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월이 다 갔는데, 아직 작년 결산을 내지 못했다. 뭔가 마무리 짓지 못한 기분 때문인지 책읽기에 대한 흥미도 급격히 떨어졌다. 아니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저 넷플릭스 때문인지도. 여하튼 마무리를 하고서 다시 책을 들어보련다. 슬슬 쉬었던 머리가 꿈틀대며 신호를 보내고 있으니까.

 

작년 한 해 총 84권의 책을 읽었다. 한 달에 7권의 책을 읽자 해놓고 12월 마지막 주까지 목표를 채우고자 헐레벌떡 읽었다. 여든네 권의 책 제목을 보고 있노라면 물론 전혀 기억 안 나는 책도 있지만, 아직도 읽었을 때의 감명이 잔잔하게 날 흔드는 책도 있다.

 

2020년의 책들 중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을 카테고리별로 묶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상하리만치 공통점이라고는 없었고, 정말 다양하게 읽었더랬다. 그랬으니 다양한 방법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쳤겠구나 싶었다. , 그러고 보니 작년의 책들은 그저 재미있게 읽었다거나(예를 들면 추리소설) 문장이 유난히 좋아서 두고두고 읽고 싶었다던가 하는 것들은 없었다. 매년 그런 책들이 있기 마련이었는데 말이다. 오히려 나의 생각들을 전환시켜주거나 나의 가치관을 더욱 확고히 시키는 것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게 해준 책들이 많았던 것 같다.(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말이다.) 실용서나 경영서는 아니었는데도, 하물며 문학에서도, 나는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런 식으로 읽었던 것 같고, 읽었던 책들을 회상해보는 지금에 와서도 그렇게 읽었던 기억들만 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친애하고 친애하는>, <곰탕>, <페인트>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나는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또 그 정의가 사회와 반할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중앙역>, <까대기>를 읽으면서는 경제발전과 빈부격차가 만들어내는 불평등의 양상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비극이 나를 빗겨 가면 좋겠지마는 그렇지 못했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그것이 나를 빗겨가는 행운이 내게 주어졌을 때, 나는 사회에 만연한 그것들을 그저 못 본 척 넘어가고 말 것인가, 아니면 계속 고민하고 행동할 것인가. 그 행동은 나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범위일 것인가. 아니면 나의 행운을 지속 가능하게 한 상태라는 조건 하에서만 해당하는 것인가. 등등을 생각했던 것 같고, 그나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행운을 유지하는 방법이 머지않은 미래에는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에이트>의 예견에는 경악했더랬다.

 

<보통 여자 보통 운동>, <(최근에 웹드라마로 제작된) 며느라기>, 위에서 언급했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읽으면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는 여자들의 일상과 인생에 대해 생각했고, 도통 변하지 않는 것들, 변할 것 같지 않은 것들을 바꾸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생각했다. <보통 여자 보통 운동><공부, 이래도 안 되면 포기하세요>를 읽고서는 열심히 사는 여자들에 대해서, 혹은 여자가 열심히 산다는 것에 대해서 읽었고, 또 공부하고 싶고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딸애들에게 운동과 공부를 어떻게 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고.

다시 말하지만

이 책들이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들과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의 간극이 꽤 클수있다. 다만

이 책들의 행간에서 나는 그런 것들을 읽었고,

혹은 이 책들을 덮고서 이 책들이 알려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 내가 그렇게 질문했을 뿐.

 

그렇다면 올해, 나는 어떤 책들을 읽을 것인가.

슬픈 예감이지만,

올해는 책을 못 읽을 것 같다. 넷플릭스 때문이든, 인생의 바쁜 고개를 넘고 있어서든.

그래도 부디 작년 한 해 읽고, 고민했던 것들을 잃지는 않기를. 그 답을 계속 찾아내고, 행동하는 나이기를. (그럴 수 있을 만큼 무사한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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