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일이다. 설악산은 지방 고등학교의 수학여행 단골코스였다. 산길로 올라가는 한줄은 대구에서 온 학생들이었고, 내려오는 한줄은 광주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올라가는 대구 학생 1천여명과 내려오는 광주 학생 1천여명이 스쳐지나가는 시간에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침묵‘이었다.
저쪽 학교 학생에게 말을 걸 필요는 없었겠지만,
흥미로운 것은 앞뒤의 자기 반 친구와도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구 학생들도 그랬고, 광주 학생들도 그랬다.
서로의 사투리를 저쪽 학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 스쳐지나갈 때까지.
설악산이 거대한 침묵의 공간이 되었다.
지금까지 겪은 수많은 경험 중 가장 괴이한 일이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무엇을 합의했던 걸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저 ‘감‘으로 그렇게 했다.
(33. 8년간의 침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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