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눈에 띄어 첫장을 들추니 1995. 8. 17. 홍바울라와 이크리스티나의 짧은 메모가 눈에 띈다. 아마도 공릉동 본당에서 성서봉사로 활동하다가 분당으로 이사오면서 받은 선물인 모양이다.

결혼하며 오랫동안 냉담하던 생활을 공릉동에서 정리하고 성당활동으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고 그곳에서 두 아이들 유아세례도 받았다.

그 당시의 교유들(함께 구역장, 반장을 했던)과는 지금도 만남을 지속하고 있으며, 가장 추억이 많았던 시절, 자식들을 향해서도 내 삶에 대해서도 가장 희망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하느님과의 진정한 첫 대면인 동시에 하느님의 맛을 비로소 느낀 일명 청구 아파트 시절을 이 책을 접하면서 새삼 추억해 보았다.

 

안 읽었는지, 읽었으나 몽땅 잊었는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전혀 새로운 내용이었으나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저자인 신부님의 깊고, 신실한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기억나는 내용을 되새겨 본다.

 

하느님도, 내가 상처 준 그도 날 용서하는데, 내가 타인을 용서하기에 인색해서는 안될 말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도덕적 과오보다는 영원한 삶의 길을 갈 우리의 발걸음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 어린이의 걸음마에서 부모는 40회의 넘어짐보다 3발자국에 감동한다.)

하느님이 당신을 드러낼 때 고통을 이용하시는 이유는 고통이 불멸의 영혼을 갖는 무한한 값에 근사하기 때문이다.

선민은 하느님의 존재를 너무 당연히 여겨 그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이 없으시기에 과거의 인물과 내가 결코 무관한 창조물이 아니며 후대의 누군가와도 끊임없는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하느님은 결코 과실이 없다.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 :

 

인간들이 생겨라그분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그러자 수십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생겨나 땅 위에서 기고 악다구니를 쓰고, 벌렁 나자빠지며 야단법석을 떨어댔다. 모두가 당신 아드님의 형상이었다.

그분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제법 쓸만한 실수로군.”

하느님은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동시 그런 생각도 하셨으리라. “나는 언제고 나의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무한한 수단과 방법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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