶도 덩달아 완성됩니다. 퀴르러로스는 수용 단계에 이를 수만 있다면 위대한 영적 빛과 철학적 평온을 맞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인급 죽음 수준인 거지요. 보통 사람인 우리 대부분은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광야를 헤매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의 상태를 반복하다가 가나안의 복된 죽음을 맞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거지요.

<죽음을 쓰는 사람 中>
- P137

대다수 사람들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부정한다. 그중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는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성숙해진다. 이럴 경우 그들은 일생 회피해온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기도 한다. 죽음에 이른 순간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쁨이자 특권이다. (...) 죽어가는 사람들은 매우 진실해지고 아주 빠르게 결정한다. 죽음이 배움과 영혼의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 M.스캇 펙 저/ 조종상 역, 율리시즈 중에서)

<막상 내 죽음이 닥쳐 봐, 그게 되나 中>


- P139

지적인 인간의 문제는 ‘자아가 충만‘해 진다는데 있습니다. 무턱대고 자존심이 세집니다. 자기 생각으로 꽉 차게 되니까요. 내가 옳으니까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니까요. 희한하게도 자존심에 반비례해서 자존감은 낮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신력과 의지는 강합니다.

<영성의 배내옷, 영성의 수의 中>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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