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개를 보면 슬프다. (...) 개는 왜 사람 따위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개의 중심은 제 안에 있지 않고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 안에 있는 것 같다.

(김하나, 개의 슬픔 中)

- P21

인간이 없었다면 개도 없었다. 그러니 많은 개들은 어릴 적부터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보면 꼬리를 흔들며 따르고 좋아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개나 고양이의 ‘주인‘이라거나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개나 고양이는 우리의 가족으로서 ‘함꼐 산다‘는 개념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사람의 말에 잘 복종하고 사람에게서 칭찬받기를 너무도 좋아하는 개들의 특성을 보면 ‘주인으로 여기고 충성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유는 알 것 같다.

(김하나, 개의 슬픔 中)

- P23

개하넽는 사람에게는 없는 뾰족한 송곳니와 강력한 무는 힘이 있다. 덩치 큰 개인 경우 설령 ‘주인‘이라 해도 자기를 괴롭힌다면 해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만 달리 먹는다면. 하지만 마음을 달리 먹을 줄 모르기에 개가 개인 것이다.

(김하나, 개의 슬픔 中)

- P25

그 중 한 명은 내가 시력을 잃은 강아지 떄문에 그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고 짐작했고 자기 마음대로 그것에 대해 확신했다. 나는 그제야 ‘개‘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가족의 불행에 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는 끄까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에게 울 일이란 사람에 관한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런 한정이 가져오는 이점은 무엇인가. 울 만한 대상의 불행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고집하는 것은. 그렇게 불행에 대해 열어두지 않고 닫아두는 것은 그를 안전하게 하나. 하지만 그렇게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얻는 안전이란 역으로 얼마나 안전하지 않은가.

(김금희, 서로가 있어서 다행인 中)

- P64

나는 무언가에 애정을 지니는 일이란 세상을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이해하겠다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그가 위치해 있는 그 지접뿐 아니라 연결된 배경까지 모두 받아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금희, 서로가 있어서 다행인 中)

- P65

장군이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장군이에 빗대어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 나는 아기의 옹알이나 손짓, 종종거리는 비둘기의 몸짓, 길냥이의 신중한 걸음, 유유히 헤엄치는 연못의 물고기들이나 풀벌레들까지 장군이를 느끼듯 느꼈다. 이 경우 가장 큰 변화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감각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금희, 서로가 있어서 다행인 中)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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